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준, 경계 없는 배우의 아우라 [정덕현의 페르소나K]
"저는 무엇보다 관찰을 우선시 합니다."
(서울=뉴스1)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달달한 사랑꾼(넝쿨째 굴러온 당신), 더할 나위 없이 착한 직장 상사(직장의 신), 돈에 미친 사이코 사기꾼(푸른 바다의 전설), 10·26 사태를 재해석해 탄생한 정보부장(남산의 부장들), 양아치 같지만, 마음속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로 점철된 형사(마우스), 코믹한 섹시가이(핸섬가이즈), 나이 든 희대의 살인마(살인자o난감), 비밀을 숨기고 있는 국무총리(지배종), 보험금을 노리고 교통사고로 위장해 아버지를 죽이는 패륜아(악연)…. 이희준은 볼 때마다 새로운 얼굴로 대중들을 놀라게 하는 배우다. 너무 많은 얼굴들이 있어 뭐가 진짜 얼굴인지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필모그래피는, 그가 가진 무한한 열린 가능성의 밑그림이다.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연극을 넘나들고, 멜로에서부터 스릴러, 코미디를 종횡무진하며, 배우이면서도 동시에 영화감독까지 넘보는 이희준은 실로 ‘경계 없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하지만 그 모든 역할의 중심에 ‘배우’가 놓여 있다고 말하는 이희준은, 모든 영역과 경계가 흐릿해짐으로써 보다 통합적이고 다차원적인 시선과 관점을 요구하는 현시대의 요구를 배우라는 본업 안으로 무한히 흡수하고 있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가 보여주는 경계 없는 활약은 그래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야만 하는 복잡해진 현재를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 스릴러부터 멜로까지 한계 없는 이희준의 세계
도대체 저런 역할을 어떻게 소화해 낼까. 이희준이 등장하는 작품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살인자o난감'에서 송촌 같은 노인 악역에 이어 최근 공개된 '악연'에서의 사채남 박재영 역할도 그렇다. 거액의 사채에 죽을 위기에 몰리자, 아버지가 든 생명보험을 노리고 사고로 위장한 살인을 청부하는 인물이다. 역할도 극단적이지만, 이 작품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인물의 얽히고설킨 사건들을 촉발하는 인물이다.
"'악연'은 처음에는 8부작으로 감독님이 써서 주셨는데 그때는 다른 인물들까지 더 있었거든요. 그 모든 인물이 다 얽혀 있고 치밀하게 짜여 있는 데다 허튼 신이 하나도 없는 대본이어서 너무 재미있었어요. 또 제가 그 첫 번째 에피소드로 이 이야기의 시작을 여는 거여서 더 재미있게 작업했던 것 같아요. 최강 빌런이지만 그 인물은 또 그런 삶을 살았던 거고, 여러 환경과 요인이 겹쳐서 아버지를 청부 살인할 수밖에 없는 판단을 내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일상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인데, 연기자들은 이런 역할을 배역으로 할 수 있다는 게 재밌는 것 같아요. '악역'에서 장례식장에서 아버지 조의금 함을 막 들었다 놨다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걸 연기하고도 컷하면 막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그랬어요. 너무나 금기시되는 일들이잖아요."
물론 금기를 넘는 역할을 연기한다는 게 결코 배우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어쨌든 그 역할에 들어갔다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 정신적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일 게다.
"배우들은 그래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나 휴식처가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명상을 한다거나 등산을 한다거나. 배우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저는 항상 작품 할 때마다 그 영향이 있는 편이어서 촬영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명상 같은 리프레시를 하는 게 꼭 필요해요. 저는 배우들이 정신과 치료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외국은 그런 시스템이 잘 돼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배우 스스로 해야 하는 것 같아요. 물론 치료라기보다는 상담을 통해 풀어주는 거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게 현실이 아니라는 걸 인지하게 해주고 또 데미지가 큰 역할을 했을 때는 그렇게 애썼던 스스로를 좀 다독여 주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에게 연기자들은 여전히 신비한 존재들이다. 자신과 전혀 다른 인물이나, 심지어 일상을 벗어난 판타지에 가까운 캐릭터에 막 들어갔다 나오기를 자유자재로 하는 이들이 아닌가. 이희준은 어떤 계기로 배우의 세계에 들어오게 됐을까.
