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김용현이 잘못 베꼈다"지만…과거 포고령엔 '국회 활동 금지' 없다
12·3 비상계엄 포고령엔 국회도 '정치활동 금지' 대상…헌법 침해 소지
김용현 전 국방장관 측은 "포고령은 정당하게 작성된 것" 반박
- 정윤영 기자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12·3 비상계엄 당시 박안수 계엄사령관(육군 참모총장) 명의로 발표된 포고령 1호를 놓고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엇갈리는 주장을 펼쳤다. 윤 대통령 측은 김 전 장관이 '대통령에 국회 해산권이 있던 과거 예문을 잘못 베낀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지만 과거 발령된 포고령에 국회의 활동을 금지하는 내용은 없었던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12·3 비상계엄 당시 계엄사의 포고령 1호 1조엔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고 명시됐다.
헌법과 계엄법에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면 이를 즉시 국회에 통고하도록 돼 있고, 국회의 요구가 있을 때는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고 이를 공고하도록 명시돼 있어 국회의 활동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담긴 12·3 계엄 포고령 1호는 위법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와 관련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대리인단은 지난 14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12·3 계엄 포고령 1호는 김 전 장관의 실수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리인단은 "대통령에게 국회 해산권이 있을 당시 예문을 김 전 장관이 그대로 베껴온 것"이라며 "모든 절차를 평화적으로 신속히 진행하고 국회 해산 결의 시 종료하려고 했던 것인데, 문구의 잘못을 (윤 대통령의) 부주의로 간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은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 의도, 즉 '국헌 문란 목적'이 없었다는 주장을 펼치려는 의도로 보인다. 문제는 대리인단이 언급한 '예문'을 적어도 과거 계엄 때 발령된 포고령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뉴스1이 1961년·1964년·1972년·1979년·1980년 등 과거 계엄 포고령을 모두 살펴본 결과 '정치활동'을 금지하기 위한 목적의 문구는 매번 빠짐없이 등장했지만 이 대상을 국회로 특정한 적은 없었다.
1961년 5월 16일 발표된 군사혁명위원회의 비상계엄령 제1호 1조엔 '일절의 옥내외 집회를 금한다. 단 종교관계는 제외한다'라고 돼 있다. 1964년 6월 3일 발표된 '계엄사 포고 제1호' 1조엔 '옥내외 집회 및 시위를 금한다. 단 관혼상제 및 극장 상영은 제외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옥내외 집회'는 데모나 정치적 성격의 단체 구성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1972년 10월 17일 발표된 계엄포고 1호 1조에는 '정치활동'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다. 당시 조항엔 '모든 정치활동 목적의 옥내외 집회 및 시위를 일절 금한다. 정치활동 목적이 아닌 옥내외 집회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단, 관혼상제와 의례적인 비정치적 종교행사의 경우는 예외로 한다'라고 돼 있다.
1979년 10월 27일 발표된 계엄포고 1호 1조에도 '일체의 옥외집회는 허가를 받아야 하며, 시위 등의 단체활동은 금한다'고 돼 있으며 1980년 5월 17일 발표된 비상계엄 전국 확대 포고령 10호 2조 가항에도 '모든 정치활동을 중지하며 정치 목적의 옥내외 집회 및 시위를 일체 금한다. 정치활동 목적이 아닌 옥내외 집회는 신고를 하여야 한다는' 등 국회를 활동 금지의 대상으로 삼은 포고령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 측이 과거 발표되지 않은 포고령 가안을 지칭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지만, 실제 발표되지 않은 포고령이 기록으로 남아 있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윤 대통령 대리인단의 답변서 내용이 알려진 뒤 김용현 전 장관 측에서 "국회의 권능을 이용해 국정을 마비시키는 정치활동을 금지하려던 것"이라며 "단순한 착오일 수 있지만, 잘못된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며 답변서의 주장을 반박할 것을 봐도 윤 대통령 측이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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