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 무심코 현수막·벽보 손댔다간 '당신도 전과자 신세'
정당한 이유 없이 훼손·철거하면 징역 또는 벌금형
- 박건영 기자
(청주=뉴스1) 박건영 기자 = 2022년 5월 충북의 한 자영업자 A 씨는 자신의 가게 앞에 설치된 현수막이 눈에 거슬렸다. 가뜩이나 장사도 되지 않는데 현수막이 가게 간판까지 가려 손님들의 발길이 더 뜸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날 밤 A 씨는 영업을 마치자마자 눈엣가시였던 현수막을 가위로 잘라 떼어냈다.
그런데 며칠 뒤 경찰로부터 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가게 앞에 설치된 현수막이 같은해 6월 예정된 지방선거 출마 후보자의 선거 현수막이었는데, A 씨가 이 현수막을 무단으로 철거해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그는 조사 과정에서 선거 현수막을 철거하면 안 되는 줄 몰랐다고 항변했지만, 결국 재판에 넘겨져 벌금 50만 원을 선고받았다.
선거철만 되면 A 씨처럼 선거 현수막이나 벽보를 무심코 손을 댔다가 처벌을 받게 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현수막과 벽보를 훼손하는 일이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는 행위인 줄 몰랐다거나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고 주장하더라도 처벌을 피하기는 어렵다.
충북경찰청에 따르면 2022년 실시된 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현수막·벽보를 훼손하거나 철거해 검찰에 넘겨진 사례는 10건이다. 그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송치된 전체 건수(17건)의 58%를 차지한다.
지난해 치러진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5건이 적발돼 검찰에 넘겨졌다.
2022년 2월 B 씨는 충북 제천의 한 길거리에 붙어있던 대선 후보자의 선거 벽보를 지팡이로 내리쳐 찢은 혐의로 벌금 50만 원을 선고받았다. B 씨는 당시 해당 후보가 TV토론회에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선거 벽보를 훼손했다.
비슷한 시기 C 씨도 대선 후보자의 공약이 말이 되지 않는다며 제천의 한 교회 앞에 부착된 대선 후보의 선거 벽보를 담뱃불로 지졌다가 50만 원의 벌금형에 처했다.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지 않았더라도 처벌될 수 있다.
2022년 3월 D 씨는 청주시 서원구 일대 담벼락에 붙은 특정 대선 후보자의 선거 벽보 6장을 떼어내 집으로 가져갔다.
D 씨는 법정에서 "후보의 선거 벽보를 소장하고 싶어서 그랬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정치적 의도는 없었다고 판단해 벌금형의 선고를 유예해 줬다.
2022년 2월 E 씨는 불법 현수막 보상금을 수령할 목적으로 청주 육거리종합시장 앞에 설치된 대선 후보자의 현수막을 철거했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선거 현수막인 줄 몰랐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1·2심 재판부는 당시 현수막 끈이 반쯤 풀려 있던 상태여서 E 씨가 선거 현수막임을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를 선고받긴 했지만, 하마터면 용돈벌이하려다 선거사범이 될 수도 있었다.
충북선관위 관계자는 "선거 홍보물을 훼손하는 것은 유권자의 알 권리와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는 행위로 처벌될 수 있다"며 "선거 현수막·벽보로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겪는 경우 선관위에 문의하면 된다"고 당부했다.
공직선거법상 정당한 사유 없이 선거 벽보와 현수막 등 홍보물을 훼손하거나 철거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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