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 상자' 열린 우리금융…2300억 부당대출, 보험사 인수절차도 문제
금감원, 검사결과 발표…임종룡 회장 임기 중에도 대규모 부정
인수합병 과정서 이사회 '패싱'…리스크관리·소비자보호도 '뒷전'
- 박동해 기자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의 친인척과 관련된 부당대출 문제로 시작된 우리은행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검사결과가 공개됐다. 앞서 한차례 지적 받았던 부당대출의 규모는 더 커졌고 현 경영진들이 이를 방치했음이 확인됐다.
특히 우리금융이 보험사 인수 과정에서 제대로 된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이 확인됐으며 리스크 관리나 소비자 보호에도 소홀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금감원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에서 '2024년 지주·은행 등 주요 검사결과 브리핑'을 개최했다. 이날 검사결과 발표 대상은 '주요 금융지주 및 은행권'이었지만 발표 내용의 상당 부분이 우리금융에 집중됐다.
우선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과 관련된 부당대출 금액이 최초 금감원이 수시검사를 통해 지난 8월 발표했던 350억 원에서 730억 원으로 늘어났다. 금감원은 수시검사에 이어 정기검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부정 대출 건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금감원은 현재 대출액 중 46.3%인 338억 원이 부실화된 상태이며 나머지 328억 원도 향후 부실화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특히 부당대출액 중 451억 원(61.8%)은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의 취임 이후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영진이 바뀌고 조직 쇄신을 표명했음에도 불건전한 문화가 반복됐다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은행은 이번 부당대출 사건과 관련해 손 전 회장의 친인척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5개월간 금감원에 이를 보고하지 않았다.
검사를 통해 밝혀진 우리은행의 부당대출 총액은 2334억 원(101건)이다. 이중에는 고위직 임직원 27명이 단기 성과 등을 위해 대출 심사 및 사후 관리를 소홀히 해 1604억 원의 부당대출을 취급한 건도 있었다. 이중 987억 원(61.5%)은 임 회장 취임 이후 취급됐으며 1229억 원(76.6%)은 부실화돼 상환이 되지 않고 있다.
금감원은 우리은행에서 금융사고가 만연한 배경에는 대폭 완화된 여신 관련 징계 기준이 방치된 현실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우리은행은 금융사고 발생 시 직원의 귀책 금액이 10억~20억 원(비외감 5억~10억 원)인 경우 사고자에게 '견책' 수준의 가벼운 징계만 내리고 있었다. 타 은행에서 2억 원 이상의 사고에 대해 감봉 이상의 징계를 내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부당대출에 더해 홍콩 H지수 ELS 사태 당시 우리은행 파생상품 딜러가 H지수 급락으로 장부상 손실이 확대되자 내부 손실한도를 초과하지 않도록 평가데이터 입력값을 고의로 왜곡해 손실 누적액(약 1000억 원)을 2년 넘게 숨긴 혐의가 드러나기도 했다. 은행의 리스크부서에서는 딜러가 왜곡한 평가데이터를 검증 절차 없이 방치했으며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했다.
다만, 금감원은 이번 정기 검사 과정에서 임종룡 회장을 비롯한 현 경영진이 부정 대출에 연루됐거나 가담한 정황은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금감원은 우리금융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사회에 대한 보고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우리금융은 지난해 보험사(동양생명·ABL생명) 인수 결정 과정에서 인수·합병 안건을 논의하기 위한 리스크관리위원회를 개최하지도 않고 해당 안건을 이사회에 부의했다. 금감원은 의사진행 과정이 지주 회장인 임종룡 회장의 결정 사항이라고 짚었다.
금감원에 따르면 우리금융은 보험사 인수를 위한 주식매매계약 당시 리스크 관리위원회와 이사회를 20분 간격으로 개최했으며 이에 리스크관리위원회의 심의 내용이 이사회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특히 이번 보험사 인수 계약안에는 금융당국이 인허가를 승인하지 않을 경우 계약금(약 1500억 원)을 몰취하는 다소 특이한 조항이 포함됐는데도 공식 이사회에서 관련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금감원은 인허가권이 제3자에게 있어 본인의 과실이 없음에도 계약금을 몰취하는 조항은 이례적인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또 우리은행은 지난해 3분기 가계대출이 급증하자 자본 비율 하락을 막기 위해 이사회에 보고나 논의 없이 기업 대출 감축을 KPI(핵심성과지표)로 수정했다. 이처럼 주요 자회사인 은행의 경영진이 영업 목표를 임의로 변경했음에도 지주사인 우리금융은 이를 통제하지 못했다.
