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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항거' 김주열 열사 시신, 11일 발견 하루 전 육군 특무대도 봤다

진실화해위 조사서 확인…특무대 '표류체 발견보고'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다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숨진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마산앞바다에서 발견돼 인양된 1960년 4월 11일 저녁 마산시민들이 집회에 나서 자유당 정권을 규탄하고 있다.(진실화해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창원=뉴스1) 박민석 기자 = 1960년 3월 15일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다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으면서 숨진 김주열 열사의 시신은 실종 27일만인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면서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10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따르면 김 열사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기 하루 전인 10일 육군 특무부대(현 방첩사령부)와 한 시민도 김주열 열사의 시신을 발견한 것으로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확인됐다.

진실화해위의 조사 보고서를 보면 1960년 4월 10일 마산에 주둔하던 육군특무부대 501부대에서 전화 통신문을 통해 '표류체 발견 보고' 제목의 정보보고가 들어왔다.

통신문에는 "4293.4.10. 1330경 마산시 중앙부두해변 표류시체 발견 보고. 장소로부터 200메타 남방지점에서 사후 20여일의 백색○○○○(판독불가) 운동사쓰를 착용한 학생으로 추측되는 남자 표류시체를 발견하였은 바 우측안부에 칼빙탄창형의 철물(부리기)이 박혀 있으며 두발은 5부정도로서 타살시체로 인정되면 3.15소요사건에 행방○○○○(판독불가) 하겠읍니다"라고 적혀 있다.

진실화해위는 "특무부대는 4월 10일 김주열 추정 시신을 보고 받았지만 이에 대해 추가적인 전화 통신문이나 관계당국의 움직임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타 사건으로 3.15 의거 진실규명을 신청한 A씨는 "1960년 4월 10일 오후 7시경 마산중앙부두에서 무슨 물체가 보여 바다에 들어가 그 물체를 찔러보니 둥그런 사람 형태의 옆구리를 찌른 느낌이었다"고 진실화해위에 진술했다.

결국 김주열 열사의 시신은 다음날인 1960년 4월 11일 오전 10시 30분 무렵 마산 앞바다에 다시 떠오르면서 다수의 시민들에게 목격됐고 3.15 2차 항거와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진실화해위 3.15의거과 관계자는 "전문가들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바다에서는 시신이 20여일 뒤면 떠오른다고 한다"며 "여기에 조수 간만의 차로 시신이 발견되기 전까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내려갔던 것으로 추정돼 더 앞선 시기에 시신을 목격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시 육군 특무대 보고에서 김주열 열사의 인상착의를 가진 시신이 발견됐지만, 보고 이후 어떤 조치를 했는지, 시신이 사라진 것인지 후속 기록이 전혀 없어 확인이 어렵다"며 "김주열 열사의 시신은 4월 11일 오전에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돼 인양됐고, 김 열사의 이모가 신원을 확인했다"며 "이 때문에 최초 발견을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는 11일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인양됐던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포동 창원김주열열사시신인양지(옛 마산중앙부두) 앞에서 4.11 민주항쟁 기념식과 김주열 열사 추모식을 연다.

한편 진실화해위는 5월 26일을 끝으로 2기 조사를 마무리한다. 이후 6개월간 종합보고서를 작성한 후 11월 위원회 활동을 종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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