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파이 담은 '미카 2.0'…'진흥책' 기대하는 업계[MICA 시행 후 유럽]③
암호자산서비스제공자에 디파이·DAO 등 빠져…EU, 보완 예고
'친가상자산' 트럼프 정부 출범으로 미국서도 사업 도전 가능…낮아진 유럽 경쟁력도 문제
- 박현영 블록체인전문기자
(파리=뉴스1) 박현영 블록체인전문기자 = "미카에서 분류한 암호자산서비스제공자(CASP)에 디파이(탈중앙화금융) 업자들은 제외돼 있어서 '미카 2.0'을 기다리고 있어요. 현재로서는 규제 면에서나 시장 사이즈 면에서나 아부다비, 두바이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이 듭니다."
세르게이 쿤즈(Sergej Kunz) 1인치네트워크 최고경영자(CEO)는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미카(MICA)'도 두 번째 버전이 필요하다며 이 같이 밝혔다.
유럽연합(EU)의 가상자산 단독 법안 '미카(MICA)'가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시행됐다. 국내 규제당국은 미카 사례를 참고해 가상자산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미카 역시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게 유럽 내 사업자들의 주장이다. 국내 가상자산 업계가 가상자산 '2단계 법안'을 기다리고 있듯, 유럽 가상자산 업계는 '미카 2.0'을 기대하고 있다.
이에 더해 유럽에서 규제에 맞춰 CASP 라이선스를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진단도 나온다. 유럽보다 규제 허들이 낮은 국가들이 있는데다, 규제 준수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할 정도로 유럽 시장이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미카 2.0에는 이런 현실도 반영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미카는 가상자산 관련 사업자들을 '암호자산서비스제공자(CASP)'로 정의하고, 10가지의 유형으로 분류했다. 10가지 유형에는 거래업자나 보관업자는 물론 컨설팅, 포트폴리오 운용 등 세분화된 사업 유형도 포함돼 있다. 가상자산 거래업자, 보관·관리업자, 지갑사업자 등 3가지로만 분류한 국내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보다는 훨씬 자세한 편이다.
그럼에도 미카가 담지 못한 사업자들이 있다. 대표적인 게 '디파이' 사업자들이다.
디파이는 블록체인상 스마트콘트랙트로 구동되는 탈중앙화 금융 서비스를 말한다. 사람이 개입하지 않은 채, 스마트콘트랙트로 구동되는 게 원칙이기에 이전에는 규제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디파이 서비스들도 일반 가상자산 업체처럼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제도권 안에 편입돼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디파이 크로스체인 프로토콜 '옐로 네트워크'의 알렉시스 시르키아(Alexis Sirkia) 창업자는 "'유니스와프' 같은 덱스(DEX, 탈중앙화거래소)도 중앙화된 요소가 있다"며 "디파이의 목표는 탈중앙화 자체가 아니고, '신뢰가 필요없는(Trustless)'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탈중앙화는 그 수단 중 하나이고, 신뢰가 필요없는 시스템을 만들려면 자금세탁 같은 건 방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탈중앙화된 서비스도 어느 정도의 규제는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EU도 이를 인지하고 디파이와 탈중앙화자율조직(DAO, 다오)을 위한 추가 입법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EU 입법위원회는 미카가 공식 제정된 지난 2023년 5월 '미카 이후 디지털 금융과 가상자산을 위한 제도적 과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펴내고 이 같은 계획을 밝혔다.
이에 디파이 사업자들도 안전한 사업을 위해 '미카 2.0'을 기다리고 있다. 알리레자 시아닷(Alireza Siadat) 1인치네트워크 유럽 규제 총괄은 "EU는 디파이와 다오도 제도권 안에 들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디파이 사업자로서 이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규제 명확성도 중요하지만, 가상자산 시장 진흥을 위한 법안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유럽보다 시장 규모가 더 큰 미국에서 사업 기회가 열리는 추세다. 호라이즌 그랜드뷰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가상자산 시장 규모는 13억5000만달 러(약 1조 9255억원)로 추산됐다. EU 전 국가의 시장 규모인 13억 3100만 달러(약 1조 1조 8984억원)보다 많다.
시아닷 총괄은 "이전 바이든 정부 때는 미국에서 가상자산 사업을 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바이든 정부 당시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코인베이스, 크라켄, 유니스와프 등 중앙화, 탈중앙화 거래소를 가리지 않고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소송 리스크가 늘 존재했기 때문에 미국 사업이 불가능에 가까웠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시아닷 총괄은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고 업체들이 미국 시장에 '오픈 마인드'가 됐다. 가상자산뿐 아니라 모든 자산이 미국 시장에 따라 좌우되는 세상인데, 마침 미국에서 가상자산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셈이다"라고 강조했다. 미국 시장이 열렸으니 많은 비용을 들여 유럽에서 사업을 해야만 하는 필요성이 줄었다는 것이다.
아랍에미리트(UAE) 등 가상자산 기업에 보다 친화적인 국가들이 있다는 점도 유럽 시장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아부다비는 가상자산 기업들에 파격적인 세금 혜택을 제공하며 이들 기업의 진출을 권장하고 있다. 유럽에서 라이선스를 발급받지 못한 스테이블코인 테더(USDT)도 아부다비에서는 공인 가상자산으로 인정됐다.
세르게이 쿤즈 CEO는 "리테일(소비자) 대상 사업이 중심이라면 유럽 소비자들도 끌어들여야겠지만, B2B(기업 대 기업) 사업이 중심이라면 굳이 유럽에서 라이선스를 딸 필요가 없다. 아부다비나 두바이에 가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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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유럽연합(EU)의 가상자산(암호화폐) 단독 법안 '미카(MICA)'가 지난해 12월 30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스테이블코인 관련 규정만 지난해 6월 30일부터 시행됐으며, 나머지 조항들은 12월 30일부터 시행된 만큼 사실상 올해가 미카 시행의 원년이다. 이에 따라 유럽 가상자산 시장에선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규제 명확성이 확보돼 유럽 시장으로 진출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미카 준수가 어려워 사업을 포기하는 스타트업들도 속출하고 있다. '뉴스1'은 유럽 최대 블록체인 콘퍼런스 '파리블록체인위크(PBW)'에 참가해 미카 시행 이후 유럽 가상자산 시장의 변화를 점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