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또 은행 발목 잡나…'LTV 담합' 재조사에 은행권 "무리수" 비판
LTV 낮춰 은행 배불리기?…"LTV 낮추면 손해, 건전성 관리 필수"
13년 전 금리 담합 조사도 '빈손'…"꼬리물기식 조사, 또 시작되나"
- 김근욱 기자
(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가 4대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담합 의혹 재조사에 착수하면서 은행권은 허탈감을 금치 못하는 분위기다. '은행이 LTV를 낮추기로 담합했다'는 주장은 앞뒤가 안맞다는 적극적인 소명에도, 꼬리물기식 현장조사를 2년 넘게 이어가며 경영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 관계자들은 "LTV를 낮춘다고 아무런 이득을 보는 게 없다"고 강조한다. 소비자들은 대출금을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LTV가 높은 은행으로 쏠리기 마련인데, LTV를 낮춰서 이익을 부풀렸다는 공정위의 지적에 논리적인 허점이 많다는 입장이다.
은행 관리·감독 주체인 금융당국은 "타 정부기관의 조사"라며 말을 아끼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다툴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일각에서는 "금융권 독과점을 막으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된 공정위의 조사가 '빈손' 비판을 피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4대 은행의 LTV 담합 의혹과 관련해 재조사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재심사' 명령이 내려진 지 약 3개월 만이다. 공정위는 지난 10일 우리은행을 시작으로, 전날 신한은행 본점을 현장 조사하고 있으며 향후 KB국민은행, 하나은행에 대한 조사까지 진행할 것으로 파악됐다.
대출 규제 중 하나인 LTV는 '집값 대비 얼마까지 빌릴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LTV가 70%라면, 5억원짜리 아파트를 살 때 3억5000만원까지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수도권 아파트는 LTV 40%, 비수도권 아파트는 LTV 70%처럼 법적인 상한선이 정해져 있는데, 은행은 이 범위 내에서 자체적인 LTV를 설정하게 된다.
공정위는 4대 은행이 LTV 관련 정보를 교환해 의도적으로 LTV를 낮춘 것을 '담합'으로 지적한다. 은행이 더 많은 대출을 내어줄 수 있었음에도 LTV를 낮추면서 소비자 불이익이 발생했다는 논리다. 결국 대출금이 부족한 소비자들이 추가 신용대출을 이용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은행이 이익을 부풀렸다는 주장도 있다.
은행권은 "LTV를 낮추면 오히려 손해"라며 담합이라는 공정위의 지적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통상 소비자들은 더 많은 돈을 빌리기 위해 LTV가 높은 은행을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담합으로 인정되려면 다른 사업자의 경쟁을 제한하거나, 은행이 이익을 본 것이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은행 입장에선 "대출을 더 많이 못 한 만큼 손실을 본다"고 반박한다.
그럼에도 법이 정한 기준보다 LTV를 낮게 설정한 이유는 '건전성' 때문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모든 사람에게 법이 정한 LTV 최대치로 대출을 내어줄 수 없다"면서 "은행은 건전성, 연체율 관리가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해 LTV를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및 건전성 관리를 이유로 각 은행에 대출량 조절을 주문하고 있는 상태다.
'LTV를 낮춰 소비자가 받을 수 있는 대출금이 줄었다'는 주장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대출금 산정에는 LTV뿐만 아니라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 등 여러 규제가 함께 적용된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LTV가 70%까지 설정되어도, DSR 규제에 걸리면 LTV 70%를 다 인정할 수 없는 것"이라며 "LTV 조절이 실제로 대출 한도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따져봐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소비자 대출금을 낮춰, 고금리 신용대출을 이용하게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 은행권 관계자는 "너무 가정적인 주장"이라며 "논리적 비약이 심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은행권은 '정보 교환' 자체를 부정하진 않았다. 공정위는 4대 은행은 7500개에 달하는 LTV 자료를 공유한 뒤, LTV를 비슷한 수준으로 맞췄다고 보고 있다. 은행권은 "필요한 정보교환이며, 시스템 신뢰도 검증을 위한 참고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A 은행이 강남에 있는 빌딩에 대해 70%의 LTV를 설정한 반면, B 은행은 60%만 설정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B 은행은 해당 매물의 리스크를 더 많이 반영한 것인데, 잠재적 리스크를 항상 유의해야 하는 은행업의 특성상 정보 교환은 이뤄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금융권은 공정위가 성과를 위한 꼬리물기식 수사를 강행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번 공정위 수사는 지난 2023년 2월 윤 대통령이 "금융사의 과도한 지대추구를 막을 방안을 강구하라"는 주문에 따라 시작됐다. 당초 6개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기업)에 대한 '대출금리 담합' 조사를 실시했으나, 이후 선로를 바꿔 4대 은행의 'LTV 담합'을 조사하고 있는 상태다.
10여년 전 공정위의 'CD 금리 담합 조사'가 재현됐다는 우려도 나온다. 공정위는 지난 2012년부터 6개 시중은행의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의혹을 4년 동안 조사했으나,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심의절차 종료'를 선언했다. 무리수라고 평가받는 공정위 대표 조사 사건이다.
은행권 관리·감독 주체인 금융당국은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타 정부 기관의 조사인데 금융당국이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답했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은행이 다툴 수 있는 부분이 많아 사건이 늘어지는 것 아니겠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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