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해운사 공동행위 공정위 규제 대상…"이중 규제" 울상
'해수부 배타적 규제' 원심 파기환송…"공정법 모든 산업에 적용"
업계 '규제기관 두 곳 되나' 당혹…"해운 특수성 인정할 필요"
- 김성식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해운사의 공동행위도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 대상이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해운업계가 울상이다. 공동행위란 동맹을 맺은 해운사들이 운임, 선박 배치, 화물 적재 등을 합의하고 실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해운사들은 해운법에 따라 운임 등을 협의하고 해양수산부장관에 신고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해운사들이 공정위의 규제까지 받게 될 처지라고 하소연한다. 특히 해운업 특성상 해운사간 협의를 하지 못할 경우 운임이 급등락할 수 있고 해외업체와 경쟁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입장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대법원은 해운사들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만 에버그린과 국내 해운회사를 포함한 23개 선사는 2003년 12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한국-동남아 항로에서 해운동맹을 위한 단체 IADA 및 동남아정기선사협의회 내 회의를 통해 120차례에 걸쳐 한국–동남아 항로에서 컨테이너 운임 가격을 합의·실행했다.
공정위는 이런 합의가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2022년 국내외 선사 23곳에 시정명령 및 964억 원의 과징금 납부 명령했다. 이에 에버그린은 불복 소송을 제기했고 국내 선사 10곳이 원고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했다.
서울고법은 해운법 제29조를 근거로 해운사의 공동행위는 자유 경쟁의 예외로 인정되고, 결정된 운임에 대한 규제 권한은 해양수산부 장관에 있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해운법 제29조는 외항 정기 화물 운송사업자들의 운임에 관한 공동행위를 허용함으로써 자유경쟁의 예외를 구체적으로 인정하고, 다만 그 공동행위를 통해 결정된 운임이 지나치게 높아 부당한 경우에는 해양수산부 장관이 필요한 조치를 하되 이를 공정위에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공정위의 규제 권한을 인정했다. 헌법상 요구되는 시장 경제 질서를 구현하는 공정거래법 입법 취지에 비춰 볼 때, 다른 법률에 특별한 정함이 없는 한 공정거래법은 모든 산업 분야에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해운법 제29조 내용 만으로 공정거래법 적용이 배제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번 파기 환송은 공정위의 규제 권한을 인정한 것으로 과징금 부과가 합당한지에 대한 판단은 앞으로 이어질 행정소송에서 가려진다. 해수부에 신고하지 않거나 은폐한 공동행위가 없었음을 선사가 입증하게 되면 과징금 부과 조치가 취소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해운업계는 또 다른 규제 기관이 법원에 의해 인정된 데 대해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해운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규제 권한을 해수부가 배타적으로 갖는 것"이라며 "자칫 이중 규제를 받게 될 위기에 처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선사들의 공동행위가 금지되면 동남아 노선에서 영세 선사들 간 출혈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해운 산업은 오랜 역사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독자적인 법 제도로 존재하는 것이 많다"며 "신고되지 않거나 은폐된 경우를 포함한 선사의 모든 공동행위는 해수부가 규제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해운법에 의한 제제 수준이 공정위에서 부과하는 것과 비교해 낮기 때문에 공정위의 개입을 불러온 만큼 "미국의 연방해사위원회(FMC)와 유사한 제도를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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