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미래칼럼] 20대의 눈으로 보는 젠더 갈등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한다. 어쩌면 당연한 게 지금까지 대한민국 사회의 갈등의 두 축은 보수와 진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친구 사이더라도 정치적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라는 말이 일종의 격언처럼 자리 잡았다.
그러나 내가 체감하기에는 20대에게 있어 젠더 갈등은 정치 성향보다도 훨씬 금기시되는 대화 주제인 것 같다. 그렇기에 이 주제를 고르기까지 수많은 고뇌가 있었다. 내 이름과 얼굴을 밝히며 2030에게 제일 민감한 소재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 사회적 매장을 초래한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개 대학생에게 이토록 민감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자리는 쉽게 주어지지 않기에, 용기를 내서 젠더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이유와 젠더 갈등의 양상에 대한 나의 생각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젠더 갈등의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젠더 갈등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해결해야 한다. 젠더 갈등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면, 젠더갈등의 해결책을 찾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직도 젠더 갈등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지 못하였다는 점이 젠더 갈등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 칼럼을 작성하기에 앞서 기존의 연구가 젠더 갈등에 대해 어떤 해결책을 내놓았는지 알아보고자 국내의 수많은 선행 연구를 찾아보았다. 찾아본 결과 연구마다 젠더 갈등에 대한 정의가 제각기 달라서 연속성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정의의 중요성은 ‘미소지니(Misogyny)’라는 단어와 관련된 논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미소지니는 '여성에 대한 혐오, 경멸, 혹은 뿌리 깊은 편견'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그렇기에 여성을 단순히 혐오하는 것 외에도 ‘여성은 여리기 때문에 남성이 보호해 주어야 한다’와 같이 여성에 대한 편견을 기반으로 타자화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여성학계는 미소지니의 번역어로서 '여성혐오'라는 표현을 일관되게 쓰고 있다. 물론 미소지니의 한 측면에 혐오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소지니를 모두 여성 혐오라고 표현한다면 오해를 살 만한 명백한 오역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미 기성 세대와 일부 남성은 이에 대해 충분히 오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여성의 입장에서는 미소지니를 겪고 있기에 이를 여성혐오를 느낀다고 표현하는 것이고, 남성의 입장에서는 혐오한 적이 없기 때문에 여성 혐오를 한 적 없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이렇게 정의에 대한 불분명은 남녀 갈등을 촉발한다.
이처럼 여성혐오라는 정의에 대한 이해가 동일하지 않으면, 논의를 시작할 수도 없다. 무엇이 젠더 갈등인지 정의 내리지도 못하였는데, 이를 분석하려 하니 제각기 너무도 다른 연구 결과를 내놓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렇기에 젠더 갈등에 대한 합의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로 젠더 이념 집단(e.g. 메갈리아, 남성연대 등)에 대한 비판이나 혐오도 젠더 갈등에 포함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를 논의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혐오와 비판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e.g. 남성만을 징병하는 제도에 대한 비판은 사회적으로 논의해 볼만한 주제다. 반면 여성 전체에 대한 비하 표현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는 혐오적 표현이다)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나는 페미니즘과 같이 성평등을 이루기 위해서 어느 젠더에 더 많은 사회적 배려가 가야 하는가에 대한 견해를 ‘젠더 이념’라고 하면, 이는 경제적 관점의 기성 정치 이념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기성 정치 이념은 주로 '부의 분배'에 관해 좌파와 우파가 싸웠다고 한다면, 젠더 이념은 '사회적 배려의 분배'를 두고서 여성주의와 남성주의가 다투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을 받아들인다면 젠더 갈등에 대해 정치학적 접근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정체성 이론에 따르면 특정한 개인이 사회정체성을 가지게 된다면, 그 사회적 정체성으로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분한다고 한다. 그러면 내집단에는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는 반면 외집단에는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이 ‘정서적 양극화(affective polarization)’를 초래하는 두 가지 요소라고 보는 이론이다. 