"처음부터 연기자에 꿈을 갖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원래는 공대생이었어요. 별로 꿈도 없이 지내다가 군대 가는 시점에 교통사고가 났는데 군대도 면제되고 학교도 다시 가기 싫은 상황에 우연히 포스터에 난 모집공고가 끌려서 대구에 있는 극단을 찾아가게 됐죠. 그러면서 점점 연기가 재밌어졌고 한예종에 들어가서 배우며 모든 배우가 그렇듯이 보조 출연, 단역부터 시작했죠. 그러면서 영화 '화차' 같은 작품에 조금 대사가 생기고, 감독님들이 예쁘게 봐주셔 주셔서 조금씩 큰 역할을 맡으면서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팬들에게 가장 먼저 강렬하게 이희준 배우를 각인시킨 작품은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었을 듯하다. 조윤희 배우와 합을 맞춘 멜로 연기를 선보였는데, 무심한 척 애정을 보여주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최근 장르물에서 보여준 섬뜩한 역할들을 줄곧 해왔던 이희준으로서는 그런 멜로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을 법했다.
"제가 멜로 하고고싶어서 고봉수 감독님하고 한 작품이 '귤레귤레'예요. 이번에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일 예정이죠. 고봉수 감독님하고는 전에 영화 '습도 다소 높음'을 함께 했었는데 감독님한데 멜로가 하고 싶다고 같이 만들어보자 해서 한 작품인데,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펀치 드렁크 러브' 같은 멜로죠. 멋있는 멜로가 아니라 상처 많은 사람들의 멜로, 현실적인 멜로를 해보자고 해서 같이 한 작품이죠."
◇ 이희준의 연기는 관찰에서 나온다
최근 들어 이희준이 부쩍 눈에 띄는 건 글로벌 OTT를 통해서다. 넷플릭스에서 '살인자o난감'에 이어 '악연' 같은 드라마를 했고 또 영화 '황야'에도 출연했다. 또 디즈니+(플러스)에서는 '지배종'에 등장하기도 했다. 물론 영화 시장이 어려워지면서 제작 자체가 줄어들다 보니 OTT로 영화 인력도 또 배우들도 많이 옮겨오는 추세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희준 배우가 가진 연기적 역량과 이미지가 글로벌 OTT 장르물에서도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감독님들이 그냥 평범한 얼굴에서 그런 나쁜 짓을 하는 게 어쩐지 더 믿어지나 봐요. 저는 배우로서 되게 평범한 얼굴인데 그것이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배역으로 다가갈 수 있는 이점이 있죠. 제가 만약에 잘 생겼으면 '악연' 같은 작품 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아요."
그는 멜로부터 스릴러까지 다양한 장르들을 섭렵했고, 분야에서도 연극, 영화, 드라마를 넘나든다. 연기적 차원에서 봤을 때 그가 생각하는 이 분야의 차이점은 뭘까.
"제가 생각한 비유인데 그림 그릴 때 연필심의 굵기 차이인 것 같아요. 연극은 조금 더 뭉툭한 걸로 그리는 거고, 영화는 좀 더 세밀하게 깎아서 그리고, 드라마는 그 중간 정도죠. 그런데 그 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주체는 저이고 또 제 진심도 다 똑같기 때문에, 표현하는 방법이 좀 더 세밀하냐 거치냐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컷마다 잘라서 찍고 연극은 한 번에 다 외워서 하는 차이가 있어서 그 접근방식이 다를 것 같지만 저는 다 똑같이 합니다. 영화도 이전 신과 이후 신을 통틀어서 관통하면서 생각하죠. 연극을 오래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은데 영화든 드라마든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연기자마다 연기하는 방법도 저마다 다르다. 메소드 연기를 하는 이들도 있고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이들도 있다. 이희준만이 하는 연기의 비법은 뭘까.
