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 빙하기 끝날 때 됐다…문제는 꺼져가는 혁신 동력"
[퍼스트클럽] 김동환 UTC인베스트먼트 대표②
"혁신 위해 '고용 유연화' 필요…정년 제도에 베테랑 놓쳐"
- 대담=강은성 성장산업부장, 이정후 기자
(서울=뉴스1) 대담=강은성 성장산업부장 이정후 기자
2022년 하반기부터 고금리 영향으로 벤처투자가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3년 정도 되면 시장에 다시 기회가 오더군요. 실제로 당시에 조성한 많은 펀드는 올해까지 투자에 나서야 하는 시기입니다.
김동환 UTC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최근 혹한기라고 불렸던 벤처투자 시장이 올해 말부터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다.
유동성 공급이 풍부했던 2021~2022년 상반기에 조성된 펀드들은 드라이파우더(결성된 펀드에서 아직 투자를 집행하지 않은 자금)를 올해 주로 소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벤처투자의 지속 가능성이다. 벤처투자가 계속해서 이어지려면 창업 시장에 혁신적인 기업이 계속 등장해야 한다. 하지만 줄어드는 인구와 대기업발 혁신이 감소하면서 벤처기업의 동력은 꺼지는 중이다.
국내 벤처투자 업계에 대한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우리나라 산업 전망을 김 대표를 통해 들어봤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벤처투자는 11조 9457억 원을 기록, 전년 대비 9.5% 증가하며 3년 만에 반등했다.
하지만 실제 벤처·스타트업 업계에서는 투자 혹한기가 지속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대부분이었다. VC 업계에서는 '내 주변 모두 투자하지 않고 있는데 대체 누가 투자를 하는 건가'라는 의문도 제기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정부 통계와 현장 목소리의 불일치는 올해 다소 줄어들 전망이다. 유동성 공급이 풍부했던 3~4년 전에 조성된 펀드들이 남은 투자 금액을 올해 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8년간 운용하는 벤처펀드는 앞선 4년은 투자에 집중하고 나머지 4년은 관리와 회수에 집중하는데, 올해는 투자 집행 기간의 막바지라는 이야기다.
김 대표는 지난해 벤처투자가 증가한 배경에도 펀드 내에서 아직 투자가 집행되지 않은 드라이파우더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증가 추세는 올해도 지속될 것이고도 전망했다.
다만 여전히 모험적인 초기 투자보다는 안전한 후기 투자에 자금이 몰리다 보니 특정 기업의 기업가치가 예상보다 높아지는 '미니 버블'이 발생할 것을 예측했다.
지난 몇 년간 시장의 우려를 샀던 벤처투자 혹한기가 끝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벤처 산업의 지속 가능성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는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가 빠르게 심화하고 있다. 새로운 세대의 감소는 혁신 산업의 동력을 꺼트리고 이는 곧 국내 벤처투자의 위축과도 연결될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인구 문제에 대해 "심각한 이슈"라고 진단하면서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그는 "신산업과 신기술을 위해 필요한 사람을 찾아보려고 하면 (인구가 가장 많다는) 서울에도 인재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외국인 유치 말고는 답이 없어 보이지만 국내 근로 문화를 바꾸지 않는다면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술력이 집약된 대기업에서 혁신이 사라지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목했다. 우리나라가 강점이 있는 제조 기반 산업들은 대부분 설비투자가 바탕이 되다 보니 인재 중심의 경영이 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국내 대기업이 글로벌 대기업과 비교해 혁신이 없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인사 문제 때문"이라며 "실력 있는 기술자들은 정년 연령이 되면 나가야 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쉽게 말해 공장에 깔린 제조설비 운영을 노하우가 부족한 새로운 사람으로도 대체할 수 있다는 인식 탓에 고급 인력들이 밀려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노하우가 혁신으로 이어지는 끈이 끊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김 대표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고용 유연화'를 제시했다. 정규직과 정년 보장이라는 틀을 깨고 고용과 해고가 자유로워야 기업은 기업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성장 동력을 도모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그는 "우리나라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외국계 회사는 언제든지 그만두고 다시 쉽게 취업한다"며 "고용이 유연화돼 있다 보니 퇴사하더라도 비슷한 수준의 회사에 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기업 관점에서도 긍정적이다. 현행 고용 제도를 고쳐 인력 운영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면 꾸준한 인재 수급과 베테랑을 바탕으로 '양질의 기업'이 될 수 있다.
김 대표는 "기업의 개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튼튼한 기업이 늘어나는 게 중요하다"며 "회사를 망하지 않게 지원하는 정책보다 잘 되는 회사를 더 잘 되게 만드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산업의 발전 파트너인 VC 업계의 혁신을 위해서는 심사역들의 역량 강화를 주문했다. 좋은 기업을 발굴할 수 있도록 심사역 개개인이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다.
김 대표는 유행을 좇는 투자보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관점으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두가 아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흙 속의 진주'를 발견하는 일이 심사역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당부는 실제 회사를 운영하면서 겪은 경험에 근거한다. 그는 "회사 안에서 치열한 토론을 거쳐 통과된 투자가 나중에 좋은 결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며 "모두가 동의하는 투자는 기대만큼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담=강은성 성장산업부장, 정리=이정후 기자
◇김동환 UTC인베스트먼트 대표
△연세대학교 전기공학과 학사
△시카고대학교 부스 경영대학원(The University of Chicago Booth School of Business, MBA)
△신한금융투자
△골드만삭스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현재 SBVA) 이사
△코그니티브인베스트먼트 대표(2016~2018년)
△하나벤처스 대표(2018~2023년)
△UTC인베스트먼트 대표(2024년~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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