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中 누르려면 관세 아닌 R&D에 집중해야[한중일 글로벌 삼국지]
트럼프, 근린국·유럽·아시아 등서 신뢰 잃어가…각자도생 생각해야
(서울=뉴스1) 백범흠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초빙교수 = 미국은 2010년대 이후 강온 모든 정책을 동원해 중국의 도전에 대응해 왔다. 트럼프 2기 정부는 관세정책을 중심으로 중국을 몰아붙이려 하고 있다. 1805년 나폴레옹 치하의 프랑스는 영국과의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참패했다. 영국을 정복할 수 없게 된 프랑스는 1806년 영국을 고립, 궤멸시키기 위해 영국과의 교역을 엄금하는 '대륙봉쇄령'을 내렸다. 대륙봉쇄령은 프랑스의 몰락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프랑스는 대륙봉쇄령을 어긴 러시아 정벌을 위해 1812년 60만 대군을 동원했지만, 러시아의 청야(淸野) 전술과 혹독한 겨울 추위에 휘말려 대패했다.
미국은 유치산업 보호를 위해 1828년 영국 등 유럽 산 공산품에 대해 평균 45%의 초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이 조치는 북부 제조업자들에게는 큰 이익을, 남부 농장주들에게는 농산물 수출 감소 등 큰 손해를 가져다줬다. 남부와 북부 간 정치 사회적 균열이 더 심화하고, 결국 남북전쟁으로 이어졌다. 대공황(Panic) 시기이던 1929년 미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2만여 개의 수입품에 대해 평균 59%의 초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스무트-홀리(Smoot- Hawley) 관세법을 제정했다. 이는 보복 관세로 이어져 글로벌 교역액 약 60%, 글로벌 GDP 약 40%를 줄어들게 했다. 글로벌 경제위기는 제2차 세계대전을 야기했다.
2025년 3월 현재 중국이 최대교역국인 나라는 한국 포함 100여 개국이 넘는다. 반면, 미국을 최대교역국으로 하는 나라는 60여 개국에 불과하다. 그리고 미국은 세계 최대 수입국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전쟁은 원하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결과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10개 첨단산업 분야 중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블록체인, 가상현실, 리튬이온전지 등 9개 분야 특허 출원에서 세계 1위를 휩쓸었다. 2014~2023년간 생성형 인공지능(AI) 특허출원 건수는 3만 8210건으로 미국의 6276건보다 6배 이상 많았다. 중국의 약점으로 알려진 반도체 분야 역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지난 2월 발간한 '3대 게임체인저 분야 기술 수준 심층 분석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은 고집적·저항기반 메모리(기초 역량) 반도체와 고성능·저전력 인공지능 반도체 등 첨단 패키징을 제외한 거의 모든 반도체 기초기술 분야에서 중국에 추월당했다고 한다. 미국이 진정 중국을 주저앉히기를 원한다면, 승산이 희박한 관세전쟁보다는 연구와 개발(R&D) 경쟁에 집중해야 한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의 즉각 철수를 요구한다는 요지로 우크라이나가 제안한 결의안이 지난 2월 24일 국제연합(UN) 총회에 상정됐다. 미국은 러시아, 북한, 이란, 헝가리 등과 함께 반대표를 던졌다. 4일 후인 2월 28일 백악관에서 개최된 미-우크라이나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심하게 공박하고, 회담을 결렬시켰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3주년이 된 지금 유엔과 백악관을 무대로 펼쳐진 2개의 외교 장면은 트럼프 2기 정부 미국 외교가 얼마나 거칠고 과격하게 변침(變針)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프랑스, 영국, 독일, 덴마크 등 유럽 국가들은 물론 대만과 일본 등에서도 트럼프 2기 정부의 거칠기 짝이 없는 외교에 대한 우려와 함께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중국의 위협을 받아온 대만은 지난 2월 28일 젤렌스키와 함께 라이칭더 총통도 트럼프로부터 '의문의 뺨을 맞았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은 근린 캐나다와 멕시코는 물론, 유럽과 아시아의 거의 모든 동맹국으로부터 불평을 듣고,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모든 나라가 각자도생을 생각하게 됐다.
국민정부의 실력자 장제스는 1943년 11월 카이로 회담 무렵 종전 후 중화민국이 한강 이북을 통제하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장제스의 한반도에 대한 시각은 리훙장이나 위안스카이, 쑨원의 중화주의와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장제스가 상해임시정부를 지원했던 것도,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부식을 위한 심모원려(深謀遠慮·깊이 생각하고 멀리 꾀한다)에서 기인했다. 마오쩌둥부터 시진핑에 이르기까지 중화인민공화국(신중국) 역대 지도자들의 한반도에 대한 시각 역시 종번관계(宗藩關係)를 기초로 한 왕조시대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은 물론, 북한도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과 의도를 크게 우려한다.
트럼프 정부는 대국적 차원에서 러시아와의 협상을 위해서라면 우크라이나를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큰 틀에서 중국과 협상하기 위해 대만이나 한국을 버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콜비 국방차관 후보자는 "서울을 위해 LA를 희생할 수 없다면,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즉 확장억제는 실효성이 없다"라고 잘라 말한 바 있다. 다수의 외교안보 전문가는 핵보유국들에 둘러싸인 한국이 잠재적 핵 능력도 갖추지 않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본다. 미국에 국가안보를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안 된다. 우리 스스로의 안보 개념 아래에 적어도 일본 수준으로 핵탄두용 방사성 물질 제조에 필요한 '사용 후 핵연료(플루토늄)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권리 확보' 등 자체 핵전략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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