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지름길은 M&A다…변화 느린 대기업, 스타트업 인수가 답"
[혁신이 죽었다⑭]윤건수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
M&A 활성화하면 기업 모두에 이익…VC도 역량 키워야
- 대담=강은성 성장산업부장, 이정후 기자,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대담=강은성 성장산업부장 이정후 박세연 기자
"코스닥에 상장돼 있는 약 1800개 기업에 혁신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들이 인수·합병(M&A)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게 필요합니다."
스타트업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혁신'이다. 기존 기업들의 성장 공식이나 관습을 타파해 새로운 도약을 한다는 점에서 특히 스타트업은 '혁신'이라는 단어와 가장 가까운 편이다.
반면 어느 정도 성장한 중견기업과 대기업은 변화에 더디다. 수십 년간 한 우물만 파 성공한 기업 입장에서 갑작스러운 변화는 낯설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하지만 기업을 둘러싼 환경은 시시각각 바뀌고 있다.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기업 대표들의 메시지가 신년사마다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중견기업과 대기업에도 '혁신'은 남 일이 아닌 셈이다.
윤건수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은 이 같은 맥락에서 코스닥 상장사 모두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해답으로는 스타트업에 대한 인수·합병(M&A) 활성화를 제시했다.
"삼성, LG, 현대 등 대기업들이 국내 기업 M&A 거의 안 하잖아요. 우리 기업을 우리가 받아주는 생태계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런 게 없습니다."
대기업을 예시로 들었지만 윤 회장은 코스닥 상장사들의 혁신을 위해서라도 스타트업 M&A가 해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동시에 스타트업이 겪는 자금 경색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윈-윈'(WIN-WIN)이라고 설명했다.
스타트업은 외부 투자 유치를 받아 사업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 유망한 기술은 있지만 당장 매출이 나오지 않는 바이오 벤처기업이 대표적이다. 이 시기를 잘 버티면 스타트업은 막대한 매출과 영업이익으로 투자자에게 큰 이익을 안겨준다.
하지만 벤처투자가 얼어붙은 최근 경제 상황에서는 유망 기술 스타트업도 투자를 받기 쉽지 않다. 결국 자금난을 견디지 못한 스타트업은 폐업을 결정한다. 이 경우 빛을 보지 못한 아이디어와 기술은 사라진다.
반면 인수와 합병을 거친 스타트업은 자금력이 있는 모기업 밑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스타트업을 인수한 기업에도 장점이 있다. 기술 개발에 투입하는 자금과 시간을 아낄 수 있어서다.
윤 회장은 "2015년에 카카오가 '김기사' 운영사 록앤올을 인수했다"며 "만약 인수를 안 했다면 그 기술을 카카오가 직접 개발해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스타트업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회수해 새로운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M&A를 통해 창업 생태계 선순환의 물꼬가 트이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스타트업에 대한 M&A가 주춤한 상태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2023년 스타트업 M&A는 86건으로 전년(150건) 대비 42.6% 감소했다. 같은 기간 M&A 금액은 3조 3342억 원에서 2조 5484억 원으로 줄었다.
2016년 발생한 스타트업 M&A 31건, 1조 2250억 원과 비교하면 장기적으로 증가하는 추세긴 하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투자금 회수(엑시트) 방법이 기업공개(IPO)에 쏠려 있다는 점에서 M&A 시장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
윤 회장은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M&A를 활성화하기 위해 여러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의 시장 독점을 견제하기 위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대표적이다.
윤 회장은 "대기업이 M&A로 계열사를 늘리고 새로운 사업을 확장하려고 하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제동을 많이 거는 편"이라며 이를 유연하게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비용의 회계 처리를 기업의 R&D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면 M&A가 활성화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기업이 신사업을 추진하려면 R&D 비용이 투입되는데 이를 M&A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두 비용의 성격이 다르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업계에 따르면 M&A 과정에서는 인수기업과 피인수기업 모두에게 세금이 발생한다. 이 세금 부담만 덜어줘도 M&A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만 스타트업 M&A 활성화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규모가 있는 기업들이 눈독을 들일만한 스타트업이 많아져야 한다는 점이다. 애초에 실력 있는 스타트업이 시장에 없다면 M&A 활성화도 모두 소용없는 이야기다.
결국 유망한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하고 키우는 벤처캐피탈의 역할이 중요하다. 벤처캐피탈에도 혁신이 필요한 배경이다.
윤 회장은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심사역들의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투자 시장이 활발했을 때 자주 있었던 '클럽딜'로는 제대로 된 스타트업을 키울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는 "시장이 좋을 때는 10개 기업에 투자하면 4~5개는 회수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1~2개만 회수할 수 있다"며 "성공적인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실력 있는 스타트업에 집중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심사역이 더 똑똑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사역이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투자하고 난 뒤에도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야 한다"며 "예전처럼 4~5명이 같이 투자하고 기도만 하면 되는 시장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공공 자금 의존도가 높은 국내 벤처투자 시장 특성상 심사역들에게 일종의 사명감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모태펀드나 국민연금 등에서 출자받는 벤처캐피탈이 많기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벤처캐피탈이 출자받는 돈의 상당 부분은 국민 세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벌겠다는 목적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곳에 투자해야 합니다. 목적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거죠. 벤처투자의 절반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것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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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대한민국 혁신은 죽었다'는 탄식이 나온다. 전세계 혁신을 이끌고 있는 인공지능(AI) 대열에서 대한민국은 사실상 낙오됐고, 여타 산업에서도 기술 우위를 점한 분야를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아직 저력이 있다. 골든타임은 되살릴 수 있다. IMF도 극복해낸 민족이다. 은 2025년 새해를 맞아 대한민국 혁신산업의 현재를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혁신, 정책, 자본시장 전문가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