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무비, 그래도 1000만 영화 나왔다…비결은 '팬덤' [위기탈출 K무비]④
- 장아름 기자, 정유진 기자, 고승아 기자
(서울=뉴스1) 장아름 정유진 고승아 기자 = 한국 영화계는 팬데믹 기간인 2022년 및 엔데믹에 접어든 2003년과 2024년, 위기 속에서도 연속으로 1000만 관객 작품을 탄생시켰다. '범죄도시' 시리즈가 3년 연속 1000만 관객 돌파에 성공했고, '서울의 봄'과 '파묘'가 메가 히트를 달성했다. 반면 올해는 대형 히트작 부재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영화계 산업 전반의 침체가 더욱 무겁게 다가오고 있다. 그간 국내 영화 산업에서 1000만 영화는 단순 수치를 넘어선 문화 산업의 상징적 의미를 내포했던 기준이기도 했다. 메가 히트작의 부재는 산업의 위기를 인식할 수 있는 척도로, 시장 축소와 활력 저하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위기론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 극내 극장가, 팬데믹 이후 흥행은 프랜차이즈·애니메이션이 대세
22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의 연도별 박스오피스에 따르면 '범죄도시'는 2~4편 시리즈로 2022년부터 2024년까지 흥행을 주도했다. 팬데믹에서 벗어난 2023년 1위는 1185만 명을 동원한 '서울의 봄'이, 2024년 왕좌는 1191만 명이 본 '파묘'가 각각 차지했다.
특히 1000만 영화에 '서울의 봄'과 '파묘'를 제외하고, 성공한 프랜차이즈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 후속작들이 계속해서 명함을 내밀었기에 이목을 더욱 집중시키고 있다. 2022년 흥행 톱5에 오른 다른 작품들은 외화들인 '탑건: 매버릭'(817만 명), '아바타: 물의 길'(731만 명) 및 한국영화 '한산: 용의 출현'(726만 명), '공조2: 인터내셔날'(698만 명) 등으로 이 역시 프랜차이즈 후속작이다.
2023년에는 국내 극장가에선 외국 애니메이션이 강세였다. 흥행 5위를 기록한 한국영화 '밀수'(514만 명)를 제외하고 3위 '엘리멘탈'(723만 명), 4위 '스즈메의 문단속'(557만 명), 6위 '더 퍼스트 슬램덩크'(478만 명) 순이다. 2024년에는 '파묘'와 '범죄도시4'에 이어 '인사이드 아웃2'(879만 명), '베테랑2'(752만 명), '파일럿'(471만 명)이 뒤를 이었다. 3위가 외국 애니메이션, 4위가 프랜차이즈 후속작이라는 점도 특이점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범죄도시'는 이미 성공한 프랜차이즈로, 어느 정도 팬덤이 확보된 시리즈"라며 "'슬램덩크' 시리즈 등 애니메이션 또한 팬덤을 움직인 작품들"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는 팬데믹 이후 영화계 위기에서도 '팬덤 비즈니스'는 된다는 걸 보여준 사례"라며 "영화계가 점차 팬덤을 겨냥하는 흐름이 합리적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 2025년 상반기 최고 흥행작은 '야당'…'창고 영화' 흥행까지
2025년 들어 5월 21일 현재까지 톱5에는 '야당'(320만 명), '미키17'(301만 명), '히트맨2'(254만 명), '하얼빈'(215만 명), '승부'(214만 명)이 각각 이름을 올렸다. 4월 중순 개봉한 강하늘 유해진 박해준 주연의 '야당'은 5월 황금연휴를 앞두고 개봉한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썬더볼츠*' 등과의 경쟁에서까지 승리, 뜻밖의 장기 흥행을 이어오며 미국 영화인 봉준호 감독의 '미키17'을 제치고 상반기 1위를 차지했다.
'야당' 흥행과 관련해 관계자 A 씨는 "영화의 장르적 재미와 그 안에 담긴 현실감, 시의성이 함께 흥행에 작용했다"며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라 할 수 없는 국내 범죄 현실과 검경 수사권 대립, 정치 세력과의 유착, 대선 정국 등 2025년 대한민국을 떠올리게 하는 현실감과 시의성이 긍정적인 입소문으로 확산됐다"고 말했다.
배우 리스크로 개봉 시기를 잡지 못했던 '소방관'과 '승부'를 비롯해 2년 전 제작됐던 '히트맨2'도 뜻밖의 성과를 거뒀다. 바이럴 마케팅 회사로 잘 알려진 바이포엠스튜디오가 이 세 작품의 배급을 맡으면서 잇따른 깜짝 흥행에 성공, 업계에서 주목받는 신생사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업계는 영화 흥행 요인으로도 꼽히는 바이포엠스튜디오의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에도 주목했다.
