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속 혐오와 폭력"…의정사태 '익명커뮤니티' 해결 요원
'메디스태프' 폐쇄 논한 방심위 회의 들여다보니
"피해 극심" vs "표현의 자유" 이용자 자성 촉구
- 강승지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우리 학교 올해 진짜 감귤(복귀 전공의·의대생을 조롱하는 은어) 어벤져스네. 너네는 1년 아끼려다가 평생 후회할 거다. 야, 병원에서 보자." "왜 그러냐, 모교인데." "후배 놈들이 물 흐리네. 너희 두고 보자."
14개월째 접어든 의정갈등이 현장에 남아있거나 돌아간 전공의와 의대생을 향한 내부적 비방과 조롱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낳고 있다.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인 '메디스태프'에서 이뤄지고 있어, 사이트 폐쇄 요구가 커지고 있지만 더욱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의사들과 의대생들의 자성에 기대야 하는 실정이다.
9일 의료계에 따르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지난달 26일과 28일에 걸쳐 진행된 통신심의소위원회의 회의록을 최근 공개했다. 교육부는 지난달 방심위에 '메디스태프' 폐쇄를 요청한 바 있다.
상당수 의대생이 복학하고 싶어도 메디스태프에 이름 등이 공개돼 비난받을까, 두려워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방심위는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관계자, 메디스태프 대표 등을 불러 폐쇄 요청 건에 대해 심의했다.
메디스태프는 지난 2018년 의사·의대생 전용 커뮤니티이자 보안 메신저(모바일 애플리케이션)로 출시됐다. 직업 특성상 대화에 민감한 의료정보가 포함될 수 있기 때문에 대화 내용이 외부에 유출될 수 없다는 점으로 이목을 끌었다.
실제로 의대 학생증이나 의사 면허를 인증해야 가입할 수 있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채팅이 자동 삭제되는 기능이 있다. 화면을 캡처하면 이용자의 전화번호가 남아 대화가 유출될 경우 최초 유포자를 찾기 쉽게 만들었다.
메디스태프는 수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해 최근 이용자 수가 6만 2000명까지 늘어났다. 댓글을 포함해 하루 게시되는 글이 2만 5000건에 달하고, 올 1월부터 최근까지 170만 건의 글이 작성됐다고 한다.
애초 의학 정보 자문과 구인·구직 정보 공유 목적으로 운영됐으나 의정갈등 국면에서 현장 잔류 전공의와 의대생을 겨냥한 거센 비난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홍순 교육부 의대교육지원관(국장)은 방심위 회의에 출석해 메디스태프 폐쇄를 강력히 요청했다.
김 국장은 방심위 위원들에게 "전화를 많이 받는데 의대생들과 학부모들이 '제발 메디스태프만 폐쇄하면 돌아가겠다. 여기에 한 번 들어가면 평생 의료계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심지어 어떤 남학생은 울면서 '군대는 제대하면 끝이지만 여기에 이름이 적히면 평생 의료계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으니 제발 나라에서 이것만 조치해 주시면 될 것'이라고 한다"라고 첨언했다.
교육부가 피해 사례를 취합한 바에 따르면 당사자의 지인은 물론, 전국 각지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이메일, 문자 메시지, 심지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협박성 연락을 가했다. 메디스태프에 이름 등이 공개돼 자살 충동에 이른 사례도 있다고 한다.
김 국장은 "극단적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한다"고 호소했다. 한 대학의 의대 학장도 욕설, 인신공격, 협박성 게시물 등을 접했다. 이 학장은 교육부에 "학교 운영과 학생 복귀 지도에 어려움을 겪었고, 교수로서 회의를 느낄 정도의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메디스태프는 적극적으로 조치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기동훈 메디스태프 대표는 방심위에 올 1월부터 작성된 글 170만 건 중 23만 건, 댓글 900만 건 중 90만 건을 각각 삭제했다고 설명했다. 또 회원 11명의 이용을 정지시켰으며 2명에게 탈퇴 조치를 내렸다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글 관리가 쉽지 않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메디스태프 법률대리인인 송달룡 변호사는 "플랫폼 사업자들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명예훼손 또는 저작권 위반, 사행성 문제에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느냐는 기본적인 고민을 안고 있다"고 전했다.
기동훈 대표는 수사 의뢰된 게시글들이 지금도 보존돼 있고, 오히려 특정인의 이름이나 욕설이 들어간 경우 AI(인공지능) 시스템에 따라 자동 삭제하고 있다고 했다. '표현의 자유'에 관한 문제도 언급했다.
송달룡 변호사는 "게시판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실현되는 공간이고 표현의 자유를 포기하면 모든 자유를 포기하는 것과 동일하다. 자율적으로 의사소통하기를 기대한다"며 한 달에 한 번씩 이용약관을 준수해달라고 공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결국 방심위는 교육부의 폐쇄 요청을 수용하지 않았다. 다만 메디스태프 측에 △수사 의뢰된 게시물의 삭제 △악성 이용자의 이용권 해지 △학습권을 침해하고 사회적 혼란을 부추기는 정보는 지속해서 삭제하는 등 자율 규제를 강화하라고 당부했다.
메디스태프를 포함해 의료계는 현실적으로 의사사회와 의대생들의 자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메디스태프는 뉴스1에 "플랫폼 운영 과정에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불법적인 행위가 없었다고 판단하며, 앞으로 방심위에 적극 소명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기동훈 대표는 "휴학이나 사직을 주도한 사실은 전혀 없다. 서로 다른 생각과 경험을 존중하고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데 집중해 왔다"며 "앞으로도 법적 테두리 내에서 책임 있는 플랫폼 운영을 위해 계속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도 소수의 현장 잔류 전공의와 의대생 인권이 침해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블랙리스트' 등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며 "현장 잔류 전공의와 의대생 권익 보호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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