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은퇴 시즌2] 인생 후반 PAR3 공략법
(서울=뉴스1)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 차를 타고 가다 ‘파쓰리’라고 적혀 있어 뭔가 보았더니 대파, 쪽파, 실파라고 씌어 있는 게 식당이었다. 골프에서 파쓰리(par3)는 그 홀에서 기준 타수가 3번이며 그것보다 더 적게 치면 언더(under) 파라 하고 그것보다 더 많이 치면 오버(over) 파라고 한다. 홀인원 해서 한 번 만에 넣으면 그 홀은 언더2(-2)가 되는 셈이다.
골프는 전반 9홀과 후반 9홀로 모두 18홀로 구성되어 있다. 파3 홀은 전반에 2개 후반에 2개 해서 모두 4개 있는 게 일반적이다. 사람들의 삶도 인생 전반과 후반이 있으니 비슷한 셈이다. 그래서 인생 후반의 파3(par3)를 말해보고자 한다.
인생 오전과 오후의 삶은 디지털적으로 변한다. 인생 오전에는 없다가 있어지고 인생 오후에는 있다가 없어진다. 젊을 때는 배우자가 생기고, 가족이 생기고, 직장이 생기고, 새로운 사회적 동료들이 마구 생겨난다. 하지만 인생의 오후에는 자녀가 같이 있다가 출가하고, 부모님이 있다가 안 계시고, 직장이 있다가 없어지고,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오다가 뚝 끊기고, 배우자가 곁에 있다가 없게 된다. 전자는 0에서 1로 후자는 1에서 0으로 변화한다. 그뿐만 아니라 인생 오후에는 사회가 보는 나의 가치가 갑자기 없어지고,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사라지고, 설상가상으로, 나를 보호해주고 위로해주던 관계망이 사라진다.
이처럼 인생 오후에는 디지털에 가까울 정도로 변화가 급속하게 일어난다. 변화가 큰 만큼 받는 스트레스도 크다. 있다가 없어질 때 사람들은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변화에 대해 페르소나(persona)를 바꾸고, 나의 가치를 부단히 지키기 위해 아레테(arête)를 실현하고, 관계망(relationship)을 확충하는 것이다. 영어의 앞 글자를 따면 PAR이고 3가지이니 PAR3인 셈이다.
페르소나는 그리스 시대 연극을 할 때 쓰는 가면을 말한다. 당시에는 웃을 때는 웃는 가면을 슬플 때는 우는 가면을 쓰면서 연극을 했다. 우리는 인생 오전에 쓰고 있던 부장과 상무 직함의 페르소나를 오후까지 쓰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생 오전에 가장 잘 나가던 때의 페르소나를 쓰고 다닌다. 이러니 인생 오후의 큰 낙차(落差)에 적응하지 못하고 현기증을 느낀다.
직장 상사로서의 페르소나와 가정에서 아빠로의 페르소나가 다르 듯, 인생 오전과 오후에 쓰는 페르소나도 다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생 오전에 쓰고 있던 페르소나를 벗지 못한다. 사회에서 최전성기에 갖고 있던 직함이 평생 이어진다. 국장의 일을 맡고 있지 않은 데도 국장이라 불리길 원한다. 퇴직 후 물 빼는 데 3년 걸린다는 말을 한다. 퇴직 전의 페르소나를 벗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그나마 이를 벗는 사람은 다행이지만 이를 벗지 못하고 과거의 영예에 머무르는 사람도 있다.
정신 건강이 좋은 사람은 페르소나 하나를 평생 고집하는 게 아니라 때에 맞게 잘 바꾸는 사람이라고 한다. 인생 오후는 연극 무대가 바뀌고 새로운 배역을 맡았다고 생각하자.
그러면서 나의 아레테를 깊게 해야 한다. 아레테는 자신만이 가진 힘, 강점을 말한다. 탤런트(talent)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인생 오후에는 이것 저것 다양하게 할 게 아니라 자신 있는 하나를 계속 깊게 파야 한다. 고령의 피아니스트는 많은 곡을 연주하지 않고, 연주 곡의 수를 줄이고 각 곡에 대한 연습량을 늘린다. 인생 오후에 나의 가치를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 나의 전문성을 깊게 해서 독보적이 되어야 한다. 인생 오후는 넓어지기보다는 하나를 선택해서 깊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괴테는 거작 '파우스트'를 23세에 시작해서 죽기 1년 전인 82세에 완성했다. 괴테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내 안의 힘, 내 안에 끈질기게 있는 힘을 가장 좋은 방향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내 안에 있는 그 힘이 아레테다. 자기를 발견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인생 오전에 생업에 쫓겨 찾지 못했던 나의 아레테를 인생 오후에 발견할 수도 있다. 퇴직 후 30여년 동안 소금을 연구하고 만든 사람, 소설가로 등단한 사람, 수필집을 낸 사람들이 모두 그 아레테를 발현한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관계망을 확충해야 한다. 인생 오전에는 관계망이 너무 확장되어서 귀찮을 지경이다. 카톡에 있는 사람들이 천명이 넘는다. 하지만 인생 오후에는 관계망이 하나씩 축소된다. 관계망은 정서적이다. 그 정서가 인생 오후에는 중요하다. 열심히 운동을 한 사람보다 관계망이 넓은 사람이 더 건강하다고 한다. 실제로 우울하고 고독한 노년은 하루 15개피 담배를 피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해롭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영국은 고독부를 신설했겠는가?
관계망은 아름드리 참나무와 같다. 20년 이상 오래 유지된 관계망이 사라지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부부, 자녀, 친구, 사회 관계망이 잘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이들 관계망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해도 부부의 관계이다. 이는 인생 오후라는 삶을 등반할 때 베이스캠프 역할을 해준다. 괴테는 ‘친구가 없는 천국보다 가혹한 형벌은 없다’고 했다. 관계망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관절의 연골과 같은 것이다.
연말과 연초가 되면서 ‘있다가 없어지는’ 일들을 많이 겪는다. 정년 퇴직을 맞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삶은 디지털적이다. 인생 오후는 더욱 그러하다. 페르소나를 잘 바꾸고 나의 아레테를 발현하는 것, 그리고 관계망을 유지하는 것. 이 셋이 인생 오후라는 골프를 칠 때 par3 홀을 공략할 수 있는 비법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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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유비무환! 준비된 은퇴, 행복한 노후를 꾸리기 위한 실전 솔루션을 욜로은퇴 시즌2로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