'소방관' '승부' 홍보·마케팅을 진행한 호호호비치 이채현 대표는 "'소위 '창고영화'로 불리던 영화들이지만 묵은 영화의 느낌보다는 영화가 갖고 있는 상처를 관객들도 함께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만들어 나가는 감성 마케팅을 선보였다"라며 "'소방관'의 경우 소방관들의 처우 개선에 동참할 수 있는 캠페인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어 "배우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을 썼고 관객들이 쉽게 기억할 수 있을 만한 쉬운 키워드 마케팅으로 홍보 마케팅 전략을 세웠다"고 덧붙였다.
◇ 메가 히트 시대 계속될까…'팬덤'에 주목하는 영화계
올해 영화계는 예년과 다른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3년 연속 '범죄도시'가 흥행을 주도했던 5월 황금연휴에는 1000만 흥행작이 나오지 못했다. 이는 영화라는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 이슈메이킹이 되는 사회적 파급력이 약화됐음을 방증한다.
팬데믹 이후 콘텐츠 소비 행태는 빠르게 변화됐다. 관객들은 극장이 아닌 안방에서 능동적으로 콘텐츠를 선택할 수 있는 OTT를 우선 소비한다. 그럼에도 배급 시스템은 여전히 극장 중심의 관행적 시스템을 고수하며 변화된 생태계에 대응하지 못하는 흐름을 이어왔다. 그 결과 시장의 실질적 니즈에 부합하지 못하는 괴리된 공급과 유통은 관객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관객이 점차 이탈하면서 극장 관객층도 축소됐고, 영화는 마니아의 소비재가 됐다.
올해 자발적 입소문으로 화제성을 주도했던 애니메이션의 흥행도 고정 팬덤과 가족 단위 관객층에서 비롯됐다. 한국 토종 애니메이션 '퇴마록'은 50만 명, 메가박스 단독 상영작인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진격의 거인 완결편 더 라스트 어택'은 87만 명까지 동원했다.
쇼박스는 올해 개봉한 '퇴마록'을 비롯해 '스즈메의 문단속'(2023)과 '사랑의 하츄핑'(2024) 등 애니메이션으로 잇따른 흥행에 성공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배급사 관계자 B 씨는 애니메이션 흥행 현상에 대해 "극장 콘텐츠에 대한 수요의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고 짚었다. 이어 "과거엔 극장 콘텐츠 자체를 목적으로 여가를 즐기던 문화가 있던 반면, 이젠 OTT 등 콘텐츠의 공급이 다양해지면서 극장 콘텐츠도 더 명확한 관객층이 드러났다"며 "이로 인해 팬덤 관객층 중심으로 수요가 형성돼 있던 애니메이션의 약진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고 분석했다.
극장과 배급사는 한국영화도 팬덤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B 씨는 "IP의 기존 신뢰도가 높은 작품들이 대체로 잘되는 경향이 크다 보니 충성도가 높은 관객층에 만족감을 줄 수 있는 팬덤 마케팅을 고려한다"며 "이 관객들이 결국 입소문의 시작이 되고 또 N차 관람까지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국내외 유명 가수 콘서트 실황도 잇따라 개봉하는 이유도 팬덤이 타깃이기 때문이다. 지난 2022년 이후로 임영웅 아이유 방탄소년단의 콘서트 실황 영화가 인기를 끌었다. 특히 지난해 '임영웅│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은 스크린 수 224개에서 35만 명이 봤음에도 스크린과 음향 효과를 극대화한 특별관 관람으로 극장 매출액 101억원을 상회, 공연 실황 영화 최고 흥행작에 등극했다. 이는 그해 전체관람가 흥행 1위로 1159개 스크린에서 123만 명이 본 국내 애니메이션 '사랑의 하츄핑'이 기록한 111억 원과 비교해도 의미 있는 매출액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흥행 리스크가 커진 만큼 갈수록 메가 히트를 기대하는 작품을 기획하기 어려워졌다"며 "과감한 시도·투자를 하기보다 안정적으로 팬덤을 끌고 가는 콘텐츠를 기획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정 평론가는 "관객들이 일반적인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지 않는 만큼 볼만한 체험형 영화, 큰 규모의 영화를 기획해야 하지만 현재 시장은 투자 심리가 위축돼 있다"며 "과거엔 블록버스터 시즌이라고 하는 성수기가 있었는데 이에 맞는 규모의 작품이 꼭 흥행하는가 의문시되는 측면도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럼에도 블록버스터 규모의 제작이 더욱 축소된다면 영화 산업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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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때 찬란했던 한국 영화계가 양적, 질적 모두에서 큰 위기에 빠진 모습이다. 극장을 찾는 관객은 현저히 줄었고, 해외 영화제 수상 소식도 좀처럼 들려오지 않고 있다. 올 들어 5월 중순까지 300만 관객을 넘긴 한국영화는 단 1편뿐이다. K무비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탔던 칸 국제영화제에서 올해까지 최근 3년 연속, 경쟁 부문에 단 한 편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절망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뉴스1은 총 5편의 기획 시리즈 [위기탈출 K무비]를 통해 한국 영화계의 현실을 심도 있게 들여다보고, 해결 방안도 모색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