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딸과 세종에서 대통령실까지 걸은 율아 아빠의 바람[1형당뇨 4.5만시대]②
"1형 당뇨, 췌장장애로 불려야…인슐린 투여·관리 잘되면 차이 없어"
24년 차 환자 "혈당 등 건강관리에 사회 지원 필요, 장애로 인정돼야"
- 강승지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죠. 평생 스스로 인슐린을 맞아야 할 율아에게 우리 사회의 따뜻한 관심, 도움이 절실해요. 당사자 한 사람 또는 그 가정만의 일이 아닙니다. 아이의 인슐린 투약, 혈당 관리 과정만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근용 씨는 1형 당뇨병을 앓고 있는 둘째 딸 율아를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박씨는 1형당뇨 환자와 그 가족들 가장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온 인물로 꼽힌다.
박씨는 율아가 앞으로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으려면 1형당뇨가 중증 난치질환을 넘어 '췌장장애'로 불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인슐린 투여와 혈당 관리만 잘 이뤄지면 일반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박씨는 지난해 2월 거주하고 있던 세종시에서 용산 대통령실까지 10박 11일에 걸쳐 약 170㎞에 달하는 대장정을 시작했다. 당시 만 8세였던 율아도 함께 했다. 주치의와 환우들의 걱정 속에 박씨는 율아를 위해 카트를 끌고 용산 대통령실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뎠다.
쌀쌀한 날씨에 그는 왜 어린 딸과 먼 길을 걸었을까. 충남 태안 일가족 사건 이후 사회의 관심은 급격히 커졌다. 하지만 불쌍하다, 불행하겠다는 등 곱지 않은 시선도 뒤따르고 있다는 우울감이 박씨를 덮쳤다고 한다.
1형당뇨 환자여도 관리만 잘 된다면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많은 이에게 알리면서, 율아에게도 좋은 경험을 주려 했다고. 박씨는 "'우리 대통령 할아버지 한 번 만나러 갈래'라고 물어보니 율아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박씨는 "세종에서 용산까지 걷는데 인도는 잘 깔려 있었다. 그런데 처음과 끝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았다. 중간에 잘 깔린 인도가 무용지물로 느껴졌다"며 "정책과 제도도 마찬가지다. 환자가 화장실에 가야만 인슐린을 맞는 현실을 개선해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10박 11일간 걷는 일은 당연한 고됨이 수반됐지만, 많은 이가 응원해 줬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갖게 됐다고 박씨는 당시를 돌아봤다. 율아에게도 정말 고맙다며, 딸이 끊임없이 도전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도전을 통해 용기와 희망을 얻은 박씨는 다른 당뇨인도 동참하는 마라톤 등의 행사를 기획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1형당뇨 장애인정 요구에 대해서는 "췌장은 장애로 인정될 수 없다. 편견은 편견대로 있고 지원은 되지 않으니, 환자가 숨을 수밖에 없고 관리가 열악해진다"면서도 "(그러나) 장애로 인정된다고 해도 환자에게 큰 변화가 오거나 혜택이 뒤따르지 않을 수 있다"고 전했다.
박씨는 "국내에서 장애의 정의는 상당히 복잡하다. 각 부처에 적용되는 장애의 정의도 다르다"며 "일단 일상과 사회생활에 제약이 크고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기본 정의에 1형당뇨가 부합할 수 있다는 점을 디딤돌 삼아, 논의를 이어가자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박씨는 또 "1형당뇨라는 명칭이 오히려 오해와 편견을 부른다. 2형당뇨가 만성질환으로 인식되고, 먹는 약으로 관리 가능하다는 점으로 알려져 1형당뇨가 비교되고 있다. 장애에 따른 혜택보다 장애 인정을 계기로 사회적 관심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전망했다.
24년 차 1형 당뇨병 환자 채창훈 씨는 꾸준한 자기 관리를 통해 가정을 꾸리고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채 씨는 "잘 관리하면 일상상활이 가능하지만, 경제적·사회적 어려움으로 관리기기 사용 등을 할 수 없는 환자들도 있어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22일 뉴스1과 비대면 온라인 인터뷰를 진행한 채 씨는 "1형당뇨를 진단받을 때 '괜찮아. 죽는 병도 아닌데, 극복하면 되겠다'라는 생각이었다. 어디서든 당당하게 인슐린을 맞았다"고 소개했다.
다만 취업 과정에서 당뇨가 있음을 밝혔다가 떨어진 경험, 화장실에 가서 인슐린을 맞으라는 지적도 들은 바 있다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채 씨는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지 못했던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채 씨는 본인 경험과 당뇨 관련 정보를 다른 환자나 일반인에게도 공유하고 싶어 유튜브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연동돼 하루 혈당 변화 추이를 알 수 있는 연속혈당측정기(CGM)와 여러 종류의 인슐린 사용 등으로 본인 건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채 씨는 장애인정을 둘러싼 목소리와 관련해 "초기에는 환자들 사이에서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장애라는 주홍 글씨가 박힐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면서 "우선 평생 기기를 사용해야 하니, 건강보험 급여화 등을 위해 중증난치질환 등재를 요구했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채 씨는 장기적으로 장애인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1형당뇨가 질환으로서 중증도를 따지기 어려운 데다, 혈당관리를 위한 사회의 지원이 없다면 생활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뒤따른다는 이유에서다.
채 씨는 "환자들에게는 부정적으로 살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다. 인슐린에 의지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게 불행과 연결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정부도, 우리 사회도 바뀌어야 하지만 환자들도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셨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채 씨는 "1형당뇨병은 가성비 좋은 질환이다. 혈당 관리만 잘 되면 비당뇨인과 똑같이 생활할 수 있다"며 "자가면역체계 오작동으로 인한 질환인 만큼 사회의 일원으로서 동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장애 인정 등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ksj@dqdt.shop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편집자주 ...국민건강보험 통계에 따르면 국내 1형당뇨병 유병인구는 약 4만5000명입니다. 체내에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는 1형당뇨는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완치도 되지 않는 질병입니다. 병과 생활고, 무관심 속에서 전쟁을 치르던 이들은 '1형당뇨'가 장애로 인정받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도 장애 인정을 전향적으로 검토 중인 지금 <뉴스1>은 이들 이야기를 다시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