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욱 교수 "초당적 독립기구에 예산편성 권한주고 구조 문제 해결해야"
[3040, 차기 정부에 바란다]⑨…강민욱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선거승리 급급 단기성과 좇는 관성 끊어야…연 1% 저성장 직시"
- 김혜지 기자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강민욱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47)는 차기 정부가 여야 정치권으로부터 자유로운 초당적 기구를 설치해 예산 편성 등의 실질적인 행정 권한을 부여하고, 저출산·지방 붕괴를 비롯한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지난 2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뉴스1과 '3040, 차기 정부에 바란다' 인터뷰를 갖고 "여야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오로지 국가의 장기 이익에 따라 일관되게 정책을 추진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연금 개혁의 경우, 저출산 문제를 해소하지 않고 법조문만 고쳐 고갈 시점을 늦추는 현재 방식으로는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출산율을 높이려면 거점 도시를 육성해 지방 붕괴를 최대한 지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한국은 이미 구조적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며 "앞으로는 연 1%대 성장이 현실적인 목표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정치권과 국민 모두 이런 사실을 인정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며 "특히 정치권은 선거를 앞두고 비현실적 성장 목표를 제시해 유권자에게 장밋빛 희망을 주는데, 이는 무리한 재정 지출로 이어지고 경제 기반을 약화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강민욱 교수와의 일문일답.
-차기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과 피해야 할 일은.
▶우선 저출산, 지방 붕괴 같은 장기 구조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무엇보다 선거 승리에 급급해 단기 성과를 좇는 관성을 이번에는 끊어내야 한다. 2~4년 선거 주기에 맞춰 정책 방향이 뒤바뀌는 구조 속에서는 어떤 장기 과제도 해결할 수 없다. 단기 이익에 집착하거나 정책을 선거용으로 왜곡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정치권은 구조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함에도, 선거 승리를 위해 '당장은 부담되는 문제를 덮어두자'는 식으로 근본 대책을 유예하는 일을 반복했다. 이로 인해 구조 문제는 점점 악화했다. 장기적 관점이 필요한 결정을 표를 의식해 어설픈 타협으로 왜곡한 결과가 쌓여 현재의 성장 동력 약화, 지방 소멸, 저출산 심화 등 심각한 구조 문제가 초래됐다. 앞으로는 선거에서 이기는 데 급급해 경제를 희생시키는 패턴을 반복해선 안 된다.
-구조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전문가들을 모아 행정부는 물론 여야로부터도 독립된 초당적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이를 통해 특정 정권이나 여야의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오로지 국가의 장기 이익에 따라 일관되게 구조 정책을 추진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초당적 독립 기구는 단순히 대통령 직속 자문 기구 수준에 머물러선 안 된다. 헌법이나 특별법에 근거한 '진짜 독립 기구'여야 한다. 수장 임기는 대통령과 유사하게 최소 4년 이상 보장해 정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하며, 예산 편성 권한도 갖춰야 하고, 정부 정책 이행을 감시하고 평가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받아야 한다.
-연금 개혁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은 연금 제도의 본질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저출산이라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어떤 연금 개혁도 일시적인 시간 벌기에 불과하다. 비유하자면 '폐수 공장은 그대로 두고 밑에서 물만 퍼내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처럼 법조문을 고쳐 수지 균형을 맞추는 데 초점을 두면, 고갈 시점을 잠시 늦출 뿐 위기는 피할 수 없다. 연금 개혁은 실패를 반복할 것이고, 장기적으로 더 큰 재정·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
-출산율 제고 방안은.
▶가장 핵심은 지방 붕괴를 막거나 적어도 늦추는 것이다. 극단적 수도권 인구 집중은 집값을 폭등시키고 청년의 결혼과 출산을 어렵게 만든 주된 원인이 됐다. 이에 지방 거점 도시를 육성해 인구 분산을 유도하고, 수도권 집중을 완화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외국인 노동자 유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이로써 외국인 노동자들이 세금과 연금에 기여할 수 있도록 경제 기반을 보완해야 한다. 문화적인 접근도 필요하다. 고학력 중심, 사무직 선호 중심의 사회 문화를 바꿔야 한다. 모두가 대졸, 사무직을 지향하는 문화에선 일자리 미스매치 등으로 출산이 자연스레 미뤄진다.
-부동산 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부동산 문제는 정치권의 단기 성과 집착으로 인한 대표적인 폐해다. 선거를 앞두고 집값을 급하게 누르거나 반대로 부동산 경기를 살리겠다면서 대출 규제를 느슨하게 하는 식의 임시방편이 계속됐다. 이런 접근은 부동산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시장 왜곡을 심화시켰고, 장기적으로 자산 불평등을 확대했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장기적 관점에서 수요와 공급 균형을 맞추는 공급 위주의 정책과 지방 거점 강화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
-지방 균형 발전과 관련해 세종시 행정수도 이전이 논의되고 있다.
▶충청권 표심을 의식한 선거 전략으로 보인다. 실질 경제 논리는 없다고 평가한다. 행정수도 이전에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지만, 실제로 지방 경제 활성화 효과는 미미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수도를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옮겼을 당시처럼 수도가 바뀐다고 새로운 경제 중심지가 자동으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지방 균형 발전은 별도의 전략과 산업 육성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
-지방 경제를 살리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이제 지방 전체, 특히 농촌 지역을 살리는 방안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인정해야 한다. 대신 광역시 등의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쳐야 한다. 산업과 인구를 광역시로 몰아 새 경제 거점으로 육성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다.
-한국 경제 전망은.
▶한국은 이미 구조적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 연 3~5%대 성장은 더 기대하기 어렵다. 앞으로는 1%대 성장이 현실적 목표가 될 것이다. 문제는 정치권과 국민 모두가 이런 사실을 인정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여전히 비현실적인 성장률 목표를 제시해 유권자에게 장밋빛 희망을 주려 한다. 이런 행태는 무리한 재정 지출, 부채 증가로 이어지고, 장기적으로 경제 기반을 약화시킬 뿐이다.
-미국 관세 정책은 어떻게 봐야 할까.
▶트럼프의 관세 부과는 돌발 행동이 아니다. 중산층 붕괴, 백인 노동자 계층의 불만 등 미국 내 구조적 변화가 관세 정책을 촉발했다. 미국은 언제나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 왔다. 과거 한국이 미국의 덕을 본 것은 사실이나, 이는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미국은 이제 한국을 '우방'이 아니라 '일반 무역 상대국'으로 본다. 이런 변화는 구조적이라 되돌리기 어렵다. 트럼프의 등장이 변화 시점을 앞당겼을 뿐 언젠가 일어날 일이었다.
☞강민욱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97학번으로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를 졸업한 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경제학과에서 석사(2006년) 과정을 마치고, 미국 코넬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2013년) 학위를 취득했다. 싱가포르 난양공과대학교 경제학과 조교수를 거쳐 현재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거시경제, 재정, 경제이론 등이다. 과거 와튼스쿨 산하 솔 스나이더 창업연구소 연구원(2008~2009)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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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1은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3040세대(30~40대) 교수와 전문가를 릴레이 인터뷰한다. 정치·외교안보·사회·경제·과학 분야에서 활동하는 소장(少狀) 학자들의 생각을 담았다. 현장과 소통하며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조기 대선에 임하는 유권자의 선택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