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 누명 벗으려 한국전쟁 참전…76년만에 억울함 푼 92세 노인
강택심씨, 4·3 희생자 미결정 일반재판 수형인 첫 직권재심서 무죄
- 강승남 기자
(경기=뉴스1) 강승남 기자 = "죽기 전에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했다"
경기도 고양시에 거주하는 강택심 씨(92).
제주에서 태어난 강 씨는 중학교 재학시절 제주 4·3사건으로 휴교령이 내려지자 외갓집에서 지냈다.
그런데 누군가 A 씨에 대해 "빨갱이에게 뭘 줬다"고 밀고했다.
당시 16세의 어린 나이였다.
경찰은 강 씨에게 "일본군이 버리고 간 총알을 빨갱이에게 줬다" "민청에 가입했다"고 자백을 강요했다.
강 씨는 무서웠다. '그런 일 한 적 없다. 억울하다'고 호소했지만 돌아온 건 혹독한 매질이었다.
그러기를 3개월. 강 씨는 고문을 못 이겨, 또 살기 위해 허위 자백을 했다. 그의 어머니 역시 '산간 폭도를 도와줬다'는 밀고에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결국 강 씨는 지난 1949년 4월 30일 제주지법에서 법령 제19호 위반 혐의 등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A 씨의 죄명은 내란방조죄.
그 어떤 증거도, 제대로 된 재판도 없었다.
어렵게 풀려나긴 했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1년 간 고생했다.
겨우 몸을 추스린 강 씨는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국군에 자원 입대했다. 고작 18살. 자신이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치열하게 전투에 참전, 다리를 크게 다치는 부상을 입었다.
제주로 돌아왔지만, 농사도 제대로 지을 수 없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지만, 신원조회에서 번번히 탈락했다. 4·3 전과자라는 딱지가 발목을 잡았다.
강 씨는 고향 제주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다시는 제주라는 단어를 꺼낼 일도 없을 줄 알았다.
억울함과 고통을 76년간 가슴에만 담고 살아 온 강 씨는 22일 누명을 벗고 명예를 회복했다.
이 과정엔 제주4·3사건 합동수행단과 제주지법, 사법연수원의 도움이 컸다.
강 씨의 경우 현재 4·3희생자 미결정자로 '제주4·3특별법'이 아닌 형사소송법에 근거해 재심이 청구된 사례다. 합동수행단은 강 씨에 대한 자료를 분석해 직권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강 씨의 나이와 건강상태 등을 고려해 강 씨의 거주지에서 재심을 열기로 했다.
사법연수원은 국민의 재판을 받을 권리 보장을 위해 모의법정을 원외공판장으로 허가했다.
이날 강 씨는 가족 등의 부축을 받으며 한발 한발 어려운 걸음을 떼며 법정으로 들어섰다.
제주 4·3사건 전담재판부인 제주지법 제4형사부(부장판사 노현미)는 강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노 부장판사는 "불법 구금과 고문 등 가혹행위가 있었다"며 "공소사실 입증은 검사에게 책임이 있는데, 어떤 증거도 제출되지 않아. 피고인(강 씨)에 대한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노 부장판사는 "16살 소년으로 고초를 겪었다. 고통과 두려움, 피맺힌 억울함을 가늠하기 어렵다"며 "꽃다운 소년이 90세가 넘도록 잘못을 바로 잡는데 통한의 세월이 흘렀다. 마음 깊이 위로를 전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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