"저는 무엇보다 관찰을 제일 우선시합니다. '악연' 같은 경우, 저는 그렇게 말하지 않으니까 좀 더 가볍고 패륜적인 말투 이런 걸 찾으려고 리서치를 많이 하죠. 작가님들이나 감독님들이 리서치하는 것처럼 저도 작품을 받으면 그런 리서치를 많이 합니다. 실제로 그런 친구들이 있을 법한 곳을 찾아다니고, 혼자 술 마시면서 그런 친구들을 관찰하기도 하죠. 다른 배우들은 다른 방법이 있겠지만, 저는 보지 않고는 좀 어렵더라고요. 직접 해보는 경험도 중요한데 위험해서 할 수 없는 건 자료를 찾는 등 대체할 수 있는 거를 생각하죠."
관찰로 그 인물의 내면까지 감정이입하고 몰입한다는 건 대단한 감수성을 요구하는 일이다. 대체로 연기자들을 만나보면 내성적이고 감수성이 예민한 분들이 적지 않다. 그런 성격에 영화 '핸섬가이즈'의 살벌한데 코믹한 그런 역할을 연기 해내는 걸 보면 신기한 느낌마저 든다.
"사실 그것도 제가 아는 지방에 있는 친구를 관찰해서 한 거예요. 그 친구랑 소주 한잔하면 '희준아, 여기 소주 한 잔 있는데, 여기 물방울이 떨어졌어. 여기에 뭐가 보여…' 이렇게 얘기해요. 그 친구가 화가인데 대본을 보자마자 떠올라서 참고를 많이 했죠. '보고타'를 찍을 때도 현지에서 미리 사람들 관찰을 했는데 한국 사람들도 수염도 많이 기르고 해서 그런 식으로 표현해 보려고 했죠. 저는 캐릭터에 대한 리서치 작업을 즐기는 편이에요."
◇ 공황장애를 극복하게 한 법륜스님과의 즉문즉설
이희준은 2018년 '병훈의 하루'라는 단편영화를 통해 감독으로도 이름을 올린 바 있다. 강박성 장애를 가진 병훈이 보내게 되는 모험 같은 하루를 통해 이러한 장애를 가진 이들의 어려움을 공감하게 만들고, 나아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가를 새삼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이희준이 겪었던 공황장애의 경험이 묻어난 자전적 작품이기도 하다.
"공황장애가 너무 심해서 연기를 그만둘까도 고민했었어요.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 막 끝났던 시점인데 무명 생활을 너무 오래 해서인지, 갑자기 기회들이 쏟아지니까 다 하고 싶었나 봐요.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촬영하면서 영화 '감기'에, 또 연극도 하면서 독립영화 '환상 속의 그대'까지, 이렇게 네 개를 동시에 한 거예요. 스케줄에 쫓겨 공연 시간을 제대로 못 맞춰서 십오 분 전에 도착해 공연하는데 대사가 안 나오는 공황 증세가 생겼어요. 법륜스님을 찾아가서 물었죠. '연기를 너무너무 사랑하고 배우는 배역을 공감해야 하는 역할인데 공감은커녕 당황하는 신에서 대사를 더듬을까 걱정하는 상황이다, 제가 되고 싶었던 배우랑 격차가 너무 커서 그게 너무 괴롭고 연기를 그만두고 싶은데 또 연기를 너무너무 사랑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했더니 두 가지 방법을 알려주셨어요. 첫 번째는 '컴퓨터가 하드웨어가 있고 소프트웨어가 있다면 본인은 겉은 멀쩡해 보이는데 소프트웨어가 너무 뜨겁다, 컴퓨터라면 껐다 켜면 되는데 사람이 어떻게 그러냐, 정신과를 가서 신경안정제를 좀 먹으면 그 뜨거움을 조금 식힐 수 있다'고 하셨어요. 두 번째는 '그렇게 당황하는 신에 본인이 더듬을까 걱정되면, 그 캐릭터가 얼마나 당황스러웠으면 그렇게 할까란 마음으로 마음껏 더듬으면 안 돼요?'라고 되물으시더라고요. 그 한마디로 확 해결된 거예요. 막 울고 너무 가벼워진 거예요."
