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칼럼] 미국 해외부패방지법 집행 중단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2월 10일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미국의 해외부패방지법(Foreign Corrupt Practices Act: FCPA)에 의한 조사와 기소를 중단했다. 의회가 만든 법을 대통령이 폐기할 수는 없지만 집행을 하지 않으면 사실상 법률이 폐기되는 셈이다. 이 법이 지나치게 범위가 넓고 예측 가능성도 결여되어 있어서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다. 이런 법률을 제정해서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 외에는 없기 때문에 어떤 나라도 미국의 조치를 비판하지 못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다수 글로벌 기업들이 해외에서 크고 작은 부정을 저지르는데 사실 많은 나라가 자국 기업이 해외에서 부정한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실적을 내고 외화 수입을 가져오면 눈감아버린다. 조사가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민주당은 FCPA가 글로벌 시장경제 질서 유지의 초석이라고 주장하면서 트럼프 행정부를 비난한다.
미국은 1977년에 FCPA를 제정했다. 한 차원 높은 ‘국익’ 관념에 의해서다.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외국회사도 이 법의 적용을 받는데 미국 정부와 해당국 정부의 공조 조사로 처벌된다. 종이호랑이법이 아니고 엄격하게 집행되기 때문에 미국의 대형 로펌들은 이 분야에서 많은 인력을 두고 바쁘게 일한다. 2020년에는 골드만삭스가 이 법률 위반으로 30억 달러의 벌금을 낸 적도 있다. 말레이시아의 1MDB 사건에 연루되어서다. 2024년에만 해도 30건 이상의 사건으로 기소가 이루어졌다.
독일 지멘스도 이 법의 제재를 받았다. 뉴욕증권거래소 상장기업이어서다. 지멘스는 해외 사업과 관련해서 아르헨티나, 중국, 나이지리아, 이라크, 러시아 등 정부에 거액의 뇌물을 공여했다. 총 2700개에 이르는 현지 기업을 통해 해당국 정치인, 공무원에 뇌물이 전달되었는데 수주액의 5%에서 최고 40%의 금액이다. 총 13억 달러였다. 미국과 독일의 조사와 수사 끝에 2008년에 당시 사상 최고액인 16억 달러 벌금이 부과되었다. 다수 관련자들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단죄된 임원들은 뇌물이 해외시장에서의 경쟁력과 본국에서의 고용 유지를 위해 불가피했다고 항변했다.
서구 국가들은 식민지 개척과 팽창주의 시대에는 남의 나라에 가서 폭력을 행사하고 살상을 일삼으면서 약탈적으로 사업을 했고 그 과실을 본국에 가져와서 칭송을 받았다. 그런데 ‘고작’ 뇌물 공여를 그 나라에서도 아니고 본국에서 처벌한다? 더구나 일단 국익에 도움이 되었는데? 그래서 해외부패방지법은 매우 특이한 법률이고 미국적인 법으로 이해된다. 학계에서는 왜 이런 법이 있고 그 발상이 어디에 있는지를 연구하기도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 점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트럼프 2기는 역사를 되돌리는 느낌을 준다. 제국주의 시대는 경쟁과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미국은 신사적인 이미지의 나라지만 당시에는 쿠바, 필리핀 등등 무력으로 세를 불리는 데 다른 나라들 못지않게 열심이었다. 사실 미국은 남의 땅을 차근차근 빼앗아서 완성된 나라다. 역사는 이렇게 또 반복된다. 문제는 그런 식의 경쟁이 큰 전쟁을 불러왔다는 점이다. 바이런은 미래를 알고 싶으면 역사를 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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