금감원은 우리금융과 자회사들이 외형 확대에만 집중해 과도한 경영 목표를 제시하고, 임직원들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 건전성·리스크 관리 및 이사회 절차 등을 경시했다고 지적했다.
먼저 금감원은 우리금융지주가 타 금융지주보다 자본 비율이 낮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고위험 자산 위주의 투자 성향을 지속하며 그룹 차원의 리스크를 인식·측정·관리하는 업무가 미흡했다고 판단했다.
우리금융은 자본으로 보기 어려운 항목을 보통주 자본에 포함시키거나, 위험 가중 자산에 반영해야 할 자산을 미반영하는 등의 방식으로 주요 건전성 지표인 '보통주 자본 비율(CET1)'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
또 주요 자회사인 우리은행에서 파생상품 관련 대규모 금융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이런 내용이 위험 가중 자산 계산에 반영되지 않았으며 은행 외 자회사들의 경우 운영 리스크 손실 사건 데이터를 자동으로 입수하는 시스템조차 구축되지 않은 상태였다.
금감원은 이러한 내용을 반영할 경우 우리금융지주의 CET1 비율이 0.1~0.2%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우리금융의 CET1 비율은 11.96%로 타 주요 금융지주보다 낮은 수준이다.
우리은행은 차주가 빚을 갚지 못한다는 이유로 민법상 압류가 금지된 최저생계비까지 가져가는 행태를 보였다.
특히 우리은행은 차주의 타행 대출에서 연체가 발생해 타행으로부터 예금 상계를 요청받는 경우에는 최저생계비를 제외하고 지급했지만, 정작 자행에서 대출 연체가 발생하면 제한 없이 예금을 가져갔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은행이 부당하게 압류 금지 채권을 상계한 건만 10년간 250억 원 규모로, 대상자는 4만 6000여 명에 이른다.
또한 지난 홍콩 H지수 ELS 사태 당시 우리은행은 증권신고서가 제출·수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당한 투자설명서를 사용하지 않고 투자자 약 1000명에게 2200억 원 상당의 청약을 권유하는 등 자본시장법을 위반하기도 했다.
아울러 우리은행은 대출성 상품 철회신청 만료일(14일)에 비대면 철회 신청이 불가능하도록 전산시스템을 운영해 소비자 권리 행사를 부당하게 제한하기도 했다.
이번 검사결과와 관련해 우리금융 측은 "금감원 발표 내용을 겸허하게 수용한다"라며 "지적사항을 빠른 시일 내에 개선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 구축을 완료하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금감원의 검사결과 발표에서는 우리금융의 경영실태평가 등급에 대한 발표는 나오지 않았다.
금감원은 통상 정기검사 과정에서 경영실태평가를 실시한다. 최근 내부통제 미흡과 대규모 금융사고 발생, 자본 비율 하락 등의 이유로 현재 2등급인 우리금융의 경영실태평가 등급이 3등급으로 내려갈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최종적으로는 금융위원회의 결정 사항이지만, 경영실태평가에서 3등급 이하를 받을 경우 건전성이 미흡하다고 판단돼 보험사 인수 승인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에 대해 박충현 금감원 은행 담당 부원장보는 현재 경영실태평가 등급을 산출하기 위한 자료 취합을 진행 중이라며 "가능하면 관련 제재, 검사와 분리해서 빨리, 최대한 빨리 경영실태평가를 마무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은 현재 우리금융이 지난달 15일 인수 대상인 보험사의 자회사 편입 승인을 신청한 만큼 법정 기한인 60일 이내에 최대한 빠르게 경영실태평가 등급을 산출한다는 계획이다.
potgus@dqdt.shop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