실로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은 이희준에게는 작품을 탄생시키는 또 다른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너무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에 갔는데 이걸 너무 간직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병훈의 하루'라는 대본을 쓰게 됐고, 써놓은 것만으로도 만족했는데 이걸 그냥 찍어볼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예종 다녔던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나 이거 썼는데 같이 좀 해보자 해서 나온 영화가 바로 '병훈의 하루'예요. 순전히 절 위한 영화였던 거죠.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오픈했을 때 반응이 좋았어요. 어떤 관객분들은 많이 우시고, 어떤 관객분들은 공황장애로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괜찮아 괜찮다고만 했는데 이렇게 힘든 건지 몰랐다고 공감하게 돼서 정말 고맙다고 하시기도 했죠. 대사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해외에서도 상을 좀 받았죠. 시카고랑 런던에서 상을 받았거든요."
이희준은 최근 두 번째로 '직사각형 삼각형'을 연출했다. 특이한 제목의 이 작품은 어느 날 한 집에 모인 가족들이 해묵은 갈등들을 끄집어내면서 결국 드잡이를 하게 되는 상황을 담은 작품이다. 이 풍경을 통해 우리 사회의 여러 갈등 국면이 왜 생겨나는가를 풍자적으로 그린 수작이다. 흥미롭게도 '직사각형 삼각형'이라는 제목 역시 법륜 스님의 설법에서 나온 것이었다.
"어느 날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서 부부싸움 하며 서로 힘들다고 하는 부부에게 법륜스님이 종이를 꺼내서 접어 입체 삼각형을 만든 다음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보는 관점에 따라 삼각형으로도 보이고 사각형으로도 보이는데, 삼각형으로 보이는 쪽에 있는 사람은 사각형으로 보이는 사람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요. 그러니 다른 관점을 이해하면 서로 이렇게까지 싸울 이유가 없다는 거죠. 나라든, 정치든, 부부든."
◇ 본업은 배우지만 경계를 넘나드는 배우
단편이지만 밀도 있는 작품으로 감독으로서도 충분히 자질이 있어 보이는 이희준이다. 혹여나 감독으로서도 뜻이 있는 건 아닌지 물었지만, 이희준은 단호하게 감독에는 뜻이 없고 자신은 연기를 하고 싶다고 선을 그었다.
"사실 이번 '직사각형 삼각형'에서도 진선규 배우가 했던 역할을 제가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여덟, 아홉 명의 연기를 조율해야 하니까 제가 거기 들어가면 어렵겠더라고요. 이 인터뷰를 하면서 그 작품의 대본을 다시 보고 그때 촬영 때 일지들을 보면서 너무 배우들한테 감동했어요. 수많은 대사가 오버랩되고 막 여섯 명이 한꺼번에 말할 때도 있고 난리가 나는데 만약에 저보고 이런 대본으로 연기하라고 했으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또 45분짜리 영화를 3회차에 찍었거든요. 그래서 완벽히 배우들이 준비되어 있어야 했는데 촬영이 있기 전 일주일간 배우들과 연극처럼 연습했어요.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갈 수 있게."
연출에는 뜻이 없고 본업은 배우라고 선을 그었지만, 이러한 연출 작업은 배우로서도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래도 보다 포괄적인 관점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도움보다는 좀 이해되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감독님들이 왜 그렇게 오디오 겹치지 말라고 하시고, 왜 그렇게 화를 내나 그런걸요. 제일 큰 건 제 돈으로 찍다 보니까 배우 할 때랑은 다르더라고요. 촬영 날 새벽에 비가 오면 그렇게 신나거든요. 오늘 취소다, 놀자 그러는데, 제가 제작을 하니까 비가 오면 잠이 안 오는 거예요. 내일 크레인에 조명차 다 빌려놨는데 취소되면 일단 눈 뜨고 천만 원이 날아가는 거니까 이게 얼마나 가슴 아프겠어요."
그것이 바로 '직사각형 삼각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장이 달라지니 몰랐던 거를 알게 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이런 깨달음을 가질 수 있는 건 이희준이 연기에서의 다양한 역할은 물론이고, 배우와 감독을 넘나드는 것에 별 장벽이 없는 인물이어서일 것이다. 어떤 영역으로 규정되지 않는 '경계 없는' 배우랄까.
