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의 흔적 그 자체도 회화다"…佛 실험미술 '쉬포르 쉬르파스'전
국내 최초 13인 전원의 작품 한자리에 소개
대구보건대 인당뮤지엄 8월 13일까지
- 김정한 기자
(대구=뉴스1) 김정한 기자
"'거친 표면'이라는 뜻처럼, 전통적인 회화의 틀을 해체하고 캔버스 자체, 재료, 그리고 그 행위와 물성을 중심으로 회화를 다시 생각하고자 했습니다."
1960~70년대 프랑스 현대미술사의 전환점이 되었던 실험적 회화 운동 '쉬포르 쉬르파스'(Supports/Surfaces)의 핵심 작품들이 한국 대구에 상륙했다. 이 운동에 참여했던 작가 13인의 작품들이 최초로 한자리에 모여 8월 13일까지 관객들을 맞이한다.
14일 대구보건대학교(총장 남성희) 인당뮤지엄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대구보건대학교 인당뮤지엄 김정 관장은 "이번 전시는 쉬포르 쉬르파스의 정신을 단순히 과거로 되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 예술가와 관람객에게 창작의 본질과 자유, 질문의 필요성을 다시 던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예술이 시대와 어떻게 호흡하는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장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기획전 1960~70년대 프랑스 사회의 혼란과 긴장, 저항의 정서 속에서 태어난 문화적 현상으로서의 '쉬포르 쉬르파스' 운동을 소개하는 자리다. 회화의 구조를 근본부터 해체하고 재정의한 이들의 철학과 창작 세계를 국내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소개한다.
전시장에서는 쉬포르 쉬르파스를 대표하는 13인의 작가 전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참여 작가는 앙드레 피에르 아르날, 뱅상 비올레스, 피에르 뷔라글리오, 루이 칸, 마크 드바드, 노엘 돌라, 다니엘 드죄즈, 토니 그랑, 베르나르 파제스, 장 피에르 팽스망, 파트릭 세투르, 앙드레 발랑시, 클로드 비알라 등이다. 이중 일부는 작고했으며, 남은 생애 동안에도 일관된 실험 정신을 유지한 이들의 삶 자체가 쉬포르 쉬르파스의 연장선이라 평가받고 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13인 중 막내 작가인 노엘 돌라는 쉬포르 쉬르파스가 프랑스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뜻밖에도 "예술은 패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기존의 낡고 형식적인 예술 관념과 제도를 거부하고 회화의 근본적인 요소를 재탐색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다시 열고자 하는 운동의 핵심 정신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노엘 돌라의 이 같은 발언은 1960년대 말 프랑스의 격동적인 사회 분위기, 특히 알제리 전쟁과 68혁명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맞닿아 있다. 즉, 쉬포르 쉬르파스 운동은 단순한 미술 실험이 아니라, 1960~70년대 프랑스 사회의 혼란과 긴장, 저항의 정서 속에서 태어난 문화적 현상이다.
쉬포르 쉬르파스 운동은 전통적인 회화의 틀을 부수고 재료, 행위, 물성을 중심으로 회화를 다시 생각하려는 시도였다. 따라서 '예술의 패배'라는 다소 극단적인 표현은 기존 예술에 대한 강한 비판 의식과 새로운 예술에 대한 열망이다. 새로운 시작점에서 회화의 본질을 다시 묻고 실험하는 것이 쉬포르 쉬르파스 운동의 중요한 핵심 목표였음을 시사한다.
전시장의 작품들은 기존의 틀(스트레처)에 고정된 캔버스를 해체하고, 물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작가들은 전통적 붓질이나 구상 회화의 규범에서 벗어나, 직조, 염색, 매듭, 접기 등의 수공예 기법을 통해 캔버스를 조형 요소로 전환한 모습을 보여준다.
작품들은 종종 제작 의도가 난해하고 단순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회화가 사회를 어떻게 반영하고 어떻게 질문할 수 있는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흐른다. 서구 예술사와 사상 전반을 넘나들며 회화를 비평적 예술 언어로 새롭게 구축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쉬포르 쉬르파스의 해체적인 감각과 물성 중심의 실험은 무엇보다도 작가의 의도보다는 행위의 흔적 자체가 회화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1970년대 한국의 실험 미술과도 교차하는 지점이 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쉬포르 쉬르파스의 시대정신을 오늘날 다양한 분야에서 해체와 실험이 진행 중인 한국 사회의 모습에 투영해 볼 수 있는 자리다.
관람객은 전통적인 회화에서 벗어나 재료와 행위, 그리고 그 흔적 자체로 존재하는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며 예술을 통해 우리 주변에 구축된 모든 사상과 제도를 스스로 되돌아보며 사고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해체를 통한 창조'는 그렇게 다시 현재진행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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