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소 짓고 조선소 인수…조선·철강, 美투자 확대[트럼프 2.0]
한화, 美필리조선소 인수…첨단 기술력으로 美 함정 MRO 등 조선동맹 겨냥
포스코·현대제철·세아, 美 생산시설 짓고 관세·쿼터 장벽 대응 추진
- 김종윤 기자
(서울=뉴스1) 김종윤 기자 = 국내 조선·철강업계가 미국 트럼프 2지 행정부 출범에 대응해 현지 직접 투자로 돌파구를 찾는다. 조선업계는 미국 현지조선소 인수 및 세계 최고의 조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미 해군 함정 수리시장 및 상선 건조시장을 파고들어 조선업 재건을 선언한 새 정부와의 한미 조선 동맹을 이루겠다는 의지다. 철강업계도 미국에 생산시설을 직접 짓는 방안을 검토한다. 철강 수출 쿼터(제한)와 관세 폭탄을 넘기 위한 현지화 전략이다.
20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한화오션(042660)·한화시스템(272210)은 약 1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필리 조선소(Philly Shipyard)의 지분 100% 인수를 마무리했다. 국내 기업 중 미국 조선소를 인수한 것은 한화그룹이 처음이다.
필리 조선소는 노르웨이의 석유·가스·재생에너지 전문기업 아커의 미국 자회사다. 지난 1997년 미 해군 필라델피아 국영 조선소 부지에 설립됐다. 연안 운송용 상선뿐 아니라 석유화학제품운반선(PC선)·컨테이너선 건조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인수 직후부터 빠르게 필리 조선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인수 금액과 맞먹는 금액을 추가로 투자해 시설을 확장하기로 했다. 조선업 쇠락에 따라 조선소를 떠났던 숙련된 인력도 빠르게 충원하고 있다.
때마침 트럼프 당선인이 K-조선과 동맹 필요성을 언급했다. 우방국인 한국과 협력으로 과거 세계 조선업을 이끌었던 미국 위상을 재건하겠다는 의지였다. 해양 패권을 지배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도 깔려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한국의 세계적인 군함과 선박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다"며 "우리 선박 수출뿐 아니라 MRO(유지·보수·정비) 분야에서도 긴밀하게 한국과 협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한화오션은 국내 조선소 중 유일하게 미 해군 MRO 사업을 두 건 연속 따내고 선제적으로 시장에 진입했다.
HD현대중공업(329180) 역시 다음달 첫 입찰 참여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미 MRO 시장에 진출한다. HD현대중공업은 올해 2~3척 이상의 MRO 사업을 수주한다는 목표다. 입찰 자격을 일찌감치 갖췄지만 기존 일감으로 도크가 가득 차 도전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미국은 현재 80척에 불과한 미국 선적 선박을 10년 내 250척까지 늘려 '전략상선단'을 운영한다는 목표도 제시해 대규모 상선 건조 시장이 열릴 전망이다. 글로벌 선박 건조 시장은 중국이 우리나라에 크게 앞서는 세계 1위이지만, 미국으로서는 안보 이슈로 중국 조선사가 선택지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 국내 조선사들이 수주 경쟁을 펼칠 것이 유력하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국과 해양 세력 다툼에서 밀리고 있다는 미국 내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며 "보호 장벽을 쌓은 다른 산업과 달리 조선업에선 우방국의 도움이 절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철강업계는 미국 본토에 생산시설 구축을 추진한다.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은 물량 제한(쿼터제)에 따라 연 268만 톤으로 묶여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관세장벽을 높이겠다고 예고해 직접 투자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현대제철(004020)은 미국 남부에 전기로 방식의 제철소 건설을 검토 중이다. 현지 현대차(005380) 공장이란 확실한 수요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투자 리스크를 줄일 수 있어서다. 현대차·기아는 현지 공장을 통해 지난해 미국에서 현대차(제네시스 포함) 91만1805대, 기아 79만6488대 등 총 170만8293대를 판매해 전년 최고 실적을 경신했다. 그룹 내에서 직접 자동차용 강판을 생산한다면 수익성 확보에도 유리하다.
세아그룹은 텍사스주에 연산 6000톤 규모의 특수합금 공장을 추진하고 있다. 특수합금은 내연성·내식성을 지닌 소재로 항공우주, 방산, 발전용 터빈 생산에 주로 쓰인다. 이달 세아창원특수강의 미국 법인(SeAH Superalloy Technologies, LLC)은 1억 855만 달러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하고 투자비를 조달했다.
포스코는 미국 현지에 상공정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상공정은 고로 또는 전기로를 통해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과정이다.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도 글로벌 시장에서 현지화 전략 구축을 강조하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자국 내 산업을 보호하려는 기조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며 "트럼프 정부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미국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투자를 검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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