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티카지노

"'일본은 사죄하라' 이옥선 할머니 외침, 사후에라도 이뤄지길"

광주 남구 양림동 평화의 소녀상 앞서 추모식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이옥선 할머니를 형상화한 광주 남구 양림동 평화의 소녀상에서 12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을 비롯한 광주 남구 공직자들이 추모하고 있다. 2025.5.12/뉴스1 ⓒ News1 최성국 기자

(광주=뉴스1) 최성국 기자

"'일본은 사죄하라'는 할머니의 외침이 사후에서라도 반드시 이뤄지길 바랍니다."

12일 낮 12시 30분쯤 광주 남구 양림동 펭귄마을에 있는 '평화의소녀상'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를 기리는 추모식이 엄수됐다.

이 평화의소녀상의 주인공은 이옥선 할머니다. 제작 당시(2017년 8월) 92세였던 이옥선 할머니가 꽃다운 16세 소녀시절의 어깨에 손을 올려두고 있다.

과거의 소녀와 현재의 할머니가 한 장소에 있음으로써 과거와 현재는 서로 분리될 수 없고 연결돼 있다는 의미를 담아 이이남 작가가 제작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 이옥선 할머니의 모습을 담아 제작된 광주 남구 평화의소녀상. 2025.5.12/뉴스1 최성국 기자

이 할머니는 1927년 부산에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이 할머니는 어릴 때부터 공부 욕심이 많았으나 집안 형편 때문에 공부할 수 없었다. 집안일을 하며 동생들을 돌보던 그는 심부름하러 나간 길에서 건장한 남자 2명에게 무작정 납치돼 1942년 7월 중국으로 끌려갔다.

연길에는 일본군 비행부대가 있었고 할머니는 그곳에서 일본군 성노예 피해를 강요당했다. 이 할머니는 1945년 해방 사실을 듣고도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이 할머니는 "당시 일본군에게 반항할 때마다 온갖 폭행을 당하면서 몸에 새겨진 칼자국들을 볼 때마다 서러운 생각이 든다"고 증언했다.

그는 가족들의 사망신고로 귀국 이후 1년 반만에야 국적을 취득했다. 2001년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된 이 할머니는 이후 수요시위, 해외 증언 등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왔다.

그러나 이 할머니는 그토록 열심히 외쳤던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듣지 못하고 지난 11일 오후 8시 경기 성남지역의 한 요양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7세.

매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날(8월 14일)이면 이 평화의소녀상 앞에 모여 피해자들을 기렸던 시민들과 시민사회단체, 광주 남구의회 의원들은 이날 추모식에서 소녀상 앞에 헌화와 묵념을 올리는 것으로 이 할머니의 영면을 기원했다.

이날 추도사를 올린 장헌권 목사는 "위안부 피해자와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한분한분 돌아가실 때마다 마음이 미어진다"며 "지금이라도 정부가 역사 정의를 세우고 일제강점기의 한을 풀어주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윤석열 정부는 일제 피해자들을 오히려 일본 앞에 무릎 꿇리는 역사 반역을 자행했다"며 "이제는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가 6명밖에 남지 않았다. 한평생 일본 정부의 사죄를 듣고자 했던 이 할머니의 못다한 외침이 사후에라도 반드시 이뤄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stare@dqdt.shop

바오슬롯 프리미어카지노 소닉카지노 산타카지노 토르카지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