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국가' 효력 발생 전 해제 어려운 이유[한반도 GPS]
"민감국가 철회 외부 요청에 흔들렸다는 전례 막으려 할 것"
- 노민호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미국 에너지부(DOE)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일로 한국이 들썩였다. 소란은 다소 가라앉았지만, 일이 해결되진 않았다. 한미 양국은 최근 '조속한 해결'에 공감대를 형성해 곧 민감국가 지정이 해제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지만, 사실은 아직 갈 길이 먼 것이 현실이다.
민감국가 사태 초기엔 이 조치가 미국이 핵심동맹국 한국에 엄중한 경고장을 던지는 모양새로 비쳤다. 민감국가 지정의 사유가 한국의 '핵 무장론' 때문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면서다.
한국 사회에선 미국에 대한 일종의 '배신감'도 감지됐는데, 이 결정이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이 아닌, '한미동맹'을 중시했던 조 바이든 전 대통령 행정부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을 '브라더'처럼 챙겼던 바이든 전 대통령이 '뒤통수'를 쳤다는 이야기, 비상계엄 때문에 미국의 신뢰를 잃은 결과라는 이야기가 동시에 나왔다.
탄핵 정국 탓에 한미 최고위급 소통이 불가능해 제대로 사태 파악이 안됐자는 점은 불안감을 키우는 요인이기도 했다.
정부의 '늑장 대응'에 대한 질타와 함께 핵 무장론이 그만큼 위험한 것이라는, 우리 사회에서 논의될 수 없는 주제라는 비판적 목소리도 커졌다. 정치권에선 미국의 행정 조치가 '윤석열 대통령 탓' '이재명 대표 탓'이라는 사태의 본질과 무관한 공방도 불거졌다.
문제는 아직 미국의 민감국가 지정의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다. 미국 측은 외교 채널은 물론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미국 방문 때도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진 않았다고 한다.
외교부에서는 지금이 '조용한 외교'가 필요한 때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번 사태에 대한 여론의 반향이 너무 큰 것이, 그래서 어떤 이야기든 밖으로 샐 수도 있다는 우려가 한미 간 소통을 막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논란의 불씨는 민감국가 지정의 공식 효력이 발생하는 오는 4월 15일을 기점으로 재점화할 수 있다. 한미가 조속한 해결을 위해 소통 중이라지만, 이번 조치가 단기간에, '정무적 결정'에 의해 해결되진 않을 것이라는 게 외교가의 기류다.
한 고위 외교 당국자는 "한미가 이번 사안을 '보안 문제'라고 설명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민감국가 지정 자체가 정무적 결정이 아닌 보안과 관련된 '기술적' 사안이기 때문에 '풀겠다'고 결심해서 곧바로 해제되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소식통은 "에너지부 내에서의 보안회의 및 검토 절차만 하더라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예상했다.
에너지부가 '방첩·보안' 관련 기준에 따라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했다면 '정치적 요구'를 수용해 즉각 해제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에너지부 스스로가 '민감국가 지정·분류 프로세스'의 신뢰도와 권위를 떨어뜨리는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한미관계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미국 측은 민감국가 시스템이 외부 요청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 전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늦게 해제할 수도 있다"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소위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더 이상 '호들갑'을 떨 일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가 불안해하면 할수록 미국에겐 무기가 된다. 아직 본격적인 '트럼프 청구서'가 날아오기도 전에 패 하나를 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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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반도 외교안보의 오늘을 설명하고, 내일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한 발 더 들어가야 할 이야기를 쉽고 재밌게 짚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