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밸류, 4분의1토막까지 추락…남은 시간은 1~2년 뿐"
[혁신이 죽었다⑬]윤건수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
"코스닥 상장사 60%가 시총 1000억 미만…큰 기업 키워야"
- 대담=강은성 성장산업부장, 이정후 기자,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대담=강은성 성장산업부장 이정후 박세연 기자
"기업가치가 4분의 1까지 줄어든 스타트업이 많습니다. 이들은 펀딩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어요. 결국 글로벌로 가야 하는데 갈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습니다. 그럼 그들이 해외로 나갈 때까지 팔짱 끼고 기다려야 하나요? 코스닥 시장을 활성화하고 규제를 없애야죠."
시장에 막대한 돈이 풀렸던 코로나19 시기 치솟던 스타트업의 몸값은 엔데믹과 함께 찾아온 고금리로 고꾸라졌다. 최근엔 고환율까지 겹치며 더욱 상황이 어렵다.
대표적인 예로 2조 원 가치를 논하던 유통플랫폼 컬리는 최근 국내 시장에서 기업가치가 4000억 원 정도로 거론되고 있다. 컬리는 지난 2022년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하고 상장을 추진했지만 당시 급격한 고금리로 시장이 얼어붙으며 8900억 원 가량으로 몸값을 낮춰 상장을 시도하려 했고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결국 상장을 철회했다. 현재 서울거래소 비상장 등 장외거래플랫폼에서 거래되는 컬리의 추정 시가총액은 3421억 원이다. 이 회사가 지난 2021년 12월 마지막 프리IPO까지 받은 누적 투자금액만 8928억 원인데, 추정 시가총액이 누적 투자금액의 절반도 안되는 수준인 셈이다.
적자를 감수하고 매출 규모를 키우는 데 집중했던 스타트업은 결국 투자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반토막 난 기업가치로는 기존 주주들의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 대부분 내수 위주의 사업 모델이다 보니 매출과 영업이익의 동반 성장도 불가능하다.
윤건수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DSC인베스트먼트 대표)은 국내 스타트업, 벤처 기업의 기업가치가 반토막, 많게는 4분의 1토막이 났다고 큰 우려를 표했다. 기업가치 추락은 투자의 위축을 낳고, 투자 위축은 혁신 기업의 도약에 큰 걸림돌이 된다. 악순환인 셈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글로벌 진출'이다. 국내에서 추가 매출을 확보하기 어려우니 해외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문제는 해외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는 게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그 사이 기업들은 운영 자금이 마른다. 이들의 글로벌 진출과 그곳에서의 성공을 그냥 기다리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윤 회장은 얼어붙은 투자 환경 속에서 국내 혁신기업들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불과 1~2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우려했다.
때문에 얼어붙은 코스닥 시장을 살려 투자금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윤 회장의 목소리다. 코스닥 시장이 활발해져야 스타트업들은 추가 성장 동력을 얻고 벤처캐피탈은 회수한 투자금으로 또 다른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 있어서다.
"지금 코스닥에 상장된 기업의 60%가 시가총액 1000억 원 미만입니다. 우리나라 산업에 영향을 거의 못 미치는 기업들이 상장된 거거든요."
그가 코스닥의 활성화를 주장하는 것과는 다르게 코스닥을 노리는 벤처기업들의 입지는 줄어들고 있다. 벤처기업이 자본 시장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도록 마련한 기술 특례 상장이 '파두 상장'을 계기로 문턱이 높아지면서다.
파두(440110)는 2023년 8월에 기술 특례 상장으로 코스닥에 상장한 기업이다. 약 1조 5000억 원의 기업가치를 평가받고 2023년 연간 매출액 추정치를 1202억 원으로 제시했으나 실제 3분기 매출액은 3억 2100만 원에 불과해 주가가 폭락했다.
파두를 계기로 기술 특례 상장에 대한 검증이 강화되면서 매출이 확보되지 못한 벤처기업들은 코스닥 상장에 실패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시행된 '초격차 기술 특례 상장' 역시 아직 1호 기업이 나오지 않았다.
윤 회장은 기술 특례 상장을 '우리나라 산업 정책 중 가장 잘한 제도'라고 평가하면서도 최근 기준이 높아지면서 시가총액 1000억~2000억 원 규모의 작은 기업들만 상장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사실상 유망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들보단 당장 매출이 나오는 중소규모 기업들만 상장하면서 추가적인 혁신 동력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는 이야기다.
윤 회장은 엄격해진 기술 특례 상장 제도를 더욱 유연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상장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 바이오산업도 지금처럼 성장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바이오 기업들이 지금과 같은 기술 특례 상장 기준으로 상장하지 못한다면 벤처캐피탈이나 다른 기관들은 바이오 기업에 투자 안 할 겁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바이오산업은 끝이거든요."
그는 많은 바이오 상장사가 고배를 마셨던 것을 인정하면서도 알테오젠(196170), 리가켐바이오(141080), ABL바이오(298380) 등 굵직한 바이오 기업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것을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바이오 기업 200개 올려서 5개 정도 살아남았잖아요. 그래서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이 지금 성장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200개 중에 195개가 망한 거를 볼 게 아니라 살아남은 5개가 우리나라의 바이오산업을 이끈다는 관점으로 봐야 합니다. 그렇게 네이버가 만들어졌거든요."
이처럼 벤처기업이 도전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기 위해 코스피와 코스닥을 분리해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을 실었다. 코스피는 주주 보호에 방점이 찍힌 금융 시장, 코스닥은 신산업 육성이 중요한 산업 시장이라는 이유에서다.
윤 회장은 지금과 같은 코스닥 침체기가 길어진다면 우리나라의 혁신 동력은 조만간 꺼지고 말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냈다. 그가 특히 중요하게 본 것은 글로벌 시장에서 가속하고 있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21일 우리나라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경제 성장률을 당초 1.9%에서 1.6~1.7%로 하향했다. 낮은 경제 성장률은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 매력도를 떨어트리는 요인이다.
국가 미래 전망이 밝지 않으니 혁신 업계에 대한 투자도 위축될 수 있다. 국내 투자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해외 투자까지 막힌다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욱 심화할 수밖에 없다.
결국 경제 성장률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이는 민간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를 위해 윤 회장은 우리나라의 포지티브 규제를 네거티브 규제로 하루빨리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는 2012년 화장품법 전부 개정안을 대표적인 예시로 제시했다.
당시 화장품법 전부 개정안에는 '사용 금지 원료 리스트' 외에는 모든 원료를 화장품 제조에 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직전의 포지티브 규제에서 네거티브 규제를 적용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되지 않아 화장품은 중소기업 수출 품목 1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성공적인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산업 곳곳에 포지티브 규제가 적용되고 있는 것에 대해 윤 회장은 안타까워했다. 현재 산업으로서 육성이 더딘 가상자산 산업에 대해서도 신산업으로 바라보고 여러 규제를 걷어내야 한다고도 했다.
"누군가는 올해 코스닥 시장이 크게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상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을 것 같습니다. 우리한테 남은 시간은 진짜 1~2년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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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대한민국 혁신은 죽었다'는 탄식이 나온다. 전세계 혁신을 이끌고 있는 인공지능(AI) 대열에서 대한민국은 사실상 낙오됐고, 여타 산업에서도 기술 우위를 점한 분야를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아직 저력이 있다. 골든타임은 되살릴 수 있다. IMF도 극복해낸 민족이다. 은 2025년 새해를 맞아 대한민국 혁신산업의 현재를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혁신, 정책, 자본시장 전문가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