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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포로수용소 공산 포로들, 소장을 인질로 잡다 [역사&오늘]

5월 7일, 거제도 포로 소요 사태 발생

거제도 포로수용소.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CC BY 4.0 <//creativecommons.org/licenses/by/4.0>,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52년 5월 7일, 한국전쟁 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대규모 소요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수용소 내 공산 포로들이 유엔군의 포로 정책에 불만을 품고 일으킨 사건으로, 한 달 넘게 지속되며 국제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사건의 발단은 이날 오전, 제76포로수용소에서 친공 포로들이 수용소장인 미국 육군 프랜시스 T. 도드 준장을 납치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도드 준장의 석방 조건으로 포로 처우 개선, 자유 송환 원칙 철회, 포로 심사 중단, 그리고 포로 대표단 인정 등을 내세웠다.

공산 포로들은 김일성, 마오쩌둥, 스탈린의 사진을 내걸고 혁명가를 부르며 조직적인 저항을 펼쳤다. 수용소 내부는 순식간에 무법천지로 변했고, 유엔군은 속수무책으로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도드 준장 납치 사건은 즉각 미국 제8군 사령관에게 보고됐고, 국제사회는 거제도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유엔군은 강경 진압을 준비했지만, 인질로 잡힌 도드 준장의 안전을 우려하여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결국, 유엔군은 포로들의 일부 요구를 수용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협상을 시도했고, 납치 4일 만인 5월 10일 저녁, 도드 준장은 석방됐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해결에 불과했으며, 수용소 내 친공 포로들의 불만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이후에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는 크고 작은 소요 사태가 끊이지 않았다. 공산 포로들은 유엔군의 포로 정책에 계속해서 반발하며 시위를 벌였고, 이는 반공 포로들과의 충돌로 이어지기도 했다. 결국, 유엔군은 6월 10일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여 무력으로 소요 사태를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105명의 반공 포로들이 공산 포로들에 의하여 살해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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