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빗장' 열리자 美 빅테크 AI 러시…K 반도체·전력업계 '미소'
엔비디아, 사우디에 AI칩 공급…AI 데이터센터 구축 급물살
'AI 공급망' 엮인 K-반도체·전력업계, 연내 신규 수주 기대감
- 최동현 기자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동 빗장'을 풀면서 국내 반도체와 전력기기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엔비디아와 오픈AI 등 빅테크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순방에 맞춰 첨단 인공지능(AI) 칩 공급 및 데이터센터 파트너십을 잇달아 발표한 때문이다. AI 공급망으로 엮여 있는 국내 반도체·전력기기 업계가 낙수효과를 누릴 전망이다.
16일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사우디-미국 투자 포럼'에서 현지 기업 휴메인에 최신 AI 칩인 GB300 블랙웰 칩을 1만 8000개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이 칩들은 사우디 내 500MW(메가와트)급 데이터센터에 사용될 예정이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7일 전임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했던 'AI 확산 프레임워크'를 폐기했다. AI 반도체 수출국을 3개 그룹(동맹국·제한국·적대국)으로 나눠 수입 가능한 AI 반도체 물량을 제한하는 게 골자였다. 중동은 중국과 함께 AI칩 수출이 전면 통제되는 '적대국'으로 묶였는데, 트럼프 행정부가 룰을 변경한 것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은 올해부터 아랍에미리트(UAE)에 매년 50만 개의 엔비디아 고성능 AI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수출하는 방안에도 잠정 합의했다. 이 물량 중 10만 개(20%)는 UAE의 AI 기술기업인 G42에 공급되며, 나머지는 마이크로소프트·오라클 등 미국 빅테크들이 UAE에 데이터센터를 지을 경우 공급받을 전망이다.
이에 오픈AI는 G42와 손잡고 UAE 내에 데이터센터를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오픈AI와 G42의 데이터센터 구축 계약은 이르면 이번 주 내에 공식 발표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이 'AI 중동 수출길'을 활짝 열면서 북미 빅테크들과 AI 공급망으로 묶여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전자·전력기기 업체들이 직·간접적인 수혜를 입게 될 전망이다.
당장 엔비디아에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를 공급 중인 SK하이닉스와 DDR5를 공급하는 삼성전자가 낙수 효과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통상 HBM 등 고성능 메모리는 1년 전에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데, 엔비디아가 신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추가 공급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 입장에선 막혀있던 중동 수출길이 더 넓어진 것"이라며 "(중동향 공급 물량으로) 엔비디아의 올해 예상 수요보다 제품이 부족해지면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에 추가적인 물량 공급을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중동 특수는 올 하반기부터 실적에 반영될 수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지난 14일 유럽 최대 공조기기 업체 플랙트그룹을 15억 유로(약 2조 4000억 원)에 인수했고 전날에는 중동 냉난방공조(HVAC) 시장 공략을 위한 '2025 삼성 중동 에어솔루션 데이'를 개최하기도 했다. 데이터센터 필수 설비인 HVAC는 전 세계적인 AI 붐과 함께 시장 수요가 급증하는 분야다.
전력기기 및 전선 업계도 뜻밖에 만난 호재로 기대감이 커진 분위기다. 중동은 사우디의 '비전 2030 프로젝트' 등으로 북미에 이은 블루오션이다. 미국 빅테크들이 사우디와 UAE 내에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경우 초고압 변압기, 고압 케이블 접속재 등을 추가 발주할 수 있어서다.
대표적으로 HD현대일렉트릭은 비전2030 프로젝트에 따른 전력 발전 설비 수요에 힘입어 올 1분기 중동 지역에서만 매출 2745억 원, 수주 2억 3100만 달러(약 3200억 원)를 올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2.2%, 60.6% 실적이 뛰며 고공 성장했다.
업계 관계자는 "사우디가 자국 기업에 발주 우선권을 주는 현지화 정책을 채택하고 있지만, 신도시 프로젝트로 (전력기기) 수요가 매우 높은 시장"이라며 "미국 빅테크 주도로 현지 데이터센터 신규 수요가 추가되면 국내 전력기기 3사(효성중공업·HD현대일렉트릭·LS일렉트릭)로선 호재"라고 했다.
대한전선도 중동 걸프협력회의(GCC) 지역에 업계 최초이자 유일한 HV(고압)급 케이블 접속재를 생산하는 '사우디대한' 법인을 운영 중이다. 올해 1분기 전년 대비 5배 많은 매출을 올렸다. LS전선도 UAE 내 두바이와 아부다비에 지사를 두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중동의 우호적 관계는 중동 지역의 인프라 개발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미국 기업의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로 전력 인프라 수요가 많이 늘어나면 한국 업체들의 시장 진출 증가 및 참여 기회가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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