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체험 VR 필요하다"…탈북민들이 원하는 미래 기술은?
한국사람이 北 일상 직접 경험·북한에서의 기억 보존 기술 등
탈북민 겪는 디지털 격차 커…포괄적 교육 프로그램 지원 필요
- 유민주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이 한국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미래 과학 기술은 무엇일까.
미국 컴퓨터학회(ACM, 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 데이터베이스(DB)는 지난달 25일 논문 '국경을 연결하고 편견을 깨기: 기술을 구상하다-남한 내 북한이탈주민 지원'(Bridging Borders, Breaking Biases: Envisioning Technologies to Support North Korean Defectors in South Korea)을 게재했다.
논문은 한국에서 적게는 3년 최장 20년 동안 생활한 22명의 탈북민을 대상으로 진행된 8번의 '추측성 공동 창작 세션'(speculative co-creation sessions)을 통해 이들이 직면한 정체성 낙인, 과거와의 단절, 그리고 고도로 디지털화된 사회 적응의 어려움 등에 도입할 기술 방안을 모색했다.
그 결과 참가자들이 궁극적으로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 △만연한 편견과 낙인 극복 △과거와의 단절을 조화롭게 만들기 △한국 사회의 자립 실현 등 요구사항을 3가지로 분류해 총 12가지 기술을 그래픽으로 설명했다.
'한국인을 내 집으로 데려오다'라는 제목의 그래픽은 한국 사람들이 북한의 일상생활을 직접 경험하는 기술에 대한 열망을 표현했다. 그래픽은 흡사 가상현실(VR) 기기를 통해 북한의 거리와 주민들을 보는 장면을 담았다. 일상생활을 묘사하는 것은 과거와 정체성을 가장 진실되게 드러내고 낙인을 줄이는 방법이다.
연구에 참가한 탈북민들은 "북한은 정치적 전장이라기보다는 소중한 고향이며, 탈북의 이유와 관계없이 고향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있다"는 공통된 의견을 냈다고 한다. 탈북민 A 씨는 어린 시절 시골의 집과 마을을 가상으로 재건하고 그 생생한 경험을 한국의 가까운 친구나 새로 정착한 가족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했다.
'북한에서의 차별 경험'과 '북한 이탈 여정 경험'을 한국 사람들도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탈북민 B 씨는 "사람들이 직접 경험하게 되면 관점이 바뀔 수 있다"며 "이러한 경험을 통해 조금 더 진지하게 느낄 수도 있고, 탈북민들의 삶의 부담과 어려움의 무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북한에서의 기억을 보존하는 기술에 대한 의견도 있었다. 이들은 사진과 비디오를 사용해 자신의 기억을 재구성하고 원하는 대로 과거와 상호 작용할 수 있는 기술과 북한의 기억을 정확하게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탈북민들은 탈북 과정에서 고향과 관련된 물건을 가지고 다니면 정보 노출의 위험이 있다. 실제로 참가자 중 아무도 가족사진을 가져온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래픽으로 구현한 '메모리 아카이브'는 기억을 말로 기록하고, 그 기록이 이야기된 대로 정확하게 저장되어 쉽게 검색할 수 있는 '기억책' 장치를 구현한 결과물이다.
아울러 논문은 이번 연구로 탈북민들이 디지털 격차를 극복하는 데 지금보다 포괄적인 디지털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국에 도착하면 탈북민들은 재정착 센터인 하나원에서 의무적으로 이메일 작성 등의 기본적인 디지털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이후 문제에 직면할 때 종종 정부 직원과 자원봉사자의 제한된 네트워크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할 때 당혹감을 느낀다고 한다.
논문은 "기술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우리의 연구는 미래의 기술적 개입이 인생의 중요한 전환기를 겪고 있는 소외된 개인, 특히 낙인을 극복하고 디지털로 진보된 사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개인을 어떻게 더 잘 지원할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며 연구의 목적을 거듭 강조했다.
해당 논문은 옥스퍼드 대학교 컴퓨터 과학과 노하윤 씨, 연세대학교 소속 조현아 씨와 강윤아 씨 등 5명이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이들은 지난해 5월에도 '탈북민들이 디지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에 대한 논문을 작성한 바 있다.
이들은 탈북민들이 고도로 연결된 남한의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는 정체성의 재구성이 상당하다고 짚으며 신규 이주민들의 디지털 환경 적응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도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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