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만든 모태펀드가 44조…李·金 'AI 100조 투자' 방향은
관련 업계 "정부·민간 힘 합쳐도 100조 원 조성은 어려워"
R&D 예산 활용 방안도 있지만 성과 기대↓…"인재 키워야"
- 이정후 기자
(서울=뉴스1) 이정후 기자 = AI 산업 육성이 국가 과제로 떠오르면서 대선 후보들이 'AI 100조 투자'라는 공약을 앞다퉈 내놨다. 지지율 1·2위인 이재명 후보와 김문수 후보 모두 신산업 육성을 위해 100조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라 누가 당선되든 AI 산업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은 이뤄질 전망이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대표적인 정부 출자 사업인 모태펀드가 20년 동안 민간과 함께 조성해 온 누적 금액이 약 44조 원이라는 점에서 '100조 원 펀드'는 선언적 구호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AI 학계와 벤처투자 업계는 "AI 산업 육성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반길만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며 "인프라 투자보다 시급한 건 인재 확보"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10대 공약 중 하나로 나란히 AI 산업 육성을 제시했다.
먼저 이 후보는 AI 예산 비중을 선진국 수준 이상으로 증액하고 민간 투자 100조 원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AI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 개 이상을 확보하는 등 국가 AI 데이터 집적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이어 자신의 SNS에는 "정부가 빅테크 기업 육성에 적극 나서겠다"며 "국민과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100조 원 규모의 펀드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김 후보는 AI 유니콘(기업가치 약 1조 원 이상 비상장 기업) 지원 방안으로 글로벌 기업이 참여하는 민관합동펀드 100조 원을 조성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를 통해 AI·에너지 3대 강국이 되겠다는 계획이다.
차세대 AI 반도체의 원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AI 산업에 필요한 전력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원자력 발전의 비중을 높이겠다고도 했다.
이와 함께 두 후보 모두 AI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벤처투자 활성화 계획을 밝혔다.
두 후보의 공약 중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면 '100조 펀드'다. 100조 펀드는 공약 발표 초기부터 실현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스타트업계를 중심으로 제기됐다.
실제로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모태펀드'의 경우 2005년 결성을 시작해 지난해 말까지 누적 43조 9454억 원을 결성했다. 누적 정부 출자 예산 9조 8617억 원을 포함해 민간 자금까지 합산된 규모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기관 한국벤처투자가 운용하는 모태펀드란 △중소벤처기업부 △문화체육관광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환경부 △해양수산부 △국토교통부 등 정부 부처와 일부 산하기관들이 매년 출자해 조성하는 모펀드다. 여기에 민간 자금이 더해져 최종 펀드가 조성된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가 출자해 조성하는 '농림수산식품모태펀드' 역시 같은 구조다. 해당 펀드를 운용하는 농업정책보험금융원에 따르면 2010년부터 농림수산식품모태펀드를 조성하기 시작해 지난해 말 기준 2조 2776억 원을 결성했다.
즉 정부와 민간이 20년 전부터 힘을 합쳐 펀드를 조성했지만 누적 금액은 50조 원이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업계에서 두 후보의 '100조 원 펀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세부적인 투자·펀드 조성 계획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라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AI 투자·펀드 예산으로 포함될 수 있다고도 예측한다.
현재 국가 R&D 예산은 약 30조 원 규모로 예산이 삭감됐던 2024년을 제외하면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다.
다만, R&D 예산은 AI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바이오, 보건·복지·고용, 환경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쓰이기 때문에 '100조 원'이라는 목표 달성에는 여전히 의문 부호가 남는다.
불투명한 재원 마련 방안 속에서 관련 학계와 업계는 100조 원 규모의 예산을 조성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대선 후보들이 AI 산업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고 대규모 예산을 공약으로 내거는 데 의의가 있다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익명을 요구한 벤처캐피탈 업계 고위 관계자는 "올해 정부 예산은 약 670조 원으로 매년 20조 원씩 100조 원을 조성한다고 해도 굉장히 큰 규모"라며 "민간기업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한다고 해도 어려운 경제 상황 탓에 100조 원 조성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외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AI를 육성하는 나라 중에 우리보다 더 좋은 여건을 제시할 수 있는 나라가 너무 많다"며 "AI에 대한 투자 메시지는 반갑지만 계획을 정교하게 짜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AI 예산을 인재 발굴 및 육성에 집중해서 써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최영근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가 거대언어모델(LLM)이나 GPU 팜 조성에 개입한다면 이를 관리할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국가연구소를 만들어 선진국에서 공부한 인재들을 데려오고 국내 대기업 인재를 활용해 국가 AI 정책의 판을 다시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R&D 자금으로 예산이 투입될 경우 여러 중소기업에 수억 원 수준에 불과한 규모로 집행될 텐데 이 경우 결과물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성로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지금 AI에 대한 투자는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시점"이라며 "현재 우리나라의 최정예 인재들이 급격히 줄고 있어서 인재 육성에 집중해야 한다. 좋은 인재는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어쨌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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