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조근식 원장 "칸 영화제 2편 초청, KAFA는 영화 농사 짓는 중" [칸 인터뷰]
- 이준성 기자, 정유진 기자

(칸, 서울=뉴스1) 이준성 정유진 기자 = 제78회 칸 영화제도 어느덧 대미에 다다랐다. 올해 우리나라는 단 한 편의 장편 영화도 공식 섹션에서 초청받지 못했기에 여기저기서 아쉬움의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칸 영화제에 초청된 한국 작품이 0편인 것은 아니다. 공식 섹션인 라 시네프에 허가영 감독의 단편 영화 '첫여름'이, 병행 섹션인 비평가 주간에 정유미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안경'이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첫여름'은 경쟁 부문인 라 시네프에서 한국 최초로 1등 상을 받으며 위기감에 젖어있는 영화계에 희망을 안겼다.
허가영, 정유미 감독은 모두 한국영화아카데미(Korean Academy of Film Arts, 이하 KAFA)출신이다. KAFA는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국내 영화산업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해 1984년 설립한 영화 전문 교육기관으로 지난 40여년간 봉준호 감독(11기), 허진호 감독(9기), 장준환 감독(11기), 최동훈 감독(15기), 윤성현 감독(25기), 조성희 감독(25기) 등 실력파 감독들을 다수 배출했다.
22일(현지시각) 프랑스 칸에서 뉴스1과 만난 조근식 KAFA 원장은 올해 두 명의 KAFA 출신 감독이 이룬 성과에 대해 "나의 보람이자 책임"이라고 표현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또한 "한류 붐을 이끌어갈 새로운 세대 젊은 창작자들이 세계를 향해서 갈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영화 아카데미가 해야 할 일"이라면서 두 감독의 성취로 느끼는 뿌듯함을 드러냈다. 조 원장은 '품행 제로'(2002) '그해 여름'(2006)의 작품을 연출한 영화 감독 출신이다.
칸 영화제에서의 성과에 의미가 있지만, 학생들에게 영화제에서 수상할 만한 작품을 만들라고 교육하는 것은 아니다. 조근식 원장은 "학생들이 영화제를 목표로 작품을 만드는 건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영화라는 것은 '내 이야기'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관객과 만나서 위로와 재미, 감동을 주면서 소통하는 것이 살아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제 출품을 목표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권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약 우리 학생이 그런 태도를 가진다면 굉장히 혼낼 거예요."
국내 영화 산업은 우울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관객수가 급격히 떨어지고, 극장의 수익률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경쟁 플랫폼인 OTT에 관객도 인재도 몰려가면서 투자 유치는 더욱 어려워졌고, 이제는 '극장에서 볼 영화가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조근식 원장은 "한국 영화는 늘 위기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새롭게 도약해 왔다"며 이 같은 시기가 오히려 창작자들에게는 자극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저는 오히려 기존의 방식으로 만든 영화들이 더 이상 동력을 잃은 지금의 상황이, 이제는 다른 동력과 에너지를 찾아야 할 시점이라는 신호를 주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이야말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예요. 영화 산업 제작자분들은 어렵고 힘든 전망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창작자들에게는 오히려 더 다양한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에요."
국내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포스트 봉준호·박찬욱이 없다'는 이야기는 산업적인 위기와 더불어 한국 영화의 미래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주제다. 조근식 원장은 "우리나라에 인재가 없거나 재능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다, 그 시절 봉준호, 박찬욱 같은 감독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실험과 실패를 허용할 수 있는 환경 덕분이었다"며 "지금은 영화가 산업 중심 그리고 자본 중심으로 재편됐다, 흥행이 중요한 지표가 되면서 실험과 도전,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시스템이 됐다"고 밝혔다.
"일본이나 유럽은, 작가들이 자기 세계를 만들고 관객들과 만나고, 피드백을 받고, 다시 고치고, 또 만들고 하면서 성장해요. 하지만 한국은 영화를 시작할 때부터 말하자면, '봉준호가 되려면 상업영화에서 먼저 성공을 거둬야만 하는' 구조입니다. 즉, '일단 돈이 되는 영화를 만들어라. 네 생각을 넣고 말고는 그다음에 해라'는 식이에요. 그 결과, 학생들이나 젊은 창작자들의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것이죠."
불안한 시기를 지나고 있지만, KAFA는 학생들 안에 있는 재능의 씨앗을 싹 틔워 세상으로 내보내기 위해 애쓴다. '내일이 있는 한국 영화'(올해 영화진흥위원회 부스의 슬로건)를 만들기 위해 분주한 오늘을 보내는 것이다. 예컨대 이번 영화제에서도 한국 학생과 프랑스 학생들이 영화제 현장을 돌아다니며 전문가들의 멘토링을 받는 '한-프랑스 영화 아카데미가 열리고 있다.
"지금 한국 영화가 다 잘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여전히 열심히 움직이고 있고, 미래를 위한 '영화의 농사'를 꾸준히 짓고 있어요. 비관할 틈이 없어요. 항상 '내일'을 준비해야 하니까요. 그동안 영화를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로만 구분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학생들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죠. 사회가 다양한 이야기와 다양한 인재들을 포용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기 위해 어른들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애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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