정권 바뀌자 규제 속도내는 與…전방위 규제에 유통업 고사 위기
의무휴업일 공휴일 지정…강제금 부과 법안 등 규제 잇따라
"시대착오적 법" 우려…마트 있어야 골목상권 산다는 주장도
- 문창석 기자
(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유통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업계와 학계에선 시대착오적인 규제 확대로 이미 침체된 산업 자체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목소리가 높다.
10일 뉴스1이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총 14건이다. 이 중 절반 이상인 8건이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 및 영업시간 제한과 관련한 내용이다.
여당이 발의한 개정안은 대부분 규제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송재봉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을 평일이 아닌 공휴일 중에서만 지정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내놨다.
현재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재량에 따라 공휴일 또는 평일로 정할 수 있다. 대구시 등 일부를 제외한 전국 대부분의 지역은 의무휴업일을 일요일 등 공휴일로 정해 운영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대형마트는 월 2회 공휴일마다 반드시 문을 닫아야 한다.
같은 당 오세희 의원도 지자체장이 반드시 대형마트 등의 의무휴업일을 지정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일부 지자체장이 재량을 발휘해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 지정을 철회하는 사례가 생기자, 이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취지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현재 대형마트에 적용되는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을 백화점·면세점·복합쇼핑몰(아웃렛)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유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규제 강화를 명시한 법안들도 잇따라 발의된 상태다. 김동아 민주당 의원은 대형마트 등을 설립한 후 의무휴업일·영업시간 제한을 하는 게 아니라, 사전에 입지를 검토해 등록을 제한하는 내용의 유통법 개정안을 내놨다.
이 밖에도 허영 민주당 의원은 대형마트가 지역 협력 계획을 이행하지 않으면 강제금 등을 부과하는 개정안을, 같은 당 윤준병 의원은 올해 말 일몰 예정인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전통시장 반경 1㎞ 내 출점 제한을 5년 연장하는 개정안을 내놨다.
문제는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 같은 법안의 추진에 속도가 날 것이라는 점이다. 민주당은 지난 3월 민생연석회의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공휴일로 제한하는 내용을 20대 의제에 포함한 바 있다.
특히 민주당은 매월 두 번인 의무휴업일을 평일이 아닌 공휴일로 의무화하는 법안의 경우 상임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서 처리할 주요 법안 중 하나로 간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민주당에선 해당 내용의 법안을 송재봉·오세희 의원 등 2명이 각각 대표 발의했다. 송 의원은 지역 시민운동가 이력이 있고, 오 의원은 소상공인연합회장 출신이다.
민주당 내에선 대형마트의 과열된 영업으로 전통시장 등 골목상권이 침체됐다고 보는 게 다수의 의견이다. 지나친 출점 및 영업 경쟁을 제한하기 위해선 손님이 많이 몰리는 공휴일에 휴업하고, 영업시간도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는 제한해 근로자의 쉴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통업계는 생각이 다르다. 그동안 유통 환경이 오프라인 중심에서 온라인으로 크게 변화하면서 2012년 도입된 유통산업발전법은 골목상권 보호라는 기존의 도입 취지를 달성하지 못하게 됐다고 본다. 최근 내수 침체가 장기화 된 상황에선 유통법이 발목을 잡아 영업 환경만 제한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시장에서도 충격이 크다. 이날 오후 2시 30분 기준 코스피 시장에서 이마트 주가는 전날 대비 8.8%, 롯데쇼핑은 9.6% 하락했다. 이들 기업은 새 정부 출범 이후 내수 부양 수혜에 대한 기대감에 꾸준히 상승했지만, 이날 유통업계 규제 우려가 커지면서 급락한 것으로 분석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법이 도입된 2012년과는 상황이 매우 달라졌는데 규제는 그대로를 넘어서 오히려 강화하려고 한다"며 "업계 2위인 홈플러스는 법정관리까지 신청했다. 시대착오적인 법 추진에 '잃어버린 13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은 법 시행 이후 동반 침체에 빠졌다. 올해 1분기 기준 대형마트 3사(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의 점포 수는 370개로, 법 시행 직후인 2013년과 비교해 13개 줄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통시장도 2013년 1502개에서 2023년 1393개로 109곳 감소했다. 전통시장 보호라는 법 취지가 무색해진 것이다.
오히려 대형마트가 있어야 골목상권도 산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 산업연구원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바꾼 대구·청주 지역 신용카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요식업 등 대형마트 주변 상권의 매출이 대형마트가 없는 지역보다 3.1% 증가했다. 휴일 대형마트에 방문한 고객들이 인근에서 돈을 쓴다는 얘기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마트 의무휴업일을 가장 빨리 평일로 바꾼 대구시의 경우 전통시장 매출이 더 증가했다"며 "철 지난 유통법을 개정해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힘을 합쳐 방문객을 올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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