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무역장벽, K-바이오산업 안심 못 해[트럼프2.0 바이오 新전략은]①
셀트리온, 美 생산기지 확보 검토…삼성바이오로직스 '예의주시'
글로벌 바이오 기업들 미국행…"정부 차원 전방위적 대응 필요"
- 김정은 기자
(서울=뉴스1) 김정은 기자 = 트럼프발(發) 글로벌 무역 전쟁의 본막이 오르면서 국내 바이오 기업들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의약품에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고 있어서다. 궁극적으로는 자국 내 생산설비를 유치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카드를 꺼내 들면 국내 바이오 기업들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가 사실상 마비된 상황에서 국내 기업이 '관세 폭풍'을 피할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국내 주요 바이오 기업들은 주력 사업에 따라 생존 전략을 다르게 수립하고 있다. 특히 당초 트럼프 정부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던 바이오시밀러 기업은 트럼프발 관세 전쟁에 기민하게 반응하며 전향적 계획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반도체와 철강, 석유 등에 대한 관세 부과 방침을 밝히면서 의약품도 언급했다. 특히 그는 제약 산업과 의약품에 대해 '관세 장벽'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약산업을 미국 내로 되돌리고 싶고 산업을 다시 국가로 가져오는 방법은 벽을 세우는 것, 즉 관세 장벽을 만드는 것"이라며 "제약, 의약품 등 모든 형태의 약품에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약값이 지나치게 높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대형 제약회사가 미국으로부터 부당한 이윤을 착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당시에도 자국 내 제약바이오 공급망을 강화하고, 약값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한 바 있다.
국내에선 셀트리온(068270)이 가장 빠른 대응에 나섰다. 셀트리온은 지난달 30일 배포한 주주 서한에서 올해 9월까지 현지에 조달할 수 있는 충분한 재고가 확보돼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장기적으론 미국 내 생산기지 확보까지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국내 바이오 1위 기업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관세 부과를 앞둔 두 기업의 온도 차는 주력 사업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이오시밀러가 주력 사업인 셀트리온은 관세 부과에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다. 반면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은 위탁을 의뢰한 기업에 비용을 일부 전가할 수 있기 때문에 관세에 따른 부담이 비교적 적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시밀러 기업은 의약품 원료와 완제 의약품을 미국에 수출해야 하므로 관세가 부과되면 가격 경쟁력이 상당히 떨어질 수 있다"며 "CDMO 기업의 경우 위탁 의뢰한 기업에 비용을 청구할 수 있어서 부담이 경감될 수 있다"고 말했다.
향후 트럼프 행정부가 내놓을 구체적인 정책안에 따라 국내 바이오 기업들의 행보도 달라질 전망이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단순 관세 부과뿐 아니라 자국 내 공급망 강화를 위한 추가 혜택을 제공한다면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미국행을 선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장은 "CDMO 기업은 관세 부과만으로 미국 내 생산시설을 확보하기에는 이해득실이 안 맞을 수 있다"며 "향후 트럼프 행정부의 구체적인 정책안에 추가 인센티브 제공 등이 포함될 경우엔 미국 생산시설 구축을 고려해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바이오 기업들이 속속 미국행을 결정하고 있다는 점도 국내 기업들로선 외면할 수 없다. 글로벌 CDMO 1위 기업 스위스 론자는 지난해 4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로슈 바이오의약품 공장을 12억 달러(약 1조 7600억 원)에 인수했다.
일본계 CDMO사 후지필름 다이오신스 바이오테크놀로지도 같은 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짓고 있는 의약품 생산시설에 12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는 계획을 밝혔다.
업계에선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는 상황에서 관세 부과는 고민이 깊어지는 부분"이라며 "국내 바이오 기업이 일본 등 타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답을 찾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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