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영화에도 美관세 예고…이번주 한미 실무협의 촉각(종합)
미국, 車·반도체·철강 이어 의약품 품목별 관세 예고
美 USTR 대표 내주 방한 예정…15~16일 '최종 안건' 조율 전망
- 이철 기자, 이정현 기자, 김승준 기자
(세종=뉴스1) 이철 이정현 김승준 기자 = 정부가 미국과의 통상·관세 협상에 본격 착수했다. 양국은 '관세 협상 기술 협의'를 마무리한 뒤 이번 주부터 통상현안 관련 세부 의제를 조율하고 있다.
양국은 고위급 회담에서 세부 의제와 관련한 마지막 조율 과정을 거칠 예정이다. 이후 양국 통상장관들이 합의한 안건을 위주로 본격적인 협상이 진행될 전망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날 의약품에 대한 관세 부과 조치를 예고한 가운데, 양국 통상장관의 협의 테이블에 어떠한 의제가 올라갈지도 관심이 쏠린다.
우리 정부는 내달 들어설 차기 정부의 부담 완화를 위해 '줄라이 패키지(July package)' 처리를 목표로, 속도 조절에 나선 상태다. 그러나 미국은 연일 '협상 속도'를 강조하면서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6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통상 협의 실무 총괄을 맡은 장성길 산업부 통상정책국장을 비롯한 한국 대표단은 지난 2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 관계자들과 만나 이틀간에 걸친 기술 협의를 마쳤다. 기술 협의는 고위급 회담 전 실무급에서 협의체 구성과 의제 등을 조율하는 절차다.
구체적인 회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세부 작업반(워킹그룹) 구성을 위한 협의가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한미 2+2 장관급 통상 협의'의 후속 조치로 6개 정도의 작업반을 구성, 협의를 구체화해 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작업반은 △관세·비관세조치(비관세 장벽) △경제안보(무역균형) △투자협력 등 분야에서 세분화해 구성을 완료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최근 자동차, 반도체, 철강·알루미늄에 품목별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이날 의약품에 대한 품목별 관세를 예고하면서 전 세계를 압박하고 있다. 또 외국에서 만든 영화에 대한 관세를 검토할 뜻을 밝히면서, 전방위 관세 확대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약품 가격과 관련해 다음 주에 큰 발표를 할 것"이라면서 "다른 나라와 비교해 우리는 매우 불공정하게 갈취당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에는 비관세 품목에 대해서도 문제 삼고 있다. 미국은 그간 30개월 미만 소고기 수입 제한에서부터 구글의 정밀 지도 반출 문제, 약값 책정 정책 등 다양한 비관세 장벽이 존재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미국이 이번에 작업반 구성 의견을 내는 과정에서 이 같은 우선 요구 사항을 적극 개진했을지 주목된다.
작업반 구성과 함께 세부 의제 조율을 위한 한미 간 실무급 협의는 이번 주부터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무급에서 세부 의제 조율이 완료되면 이달 15~16일 제주에서 열릴 APEC 통상장관회의에서 최종 안건 확정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APEC 회의에는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참석한다. 그리어 대표의 참석에 맞춰 양국은 고위급 회담을 진행하기로 했다. 카운터 파트로 우리 정부에서는 안덕근 산업장관이 나설지,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이 참석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국가별 상호관세 유예 기간인 90일(7월 8일 시행) 동안 90여개국과 개별 '관세 협상'을 마쳐야 하는 미국은 연일 '속도'를 강조하면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취임 100일을 맞아 진행한 미시간주 머콤카운티 집회에서 '관세 협상'과 관련 "(그들이 원하는) 상품을 가진 것은 우리이며 미국에 있는 것도 우리다. 그들은 우리 상품의 일부를 원한다. 우리는 그냥 가격을 정할 수 있지만 난 공손하고 친절해지고 싶다. 하지만 협상이 너무 오래 걸리면 그냥 가격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 프랑스, 스페인, 중국 등 전 세계 국가가 미국과 무역 협상을 하려고 찾아온다"면서 "우리는 협상하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도 지난달 29일 '한국과 일본이 선거 일정으로 무역 협상이 빨리 진행되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오히려 반대"라며 "이 나라들이 선거 전에 무역 협상의 틀을 완성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대선 전 무역협정의 틀을 마련해 미국과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점을 보여주길 원하고 있다"며 한국이 선거 전에 무역 협상을 마쳐야 현 정부가 그 성과를 가지고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베선트 재무장관의 주장에 우리 정부는 즉각 부인했다. 기획재정부는 부처 합동 설명자료를 내 "정부는 한미 통상협의 시 대선 전에 협상을 마무리하기를 원한다고 언급한 바 없다"고 일축했고 최상목 전 부총리도 직접 "서두르지 않는다"며 "대선 전에 무역 협상을 마무리 지으려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라고 밝혔다.
정부는 대선과 국회와의 소통 등을 고려해 서두르지 않고 신중하게 협상을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안덕근 산업장관도 '아시아 주요국이 선거 전에 통상 협상을 마무리 짓기를 원한다'는 취지의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의 발언이 사실이냐"는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의 질의에 "미국과 2+2 통상 협의 결과, 절대 대선 날인 6월 3일까지 관세 협상의 결론을 낼 수 있는 절차적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지난번 2+2 통상 협의에서는 7월까지의 상호관세 유예 기간에 저희가 협의하는 것으로 했다"며 차기 정부 출범 전까지 한미 간 관세 협상을 마무리 짓지 않겠다는 기존 정부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사상 초유의 '대대대행 체제'에서 협상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진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사퇴한 데 이어 한미 장관급 2+2 통상 협의를 총괄하는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야당의 탄핵 압박에 사퇴하면서 우리 정부의 경제 컨트롤타워가 사실상 부재한 상태다.
이런 상황 속 미국은 협상의 '속도'를 재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협상의 성실함'은 보이면서, 시간을 지연시키는 전략으로 결정권은 차기 정부에 넘겨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이번 협상은 시간을 끌면 끌수록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미국 내부에서도 트럼프 지지율이 떨어지고, (통상)정책이 말도 안 된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전 세계 국가들이 트럼프의 말대로 응한다면, 이것은 시장에 트럼프 정책에 대한 긍정 신호를 줄 수 있다. 반대로 시간을 끌면서 정책의 실효가 없다는 신호를 준다면 정책에 대한 비판이 더 거세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 정부도 (대대대행 체제에서)무엇인가 책임을 지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열심히 협상하는 모습은 보이되 시간을 지연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산업부 통상정책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인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통상협상은 일반적으로 톱-다운(Top-Down) 방식의 의사결정이 꼭 필요한 과정"이라며 "하지만 우리는 당분간 대선 전까지 그런 중요한 결정을 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허 교수는 "현재 권한대행이 비관세장벽 등 부처별 생각이 상이하고 이해당사자 간 이견이 있는 사안들을 잘 조절해야 한다"면서 "(컨트롤타워 부재 속)실무 쪽에서 탄탄하게 협상을 해나가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허 교수는 대선을 앞두고 '통상협상이 정치 이슈화'되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통상협상이 국내 정치 이슈화하면 협상 대표들이 움직일 수 있는 운신의 폭이 굉장히 제한될 것"이라며 "협상은 주고받는 것인데, 받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주는 것에 대해서만 나중에 정치적 책임을 묻는 식이 된다면 전반적으로 우리 협상대표단을 위축시킬 뿐"이라고 부연했다.
iron@dqdt.shop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