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우습지만은 않은 '쎼쎼' 외교 [한반도 GPS]
'친중 논란' 부각되지만…'외교적 공간 마련' 효과도 무시 못 해
- 노민호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쎼쎼'(谢谢·고맙습니다) 발언으로 정치권이 시끄럽습니다. 국민의힘 김문수·개혁신당 이준석 대선 후보는 일제히 '친중 발언'이라며 이 후보의 외교관을 의심해야 한다는 공세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 후보는 '쎼쎼' 발언은 '친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굳이 적을 만들지 말고 국익 중심의 관점에서 '실사구시 외교'를 하자는 뜻이라고 반박합니다. 전략적 수사라는 뜻이지만, 발언이 다소 가볍다는 생각은 쉽게 가시지 않습니다. 현실의 외교는 '말'로만 해결되진 않기 때문입니다.
외교의 수사는 '신중함'이 생명입니다. 서로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조심한다고 해도 본의가 와전돼 상대국의 반발이나 오해를 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한미동맹을 유독 중시한 윤석열 정부 때도 그런 사례가 있었습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인사청문회를 앞둔 2023년 12월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중관계도 한미동맹 못지않게 중요하다"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중관계가 다소 냉각된 상황에서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노력하겠다는, 일면 원론적인 표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발언이 미국의 오해를 샀습니다. 한국 외교장관 후보자가 미국과 중국을 '동등한 관계'로 대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미국이 행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인 불쾌감을 표하진 않았지만, 워싱턴 조야가 들썩였습니다.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국대사는 "북한의 위협에 대한 대응력을 훼손하는 발언"이라고 직격했습니다.
외교부가 나서 "조 후보자는 동맹인 한미관계와 전략적 파트너인 한중관계가 같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라고 해명한 뒤에야 워싱턴의 의심이 가라앉았습니다. 외교에선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후보의 발언도 미국의 의심을 살 여지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통령 후보의 유세 기간에 나온 발언은 상대 후보와의 기싸움을 위한 정치적 의도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특정 발언 하나에 너무 많은 의미와 해석을 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외교부에서는 '쎼쎼' 발언에 의미를 꽤 부여하는 시각도 있다는 것은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민하고 섬세한 것이 외교라지만, 가끔은 파격적 발언이 외교에서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부수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핵 비확산'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 미국이 최근 한국 조야에서 제기되는 '핵 자강론'을 신경 쓰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부수 효과의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미국과 안보 관련 협상을 할 때, 미국의 '확장억제(핵우산) 공약'이 소극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한국 국민이 불안함을 느껴 핵 자강론이 불거지는 것이라는 논리를 구사할 수도 있다는 것이 한 외교관의 전언입니다.
이를 '쎼쎼' 발언에 대입하자면, 차기 대통령 유력 후보인 이 후보의 발언이 한국에 대한 중국의 호의적 제스처를 유도할 수도 있다는 것이 외교부 일각의 분위깁니다. 대중 외교에 있어 우리의 외교적 보폭을 넓힐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미국의 관세 폭탄을 맞은 데 이어 '안보 비용 청구서'도 날아올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에서 유력 대통령 후보의 발언치곤 다소 가벼웠다는 비판론도 상당합니다. 이래서 외교가 어렵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과 중국은 아직 이 후보의 '쎼쎼' 발언에 특별한 입장을 내진 않고 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발언의 취지를 '외교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슬기로운 정책 설정일 것입니다. 차기 대통령이 누구든, 12·3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으로 신뢰를 잃은 한국 외교를 살려야 하는 중책이 이미 부여됐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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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반도 외교안보의 오늘을 설명하고, 내일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한 발 더 들어가야 할 이야기를 쉽고 재밌게 짚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