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심장' 대만으로 옮기는 엔비디아…'AI 패권' 이합집산 가시화
젠슨 황, 대만 밸류체인 기반 'AI 생태계' 구축…脫 빅테크 본격화
韓, 일본과 '공동전선' 모색…"메모리 강국으론 AI 패권 못 잡는다"
- 최동현 기자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세계 인공지능(AI) 산업의 심장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대만으로 옮기는 'AI 수도' 구상을 본격화하면서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TSMC·폭스콘·미디어텍 등 대만의 AI 밸류체인을 기반으로 '엔비디아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동시에 엔비디아의 탈(脫) 빅테크 움직임이 가속할 예정이라 글로벌 AI 패권의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황 CEO는 지난 19일 대만 타이베이 뮤직센터에서 열린 '컴퓨텍스 2025' 기조연설에서 "폭스콘과 대만 정부, TSMC, 엔비디아는 대만의 AI 인프라와 AI 생태계를 위해 첫 번째 대형 AI 슈퍼컴퓨터를 건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황 CEO는 엔비디아의 대만 신사옥 '콘스텔레이션'(별자리) 부지도 깜짝 발표했다.
황 CEO는 기조연설에 앞서 지난 17일 타이베이의 한 식당에서 TSMC, 폭스콘, 미디어텍 등 대만의 주요 공급망 파트너사 경영진 30여 명과 만찬을 가졌다. 엔비디아와 대만 IT 산업계 '동맹'을 상징하는 자리였다. 현지 매체들은 이날 만찬에 '조(兆) 달러 디너'라는 이름을 붙이며 엔비디아와 대만의 결속을 조명했다.
젠슨 황 CEO가 'AI 생태계'로 대만을 지명한 속내에는 두 가지 계산이 깔려있다.
먼저 대만의 AI 밸류체인을 활용하면 칩부터 패키징, 서버, 통합까지 AI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모든 공급망을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는 분석이다. 대만은 세계 1위 파운드리 TSMC, 세계 1위 AI 서버 제조사 폭스콘, 세계 1위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제조사 미디어텍 등 최정상급 AI 기업이 포진해 있다. 대만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의 전폭적인 인프라 및 정책 지원도 보장된다.
젠슨 황 CEO가 대만의 AI 밸류체인을 중심으로 '엔비디아 AI 생태계'를 구축하면 자연스럽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등 기존 빅테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엔비디아의 전략적 움직임에 대해 "데이터센터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하이퍼스케일러의 의존도를 줄이고, 실리콘밸리를 넘어 다양한 고객층을 확보하려는 시도"라고 평가한 바 있다.
업계에선 AI 산업이 과도기에 진입하면서 글로벌 주요 플레이어들의 '이합집산'이 가시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미 지난해부터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최종 수요자인 빅테크들이 '탈 엔비디아' 전략을 펴고 있다는 관측이 나왔는데, 엔비디아가 팹리스(칩 설계사)를 넘어 'AI 인프라 공급자'로 도약을 시도하면서 AI 패권 경쟁이 뜨거워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메모리 강국'에 머물러 있는 K-반도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고성능 메모리(HBM·DDR)를 공급하고 있지만, 엔비디아와 대만의 결속이 강화될수록 국내 반도체 업계는 '부품 납품국' 위치에 머무를 수 있다. 특히 엔비디아가 TSMC와의 결속을 더 높일수록 파운드리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입지가 더 줄어들 우려도 크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일본과의 협력 범위를 넓히며 해법을 찾고 있다. 일본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들과 공동 전선을 구축, 산업은 물론 경제 규모까지 키우겠다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최근 두 차례 일본 출장길에 올라 주요 파트너사들을 만났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달 말 일본을 찾을 예정이다.
앞서 최태원 회장은 지난 9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참석한 대한민국 AI 정책 포럼에서 "월드 베스트(세계 최고)의 제조 AI 역량을 갖추려면 근본적으로 (시장) 스케일이 중요한데, 중국을 경쟁자라고 생각한다면 스케일이 모자란다"며 "부족한 스케일을 채우려면 파트너를 구해야 한다. 일본과 (스케일을) 크게 키울 수 있는 풀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산·학계에선 K-반도체가 AI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시스템 메모리'(비메모리)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주문한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 규모는 910조 원으로, 이중 비메모리 비중은 74.8%, 메모리 비중은 25.2%였다. 비메모리의 시장 규모가 세 배 가까이 클 뿐만 아니라, AI 생태계를 직접 설계하기 위해선 비메모리 역량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한국 기업의 비메모리 시장 점유율은 3%에 불과하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한국이 HMB 등 메모리에서 최고의 역량을 갖추고 있지만, AI 반도체의 핵심은 메모리와 데이터를 주고받으면서 계산하는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라며 "AI 시대에서 (한국이) 주류가 되기 위해서는 비메모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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