상대 당이 하는 정책은 잘못되었다고 하다가, 자신의 당이 똑같은 정책을 밀어붙일 땐 좋은 정책이라고 하는 ‘내로남불’이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젠더 이념’이라는 사회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정서적 양극화와 연관 지어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젠더 갈등의 본질은 사회적 배려의 분배를 두고 여성주의와 남성주의의 정서적 갈등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재학생임을 증명하여야 글을 작성할 수 있는 SNS인 '에브리타임'에서 총 5개의 키워드(여성혐오, 여혐, 남성혐오, 남혐, 페미니즘)가 포함된 게시물 중 한양대학교 재학생 수의 0.1%에 해당하는 24개 이상의 추천 수를 받은 게시물을 전부 읽어보았다. 어디까지가 혐오이고 비난인지 딱 잘라 논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선행 연구에서 제기된 우려와는 달리 대부분의 게시물은 여성 집단 전체에 대한 혐오가 아닌 페미니스트에 대한 비난이 더 많았다. 또한 여성에 대한 글도 혐오성 게시글보다는 여성이 더 많은 배려를 받고 있다는 투의 게시글이 더 많았다. 한편 남성주의와 여성주의 모두 내집단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거나 쉬쉬하는 반면, 외집단의 문제에 대해서는 대대적으로 공론화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제한적인 사례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전형적인 정서적 양극화 현상의 양상이라는 점에서 젠더 갈등에 대한 정치학적 접근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리고 여성주의자 혹은 남성주의자의 양면성에 대해 일부 학생은 일침을 가하기도 할 만큼 정서적 양극화의 양상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젠더 갈등의 시급한 해결이 필요함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젠더 이념 갈등의 해결이 지지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이 논의가 인터넷에서만 진행된다는 점이다. 사회적 배려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지가 남녀가 서로 싸우는 가장 큰 주된 이유인데, 정작 20대가 젠더 이념에 대한 각각의 입장을 공유하고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 보며 양측 모두 동의하는 교집합을 만들기 위한 공론장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대한민국의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중 20대는 단 한 명도 없다. 이는 20대의 현안에 관심을 가지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는 노력을 할 사람이 없다는 말과 같다. 모든 국민을 대표해야 할 국회마저도 20대 남성과 여성의 갈등은 다른 현안들 뒤로 미루고 20대가 주장을 펼칠 공적인 장소나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그로 인해 20대는 인터넷과 같은 사적인 장소에서 제한적으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근본적인 해결에는 미치지 못한 채 남녀 간의 감정 싸움만 지속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날이 격화되는 남녀 갈등에는 기성 세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정서적 양극화에 있어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내집단과 외집단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너무도 낙관적인 이야기지만 남녀가 서로를 다른 존재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이해와 공감을 할 수만 있다면 어렵지 않게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20대는 아직 어리고 상대방을 충분히 이해할 만큼 경험도, 여유도 없다. 즉, 20대의 젠더 개념은 주로 가정과 학교의 제한된 사회에서 습득하거나 경험한 것으로 실제 사회를 그대로 인식하거나 반영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 또한 현재 하기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거라는 심적인 부담감을 안은 채 지금 당장 눈앞의 학업이나 생계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해야 하는 20대가 스스로 젠더 이념 갈등에 대한 공론장을 만들고 양측에 대한 이해를 좁혀가는 모습은 ‘이데아’일 뿐이다.
그렇기에 더욱더 기성 세대가 이른바 이대남과 이대녀를 위한 논의와 화해의 장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인터넷 밖으로 20대를 끌어내고 서로 얼굴을 맞대고 치열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비록 최초 공론장에서 동의하는 것이라고는 ‘Agree to disagree’ 뿐일지라도. 그렇게 공론장이 20대의 일상 영역으로 들어오면 20대 남성과 여성이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결국 그들의 내집단과 외집단의 경계가 희미해질 것이다.
20대 젠더 이념 갈등에 대한 공론장 마련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여러 굴곡에도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한 ‘어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젠더 갈등을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어른에게 이 글이 닿기를 소망한다.
/현지혁 24년도 국회미래연구원 청년미래위원
※청년미래읽기 칼럼의 내용은 국회미래연구원 청년미래위원들의 원고로 작성됐으며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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