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패키지' 놓고 한미 통상 줄다리기…조급한 美 vs 신중한 韓
美 "빠른 합의" VS 韓 "대선 변수, 신중한 접근"…온도차 뚜렷
5월 2차 한미 고위급 협의 예정…협상 윤곽 구체화 될 분수령
- 나혜윤 기자, 임용우 기자
(세종=뉴스1) 나혜윤 임용우 기자 = 미국의 대(對)한국 관세 조정을 위한 한미 재무·통상 장관의 2+2 통상협의가 지난주 첫발을 뗀 가운데, 양국은 7월 8일을 협상 마감 시한으로 두고 본격적인 실무 협의에 돌입한다. 양국은 관세·비(非)관세 조치, 경제안보, 투자협력, 통화정책 문제 등을 4대 핵심 의제로 설정했으며, 관세 철폐를 목표로 ‘7월 패키지(July package)’ 마련을 위한 협상 로드맵을 추진해 나간다.
다만 협상 속도와 시점을 두고 양국은 확연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관세발(發) 인플레이션과 금융시장 불안을 의식해 '이르면 내주' 합의를 언급하며 조기 성과를 압박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6·3 대선과 새 정부 출범 이후를 염두에 두고 '7월 포괄합의'를 목표로 속도 조절에 나섰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공식 협상 의제 외에도 방위비 분담금, 알래스카 LNG, 자동차 관세 면제 같은 민감한 사안들이 물밑에서 추가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미국 측이 'A 게임(최선의 제안)'을 언급하고, 양해각서 수준의 대략적 합의(agreement on understanding)를 시사한 것도 조기 성과를 위한 압박용 카드로 해석된다.
27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지난 24일(현지시간) 한미 재무·통상 수장의 '2+2 통상협의'와 한미 통상장관 협의가 연달아 개최됐다. 이번 첫 고위급 관세 협의에서 양측은 미국의 상호관세 90일 유예가 끝나는 7월 8일까지를 협상 데드라인으로 정하고 향후 구체적 의제와 일정을 조율하기로 했다.
우리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기조인 무역 불균형 해소와 제조업 부흥 정책을 감안할 때, 전략적인 산업 협력 파트너인 한국에 상호관세나 자동차 등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바탕으로 관세 면제와 예외 적용을 관철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이번 협의에서 미국이 요구할 구체적인 청구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미국은 그간 연례 무역장벽 보고서 등을 통해 30개월 미만 소고기 수입 제한, 구글의 정밀지도 반출 제한, 약값 책정 정책, 스크린 쿼터제 같은 비관세 장벽을 꾸준히 문제 삼아왔다. 전문가들은 향후 실무 협의 과정에서 미국이 이같은 이슈를 꺼내면서 한국 측의 추가 양보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특히 단기 성과에 방점을 찍고 있다. 전 세계를 상대로 통상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개별 국가와 협상이 길어지면 정치·경제적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미·노르웨이 정상회담에 배석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예상보다 빠르게 진전되고 있으며, 이르면 다음 주 기술적 조건(technical terms)에 대한 논의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 주 중 이해에 기반한 합의에 이를 수도 있다"고 보고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여기서 미국이 언급한 '기술적 조건'이라는 표현도 관심사다. 정부 관계자는 "논의 테이블에 오른 쟁점들 중 일부를 선제적으로 정리하는 부분합의 또는 협의 틀 마련을 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실제로 미국이 'A 게임'을 언급하며 협상판을 조기 정비하고 성과를 연쇄적으로 발표하려는 '스포트라이트 협상'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정부가 국내 금융시장과 지지층을 의식해 관세 파장에 대응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는 의도로, 협상 과정을 세분화하고 단계별 성과를 부각하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앞서 미국은 일본과의 협상에서도 세부 조율을 서두르려 했던 만큼, 한국과의 협상 역시 속전속결로 끌고 가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하지만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회담 직후 국내 언론 대상 브리핑에서 '잠정 합의' 등 어떤 내용도 미국과 논의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최 부총리는 베선트 장관의 '양해 관련 합의' 표현에 대해 "앞으로 (통상) 협의의 틀이나 범위를 어떻게 정할지, 또 협의를 어떤 체계로 할 건지 등을 마련했다는 의미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베선트 장관이 말한 '기술적인 세부 사항'에 대해서도 안 장관은 "(한미 간) 실무협의가 다음 주에 개최될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한다"고 했다.
특히 최 부총리는 "한국의 정치 일정과 통상 관련 법령, 국회와의 협력 필요성 등 앞으로 협의에 있어 다양한 고려 사항이 있음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미 측의 이해를 요청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한미 간 합의에 있어 한국의 대선이 변수라는 것을 시사한 셈으로, 협상에서 속도 조절이 필요함을 요청한 것이다.
다만 베선트 장관이 언급한 '이르면 내주'라는 시점과 '기술적 조건', '양해에 관한 합의'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공개되지 않아 다양한 해석과 추측만이 오가고 있다. 정부 역시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 있지 않아 베선트 장관의 의도와 배경 파악에 추가적인 탐색이 필요하다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해 정부 안팎에선 5월 미국 통상 교섭을 총괄하는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방한을 주목하고 있다. APEC 통상 장관 회의 참석차 한국을 찾는 그리어 대표와의 고위급 협의는 단순한 중간 점검을 넘어 양측이 교환할 실질적인 양보안과 상호 요구사항을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계기로 '줄라이 패키지'로 가는 협상판의 윤곽이 구체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속도전을 강조하고 있는 미국에 휘둘리지 않고 차기 정부가 결정할 수 있도록 신중하게 실무 협상을 이끌어 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지금 정부에서 절대 결정하면 안 된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약한 국면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면 다음 정부가 협상할 수 있는 여지를 너무 줄이게 된다. (미국이) 중국에도 관세를 인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할 정도인 만큼 조금 더 (시한을) 미뤄도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도 "농산물 등 일정 부분에 대해 양보할 건 하더라도 우리가 가지고 갈 수 있는 강점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면서 "협상의 물꼬는 열어놓고 다음 정부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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