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세 헤다' 이혜영 "관객과 하나 돼 작품 만들 때 나이 문제 안 돼"
19일 연극 '헤다 가블러' 기자간담회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6월 1일까지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배우 이혜영이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이달 8일 개막한 국립극단(단장 겸 예술감독 박정희) 연극 '헤다 가블러'의 주인공 헤다 역을 13년 만에 다시 맡은 소감을 밝혔다.
19일 오후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이혜영은 "연습 한 회 한 회를 실제 공연이라고 생각하고 작품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는 "13년 전 김의경 연출에게 대학극으로 많이 공연된 '헤다 가블러'를 왜 이제야 기성 극단이 공연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동안 이혜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며 "그 말 때문에 헤다 역은 이혜영만이 한다는 착각을 하게 됐고, 지금도 그 착각을 방해하는 요인 없이 무대에 서고 있다"고 말했다.
13년 전에 비해 나이 든 것이 부담되느냐는 질문에는 "관객과 하나가 돼 작품을 만들 때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박정희 연출도 "연극이라는 것이 원래 나이를 초월해 보이도록 만드는 무대"라고 거들었다.
이혜영은 연극이 매력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일회성이기 때문"이라며 "매번 다른 톤의 연기로 다른 관객들과 함께 작품을 완성하는 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립극단은 2012년 '헤다 가블러' 초연 당시 전회차 전석 매진의 신화를 기록했다. '헤다' 역을 소화한 이혜영은 제5회 대한민국연극대상 여자 연기상, 제49회 동아연극상 여자 연기상의 영예를 안았다.
'헤다 가블러'는 '근대 연극의 아버지' 헨리크 입센이 1890년 발표한 희곡이다. 남편의 성인 '테스만'을 거부하고 아버지의 성이자 자신의 성인 '가블러'를 붙인 채 살아가는 여주인공 '헤다'를 앞세워, 남성의 부속품이 아닌 독립적인 여성의 주체를 과감히 천명하면서 남성 중심적 사회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국립극단이 '픽(Pick) 시리즈'로 선보이는 '헤다 가블러'는 다시 한번 관객에게 처절한 자유의지의 추락과 지독히 떨어지지 않는 파멸의 늪을 보여준다. 'Pick 시리즈'는 초연 이후 관객의 상연 요청이 지속적으로 쇄도한 작품을 재차 무대에 올려 정규 레퍼토리를 확장하는 신규 사업이다.
이번에 다시 돌아온 국립극단의 '헤다 가블러'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헤다'들에게 바치는 찬사다.
박정희 연출은 "현대 사회에서도 일체의 사회적 가치를 내면에서부터 해체하고자 하는 21세기판 헤다들은 존재한다"며 "보편적 가치라는 말로 개인을 구속하고 강요하는 구조주의의 최면이 여전히 작동하는 오늘날 헤다들에게 우리는, 그리고 사회는 어떤 손을 내밀 수 있는가를 질문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는 헤다를 여성 해방이나 여성의 서사가 아니다"며 "21세기의 헤다는 젠더를 초월한 한 인간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헤다 가블러'는 이혜영 외에도 홍선우(브라크 역), 고수희(율리아네스 테스만 역), 송인성(엘브스테 부인 역), 김명기(예르겐 테스만역 역), 김은우(에일레르트 뵈르보르그 역), 박은호(베르테 역) 등이 출연한다. 브라크역은 원래 윤상화 배우가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건강 악화로 인해 출연이 불가능해져 홍선우로 교체됐다. 이로 인해 개막일도 연기됐다.
이혜영은 "공연을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믿고 찾아주는 관객들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배우를 찾아 공연을 하게 됐다"며 "홍선우 배우도 이틀 만에 대사를 모두 외우는 열정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헤다 가블러'는 6월 1일까지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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