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관세협상 D-70…"과속은 NO, 기어 올릴 땐 올린다"
관세 유예기간까지 촉박…정부 "한미 FTA 개정 때보다도 복잡해"
첫 분기점은 15~16일 2차 한미 통상장관 협의…3주간 중간평가
- 나혜윤 기자
(세종=뉴스1) 나혜윤 기자
"미국과의 통상 협의, 과속할 이유는 없지만 머뭇거릴 여유도 없다"
박성택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은 전날(28일) 지난주 개시된 한국과 미국의 대(對)한국 관세 조정을 위한 통상협의 결과를 브리핑하며 일각에서 제기되는 '속도 조절론'에 이같이 선을 그었다.
박 차관의 발언은 한미 관세 협상 데드라인이 70일(7월 8일) 앞으로 좁혀진 가운데, 정부가 상황에 따라 협상 속도를 조절하되 필요할 경우에는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조기대선 전까지 협상 타결 가능성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남은 70일 동안 미뤄둘 수 없는 핵심 사안은 현 정부에서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이는 차기 정부가 협상의 부담을 온전히 떠안지 않도록 현 정부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정리해 두겠다는 방침으로 풀이된다. '국익 최우선' 원칙 아래 관세 정책으로 인한 국내 피해를 최소화하고, 협상의 공백을 막겠다는 것이다.
29일 산업부에 따르면 전날 박 차관은 지난 24일 개최한 한미 2+2 관세협의와 관련한 성과 브리핑에서 "액셀을 밟느냐, 밟지 않느냐, 기어를 1단으로 놓고 굴러가는 걸 염두에 둬야 할지는 상황 전제가 중요할 것 같다"면서 "70일이면 매주 협상을 해도 몇 번 못한다"라고 시한의 촉박함을 강조했다.
이번 관세 협의는 국가별·품목별로 관세가 차등 적용됨에 따라 201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때보다도 복잡하고 비정형화된 방식이라는 점에서 난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박 차관도 "(협의체) 기본 틀을 짜는데도 시간이 걸렸고, 경험하지 못한 길을 다 같이 끌어가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어려움을 토로했다.
복잡한 협상 구조와 촉박한 일정 속에 정부는 속도 조절과 시급한 쟁점 처리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을 고민 중이다. 특히 협상 데드라인을 앞두고 무리하게 서두르진 않겠지만, 시한 안에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부분에는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게 정부 기조다.
박 차관은 "70일 내 결실을 맺기엔 도전적인 상황"이라며 "지금부터 대선까지 한 달 반 동안 협상을 묻어둔다면, 이후 한 달 만에 이 많은 사안을 처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누가 (차기 정부가) 되든 이런 상황은 원치 않을 것"이라며 "현 단계에서 양국의 관심 사항을 명확히 하고, 이견 없이 속도를 낼 부분은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박 차관은 관세 폐지를 목표로 7월까지 마련하기로 한 '줄라이 패키지'의 최종 합의는 차기 정부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이에 따라 협상 공백을 최소화하고 쟁점 정리를 마쳐두는 것이 현 정부의 중요한 과제가 됐다. 그래야 차기 정부가 협상 테이블을 이어받아 실질적인 합의로 이어갈 수 있는 시간과 협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차관은 "(대선 이전까지)양국의 관심 사항을 명확히 하고 이견 없는 부분은 속도를 내겠지만 한미 협의가 '패키지 딜', 종합적으로 담는 것이기 때문에 대선 전에 의사결정이 끝나있는 상태가 되는 것은 이론상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양측의 입장 차이를 좁히기 위한 실무 작업을 이번 주부터 시작한다. 한미는 이번 주 중반부터 △관세·비관세조치 △경제안보 △투자협력 등 3개 분야를 담당할 6~7개가량의 전담반(워킹그룹)을 꾸릴 예정이다. 환율 분야는 양국 재무당국이 별도의 트랙으로 논의한다. 워킹그룹이 구성되면 이르면 다음 주부터 첫 실무협의가 본격 개최될 전망이다.
그간 관세 협의를 위해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은 다섯 차례 방미하며 △관세 △비관세 △에너지 △조선 △알래스카 LNG 개발 등 5개 분야의 실무협의체 구성을 논의해 왔다.
하지만 이번 첫 고위급 협의 결과, 협상 분야는 △관세·비관세조치 △경제안보 △투자협력 △환율 등으로 조정됐다. 당초 계획보다 협상 범위가 넓어진 점을 감안하면, 경제안보와 환율 분야가 미국 측 요청에 따라 새롭게 논의 테이블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협의의 첫 분기점은 5월 15~16일 제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다. 안 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지난주 가진 첫 고위급 협의 이후 3주 만에 만나 그동안의 협의 결과물을 점검하고 조율에 나설 예정이다.
정부 안팎에선 그리어 대표와의 두 번째 고위급 협의는 단순한 중간 점검을 넘어 양측이 교환할 실질적인 양보안과 상호 요구사항을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계기로 '줄라이 패키지'로 가는 협상판의 윤곽이 구체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다.
박 차관은 "워킹그룹에는 누가 수석대표가 되어서 분과를 이끌어 갈지, 앞으로 협의를 위한 틀을 이번 주 한미 실무급이 만나 마무리 지을 예정"이라며 "내주 중에는 본격적으로 워킹그룹 협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그다음 주가 되면 제주도에서 한미 통상장관이 만나 추가적인 진전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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