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층 강력해진 상법 개정안, 경제계 "또 뭐가 나올지…대선 앓이"
민주, 상법 개정안 재발의…경제계, 일단은 예의주시
5월 대선후보 강연회 통해 우려 전달할 듯
- 박기호 기자
(서울=뉴스1) 박기호 기자 = 정치권에서 상법 개정안이 재추진되자 경제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폐기됐던 이전 법안보다 더 부담되는 조항이 새로 추가됐고 조기 대선 결과에 따라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마저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어서다. 상법 개정안을 두고 주요 정당이 충돌하고 있어 공개적으로 반대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자칫 경제계가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어 속앓이만 하는 상황이다.
23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전날 두 건의 상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상법 개정 재추진 방침을 밝히자 법안 재발의가 속속 이뤄지고 있는 모양새다.
이소영 민주당 의원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모든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전체 주주'로 확대하도록 했고 이사는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보호하되, 특정 주주의 이익을 우선해선 안 된다는 내용도 담았다. 또 이 개정안에선 시행 시기를 공포한 날부터 시행하도록 했다.
같은 당 윤준병 의원이 대표발의한 상법 개정안에선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으로 주주를 추가하고 이사가 직무수행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며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도록 했다. 또 상장회사는 이사 선임 과정에 있어 정관으로 집중투표를 배제할 수 없도록 했고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이사를 다른 이사와 분리해 선임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와 함께 전자주주총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하고 자산 규모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상장회사는 전자주주총회의 병행 개최를 의무화하게 했다.
경제계는 상법 재추진에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제계는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고 전자주주총회 제도를 의무화하는 개정안에도 난색을 보여왔는데 이번에는 집중투표제 활성화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안까지 포함됐기 때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재추진되는 상법 개정안에 대해 "기업 경영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존 개정안의 이사 충실의무 대상 확대는 소송 남발로 경영 마비 사태를 초래하고 해외 투기자본의 먹튀 조장법으로 전락할 수 있기에 반대해 왔는데 이번에 새로 추가된 내용 역시 우려스러운 부분이 많이 있다"고 전했다.
경제계는 집중투표제에 대해선 수많은 주주가 청구권을 남발할 우려가 크고 주주의 자기 결정권이나 정관 자치주의 등 기업의 자율성을 훼손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집중투표제는 자본다수결 원리를 위배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안에 대해선 해외 투기자본에 의한 감사위원회 장악과 경영권 위협이 급증하며 경쟁기업과 해외 투지 자본에 기업의 주요 정보 등의 유출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경제계는 대선 국면인 데다 유력 대선주자인 이 전 대표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어 공개적으로 반발하는 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경제계가 지금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제계는 공개적으로 반발했던 이전과는 달리 현재는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경제계는 기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점도 걱정하는 대목이다. 최근 폐기된 상법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했지만 정부의 거부권 행사를 거쳐 우여곡절 끝에 국회 재표결에서 부결됐다. 그렇지만 조기 대선 결과에 따라 민주당이 집권하면 상법 개정안은 일사천리로 통과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경제계의 어려움을 전달하는 것 외에는 (현재는)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물론 경제계는 상법 개정에 대한 우려의 뜻은 정치권에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 5단체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확정되면 특별 강연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경제계의 우려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경제계는 대선 후보가 먼저 확정되는 민주당 후보부터 초청, 공약을 경청하고 경제계의 의견을 전달한다는 계획이다. 한 경제계 관계자는 "경제단체가 개최하는 강연회를 통해 재계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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