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가상자산 사업' 안하면 뒤처지는 것"[법인 코인 투자 시대]⑩
'홍콩 가상자산 규제 전문가' 이재호 변호사 인터뷰
"홍콩, 매달 새로운 가상자산 정책 나와…은행이 스테이블코인 발행"
- 박현영 블록체인전문기자
(홍콩=뉴스1) 박현영 블록체인전문기자 = "홍콩은 단순히 기관 투자만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앙은행과 시중은행을 연결하는 데에 CBDC(중앙은행디지털화폐)를 쓰려고 하고, 은행은 물론 비은행 기업들도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기관 투자를 넘어 '웹3 경제' 자체를 장려하려는 게 홍콩 당국의 기조입니다."
이재호 법무법인 케이앤엘게이츠(K&L gates) 변호사는 세계적 블록체인 행사인 컨센서스가 열린 홍콩에서 지난 20일 <뉴스1>과 만나 가상자산에 대한 홍콩 당국의 입장을 설명하며 이 같이 말했다.
홍콩에서 20여년 거주한 이재호 변호사는 미국 대형 로펌 중 하나인 케이앤엘게이츠의 홍콩 지사에서 가상자산 산업 전반에 대한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홍콩 정부로부터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Virtual Asset Trading Platform, VATP)' 라이선스를 처음으로 획득한 해시키, OSL 등도 이 변호사의 자문을 거쳤다. 홍콩 가상자산 기업들이 모인 홍콩웹3하버산업협회의 자문을 맡고 있기도 하다.
이 변호사는 홍콩 가상자산 규제에서 국내 당국이 참고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밝혔다. 특히 기관의 투자를 장려하는 것을 넘어, 웹3 산업 전반의 성장을 유도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홍콩에서는 세계 최대 블록체인 콘퍼런스인 '컨센서스'가 열렸다. 컨센서스에 자리한 폴 찬 홍콩 재무장관은 홍콩이 '예측가능한 규제'를 마련해뒀음을 강조하며 홍콩에서 가상자산 사업을 할 것을 적극 장려했다.
이 변호사는 이 같은 홍콩 정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이 단순 '립 서비스'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홍콩 정부는 2022년 10월 처음으로 가상자산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힌 뒤 거의 매달 새로운 정책을 내놓으며 계획을 실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홍콩 정부는 가상자산 육성 계획을 밝힌 지 4개월이 흐른 2023년 2월 정부 차원에서 그린본드(녹색채권)를 토큰화했다. 이 변호사는 이를 두고 "세계적으로 정부가 발행한 첫 번째 토큰증권"이라고 강조했다.
또 2023년 6월에는 VATP 라이선스 제도를 도입했다. 이 변호사는 "홍콩 정부는 일관된 기조를 가지고 필요한 규제를 만들어가고 있다"며 "VATP 라이선스 제도를 도입해 9개 거래소에 발급한 것도 가상자산 생태계에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은행에 대한 규제다. 홍콩 중앙은행인 HKMA(홍콩 금융관리국)는 2024년 2월 은행의 가상자산 커스터디 서비스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에 은행, 증권사 등 금융기관들은 기준을 충족하면 가상자산 커스터디 서비스를 직접 제공할 수 있게 됐다.
향후에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은행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스테이블코인 라이선스 발급에 대한 법안이 홍콩입법회에 회부된 상태다. 이에 대비해 스탠다드차타드(SC) 홍콩은 최근 홍콩 최대 통신사인 홍콩텔레콤(HKT), 블록체인 기업 애니모카브랜즈와 함께 홍콩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 변호사는 스테이블코인 법안이 올해 중반쯤 법제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국내와 가장 차별화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국내 시장의 경우, 은행은 가상자산 커스터디 기업에 대한 지분 투자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시장에 진입한 상태다. 또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 자체가 없기 때문에 은행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것은 논의조차 된 적 없다.
이 변호사는 홍콩에선 전통 금융기관이 가상자산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봤다. 그는 "은행들은 디지털자산 사업을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SC 홍콩은 스테이블코인 발행까지 추진하며 공격적으로 사업을 시도 중이고, HSBC는 다소 보수적임에도 골드(금) 토큰을 발행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또 "가상자산 커스터디는 은행들이 기본적으로 하고 있고, 나아가 국채나 안전한 금융상품을 토큰화하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홍콩은 지난해 4월 비트코인 및 이더리움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을 기점으로 기관의 시장 참여를 더욱 늘리고 있다. 이 점 역시 하반기에나 법인 투자가 제한적으로 가능해지는 우리나라와 대조된다.
이 변호사는 "홍콩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된 이후부터는 홍콩 밖에 있는 기관들도 홍콩 시장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홍콩 당국이 장외거래(OTC) 사업자에 대한 라이선스를 발급할 예정인데다, 유동성공급자(마켓메이커)를 육성하겠다는 기조도 가지고 있어 홍콩에서 가상자산 시장에 뛰어드는 기관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홍콩 당국은 가상자산 OTC 라이선스 발급제에 대한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홍콩 당국은 OTC 라이선스를 발급함으로써 글로벌 가상자산 기업들을 끌어들이겠다는 기조를 재확인했다"며 "마켓메이커도 육성한다는 입장이고, 가상자산 파생상품과 마진트레이딩도 허용한다"고 강조했다. 홍콩 증권선물위원회(SFC)는 지난 19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가상자산 산업 육성 로드맵 'ASPIRe'을 발표했다. 가상자산 시장 내 마켓메이커를 전면 금지한 우리나라와의 차이점이다.
가상자산에 대한 홍콩 규제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산업 섹터별로 정교하게 만든 규제'라고 이 변호사는 설명했다. 그는 "홍콩은 커스터디, OTC, 스테이블코인, 파생상품 등 가상자산 산업 섹터별로 정교하게 규제를 마련해놨다. 또 플레이어별로도 규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증권사가 가상자산 사업을 하고 싶으면 어떤 요건을 더 충족하면 되는지 알려주는 식이다. 기업 입장에선 필요한 요건만 좀 더 준비해 라이선스를 신청하면 되므로 산업 진입이 상대적으로 쉽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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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제 '대한민국 법인'도 비트코인을 산다. 해외서는 이미 일상이지만 뒤늦게 한국도 법인투자가 허용됐다. '개인' 투자자 일색인 한국 가상자산 투자 지형도에 일대 지각변동이다. 검찰은 범죄수익으로 몰수한 가상자산을, 대학은 기부받은 가상자산을 팔 수 있게 됐다. 가상자산 거래소도 그간 당국 눈치를 보느라 손대지 못한 보유 가상자산 현금화가 가능해졌다. 상장사 등 3500개 법인에 가상자산 투자 기회가 생겼다. '가보지 않은 길'이 열린 셈이다. '큰손' 법인의 등장은 어떤 지형 변화를 몰고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