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옛 청풍대교, 속이 텅 빈 다리였다…150m 비밀공간 발견
김영환 지사 "낭만 미술관 추진"…다리 '위·아래' 개발 더 위험 우려
- 손도언 기자
(제천=뉴스1) 손도언 기자 =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에 위치한 옛 청풍대교 몸통 안에서 거대한 '비밀 공간'이 발견됐다.
안 그래도 위험한 다리인데, 다리 속까지 텅텅 비어 있어 옛 청풍대교는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김영환 충북지사가 안전은 뒤로한 채, 텅 빈 비밀 공간을 '세계에서 하나뿐인 미술관으로 사용될 수 있다'며 미술관 활용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뱀처럼 휘어서 가뜩이나 위험한 다리인데, 김 지사가 다리 '위와 내부 공간'까지 활용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미술관이 실제로 추진된다면 현실적이지 않고, 실효성 없는 정책이란 비판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청풍대교는 1985년 준공돼 40년 된 교량이다. 이런 점에서 비밀공간도 40년 전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 지사는 지난해 12월 중순쯤 옛 청풍대교를 찾아 다리 상판 위 맨홀 뚜껑을 열고 비밀 공간으로 들어갔다.
비밀 공간을 둘러본 그는 자신의 SNS에서 공간 입구로 들어가는 모습 등의 사진과 관련 글을 올렸다. 옛 청풍대교의 비밀공간이 김 지사에 의해 처음 공개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지사는 글을 통해 "청풍대교는 레이크파크 르네상스의 최고 명소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이 다리 밑에 이런 벙커(거대 비밀공간)가 있다니 놀랍고 기쁜 마음이 들어 이곳에 들어가 봤다. 당장 이 공간은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미술관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썼다.
김 지사의 구상대로 다리 속 비밀 공간에서 실제로 미술관으로 활용될 수 있을까. 뉴스1 취재팀은 지난 24일 오후 옛 청풍대교 비밀 공간을 찾아 현재 상황 등을 살펴봤다.
취재 결과 미술관으로 활용되기엔 부적절해 보였다.
대교 몸통 속 비밀 공간은 길이 150m가량, 폭 4m가량, 높이 1m 50cm~2m가량이다.
170cm 신장의 취재진은 입구부터 약 30m가량을 고개를 숙여 들어가야만 했다. 30m 이후부터 조금씩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약 80m가량 내부로 들어갔더니, 가로·세로 60cm 크기의 작은 입구가 나왔는데 허리를 반쯤 굽히고 통과해야만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작은 입구를 지나면서 70m가량의 또 다른 큰 공간이 펼쳐졌다. 이 공간에선 움직임이 자유로웠다. 전체 100여 명이 거닐 수 있을 정도의 넓은 공간이다.
전체 구조는 작은 입구(80m가량)를 중간에 두고, 양쪽에 큰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비좁은 내부는 빛이 없어 컴컴했고 특유의 시멘트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밖은 영하권이지만 실내온도는 영상권이었고, 축축할 정도는 아니지만 약간의 습한 기운이 감돌았다.
사실상 대교 몸통 속에 미술관을 조성한다는 건 '부적합'으로 보였다.
먼저 대교 초입엔 가로 55㎝ 세로 70㎝ 크기의 비밀공간 작은 출입구는 도로의 맨홀 뚜껑으로 들어가는 것과 흡사하다. 내부 벽면에는 빗물 수로 등 이름 모를 여러 관이 길게 지나갔다.
미술관으로 새롭게 탄생하려면 한사람이 겨우 들어갈 출입구를 크게 넓혀야 하고, 내부 벽면의 여러 관도 모두 제거해야 한다. 특히 다리 상판을 지탱해 줄, 중간 벽면(길이 70m 지점)도 모두 없애야 하는 상황이 된다.
김 지사가 안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낭만 미술관이라는 소모성 논쟁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옛 청풍대교는 최근 정밀진단 용역에서 '종합 D등급'을 받았다. 안전 우려가 높은 다리라는 얘기다.
2년여 전인 2023년 4월 1일 2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 성남시 '분당 정자교 붕괴 사고'는 'C등급' 상황에서 발생했는데, 청풍대교는 최근 안전진단 평가에서 '종합 D등급'을 받았다.
등급으로 따지면 청풍대교는 정자교보다 더 위험한 수준인 셈이지만 김 지사는 위험천만한 텅텅 빈 다리 몸통 속에서 미술관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시민 A 씨(53·제천시)는 "미술관 그림들은 습한 것에 매우 민감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하필 습하고 컴컴한 다리 몸통 안에서 미술관을 시도하는 이유는 뭐냐"라며 "낭만 미술관이 먼저인가, 아니면 안전한 시민들이 먼저인가, 도지사는 이런 점을 꼭 알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제천시 한 관계자는 "옛 청풍대교에 비밀스러운 공간이 있는 줄 꿈에도 몰랐다"며 "미술관으로 활용된다면 결국 다리 위에서, 다리 속에서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인데 청풍대교가 견뎌낼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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