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동화 들려줄 때 오히려 더 살아 있는 것 같아요"
[지방지킴] 부천 김부임 할머니, 동화로 전하는 순수한 사랑
72세에 시작한 두 번째 봄…"아이들 눈빛이 저를 살게 했어요"
- 정진욱 기자
(부천=뉴스1) 정진욱 기자 = "어느 날은요. 울던 아이가 제 무릎에 기대어 조용히 동화를 듣더니 끝나자마자 웃으며 안기더라고요. 그 순간 제 마음에도 햇살이 들었어요."
경기 부천시 오정구 원종동에 사는 김부임 씨(72)는 매주 어린이집에서 동화책을 펼친다. 하지만 그가 전하는 건 단지 이야기만이 아니다. 아이들을 향한 따뜻한 눈빛과 다정한 말투, 조심스러운 손짓과 사랑, 그리고 위로와 용기가 담긴 '시간'을 건넨다.
11일 부천시에 따르면 김 씨는 부천시오정노인복지관이 운영하는 '동그라미 선생님'이다. 은퇴 후 무료함과 허무함 속에서 건강도 흔들리던 어느 날 복지관의 한 강좌가 그의 마음을 붙잡았다.
'동화구연'. 아이들을 좋아하던 김 씨는 운명처럼 이 수업을 시작했고 곧 아이들 앞에 선 자신을 발견했다.
김 씨는 뉴스1 취재진에게 "마음은 여전히 어린아이 같아서 그런지 동화구연이 저한테 꼭 맞더라고요.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줄 때면 제가 오히려 더 살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는 처음엔 단순히 책을 읽는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문장을 어떻게 말할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손동작은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집중할지를 고민하는 과정은 절대 단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정성껏 준비했다. 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그 수고가 행복으로 바뀌는 순간을 수없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어느 날 울고 있던 아이의 코를 조심스럽게 닦아주고 '괜찮아, 할머니가 호~ 해줄게' 했더니 그 아이가 웃으며 절 꼭 안았어요. 그 순간 제 마음도 따뜻해졌다"고 말했다.
김 씨는 아이들을 '우리의 보물'이라 표현한다. 그는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엔 아이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누구의 아이가 아니라, 모두의 아이죠. 우리가 더 많이 안아주고 말 걸어주고 바라봐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동화 한 권도 함부로 고르지 않는다. 메시지가 따뜻하고 감성을 자극하는지를 꼼꼼히 살핀다. 목소리와 손짓 하나에도 마음을 담는다. 그렇게 시작된 동화 시간이 아이들의 마음을 열고 때론 말 못 할 상처를 다독이기도 한다고 말한다.
김 씨는 "신학기 초엔 낯을 가리고 울기만 하던 아이가 몇 주 만에 손 유희 시간에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들어요. 아이가 웃으면 저도 웃고, 아이가 힘을 내면 저도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씨가 속한 '동그라미 선생님' 사업은 2023년 시작한 노인 일자리 프로그램이다. 동화구연을 통해 세대 간 정서 교류를 도모하고 어르신에게는 사회참여의 기쁨을 아이들에겐 따뜻한 감성을 전하는 활동이다.
지금까지 21명의 노인 강사가 활동했고 98개 기관에서 아이들과 만났다. 김 씨는 올해 활동 중인 5명의 동그라미 선생님 중 한 명이다.
그는 끝으로 "이 활동은 단지 일자리가 아니에요. 제게는 살아가는 이유이자 선물이에요"이라며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복지관 관장님과 직원분들 그리고 함께 고생하는 동료 선생님들께 마음 깊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내일도 아이들 만날 생각에 벌써 마음이 설렌다"며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저는 아직도 매일매일 아이들과 함께 자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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