"제 성향이 좀 그런 것 같아요. 갑자기 그림을 그렸다가 막 복싱을 했다가 뭐 하나에 빠지면 막 갔다가 또 그렇게 길지 않게 돌아오는 식으로 여러 가지를 되게 많이 하거든요. 왜 그런가 보니 저는 재미있는 걸 따라가는 것 같아요. 살벌한 스릴러만 하다 보니 멜로가 하고 싶어서 고봉수 감독님 꼬셔서 '귤레귤레' 같은 작품을 하는 것도 그래서인 것 같고요."
그는 현장에서도 동료들이 너무나 즐겁게 빠져서 작품을 하는 배우로 정평이 나 있다. 그 이유는 바로 그가 연기하는 것 자체를 너무나 재밌게 여기고 있어서였다.
"맞아요. 제가 재미 중독인 것 같아요. 조금 더 재밌는 걸 찾아다니고, '살인자o난감'에서 송촌 같은 역할을 할 때도 리서치를 해서 배우들과 할 때 너무 재미가 있죠. 작품에 꼭 필요한 역할을 내가 해내고 있을 때, 상대배우한테도 적절한 자극을 주면서 잘 해내고 있을 때 그래서 뭔가 바퀴가 잘 굴러간다 싶을 때 정말 즐거운 것 같아요. 또 '악연'에서 누워서 담배 피우며 휴대전화 하는 장면에서 턱과 쇄골에 받쳐서 전자담배 피우면서 핸드폰 하는 뭐 그런 순간을 찾아냈을 때의 재미, 그런 것들이 있죠. 대본에 빠져 있는 디테일들을 채워갈 때의 희열이 있어요."
◇ 경계 없는 배우, 이희준
연기는 배우들만 하는 거라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그런 전문적인 영역이 아니라도 우리는 일상에서 살아가며 연기를 한다. 저마다의 역할이 있고, 어떤 순간에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는 사회생활에도 중요하다. 전문 연기자로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좀 더 잘 살 수 있는 연기의 비법 같은 게 있을까 궁금했다.
"맞습니다. 우리는 한순간도 연기하지 않은 순간이 없습니다. 누구나 어떤 상황에 어떤 이미지의 사람이 되고 싶다가 있잖아요. 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도 있죠. 아들일 때는 아들 역할 아빠일 때는 아빠 역할, 또 남편일 때는 남편 역할 그때그때 따라 해야죠. 남편 역할인데 애가 되면 안 되니까. 중요한 건 상황 파악인 것 같아요. 지금 내 역할이 뭔지를 잘 파악해야 하는 거죠."
상황 파악이라고 했지만, 그 말이 이희준이 연기에서 한다는 '관찰'과 '학습'이라는 말로 들렸다. 여담이지만 몇 년 전 법륜스님이 트렌드 강의를 요청하셔서 정토회 본당에서 몇 분 스님들을 모시고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요즘 드라마나 영화 같은 콘텐츠 트렌드 설명에 귀 기울이는 법륜스님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는데, 돌아오며 생각해 보니 그것은 지금의 대중들이 어떤 고민들을 하고 있고 어떤 관심을 갖고 있는가를 들여다보려고 노력하시는 거였다. 법륜스님 역시 자기 역할을 하기 위해서 관찰하고 리서치하신다는 거다. 세상은 실로 '직사각형 삼각형'의 다양한 시선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관점으로 들여다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건, 배우나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일찍이 배우라는 직업을 통해 '직사각형 삼각형'의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들여다본 이희준 배우가 어째서 '경계 없는' 배우로서의 아우라를 보여주고 있는가가 이해된다. 어쩌면 그런 영역의 구분은 어느 한 쪽의 관점으로만 봤을 때의 시각에서 나오는 것일 거다. 여러 관점으로 보다 보면 우리도 경계 없이 세상을 보고 보다 다양한 영역들에 재미있게 스며들 수 있지 않을까. 이희준 배우가 몸소 보여주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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