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대선에 휩쓸린 삼권분립

(서울=뉴스1) 최경환 정치부 부국장 =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라는 뜻이다. 군주제나 과두제와 반대 개념이다. 한자어로 번역하면서 '주의'라는 말이 들어가는 바람에 우리는 이것을 '이념'으로 생각하지만 민주주의는 '제도'다. 절차를 잘 따르는 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법이다.
민주주의가 이념이 된 것은 우리 현대사의 경험 때문이다. 독재권력이 민주주의의 절차를 무시하는 시대가 있었다. 그때마다 민주적 절차를 지키라는 외침은 이념이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시위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가 정치 구호가 된 것도 우리 역사의 맥락에서는 익숙하다.
근대 국가의 헌법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 낸 절묘한 권력 설계가 '삼권분립'이다. 권력기관이 서로 견제하도록 해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함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헌법의 삼권분립이 '시스템 위기'를 맞고 있다. 입법·사법·행정, 3대 권력이 모두 대선판에 휩쓸리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대통령 파면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치르는 대선에서 오히려 '삼권 충돌'의 단초가 열리고 있다.
입법권을 장악하고 있는 170석의 더불어민주당이 대통령 권력과 충돌한 것이 지난겨울의 비상계엄 사태다. 대통령이 탄핵 후 파면됐으니 입법권의 견제력이 발휘됐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일 대선을 33일 앞두고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대법원이 이재명 민주당 후보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에서 유죄취지로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이 판결 자체가 정치적인가는 별론으로 하고, 결과적으로 대법원은 대선판에 핵심 주체로 등장했다. 명분은 정확한 정보를 줘 유권자들이 선택을 잘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패닉에 가까운 모습이다. 이번에는 대법원장을 탄핵할 태세다. 고등법원이 이례적 속도전으로 이 후보에 대한 후보자격 상실형을 선고하면 대법원이 즉각 상고를 기각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당내에서 거론된다. 상고이유서를 제출할 기간 20일을 보장하지 않았다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 결정이 무효인지 아닌지는 대법원이 결정한다. 사법 시스템 내에서는 아무도 시비를 걸 수 없다. 오직 대법원 자신만이 자신의 오류를 수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나리오가 실행되면 이 후보는 피선거권을 잃고 민주당 대선후보는 사라진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것을 막기 위해 조희대 대법원장을 탄핵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고법이 이 후보의 피선거권 상실형을 선고할 즈음에 대법 선고를 중단시킬 행동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지금 시점에서 이번 대선 '경우의 수'는 세 가지밖에 없다. 이재명 후보가 출마를 못하게 되는 상황, 대법원장이 사상 초유의 탄핵을 당하고 이 후보가 권력을 잡는 상황, 역풍이 불어 보수후보가 당선되는 상황.
그 어떤 결론이든 대선 후 대한민국은 혼돈의 시대로 접어들 것이다. 새 대통령을 뽑은 이후에도 극단적인 대결의 정치시대가 5년 더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협치 회복은 기대할 수도 없고,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가장 힘든 건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서민들이다.
권력의 세 주체는 이제라도 민주주의 기본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앞서 말했듯 민주주의는 이념이 아니라 절차다. 지난겨울 이후 대한민국은 입법·사법·행정, 3대 권력이 자신이 갖고 있는 권력의 최대치를 행사하며 끝장 대결을 벌이고 있다. 금도와 절제는 찾아볼 수 없다. 최종 결정권자들의 싸움에서 절차는 뒷전이다. 그들 위에 아무도 없기 때문에 절차를 문제 삼아 제어할 수도 없다.
사법부는 형사소송법 절차를 철저히 따를 것을 국민에게 공표해야 한다. 통상적인 판결의 절차를 지켜 정치적 의도가 없음을 보여주길 바란다. 민주당도 대법원장 탄핵이라는 통상적 범위를 벗어난 입법권 남용을 멈춰야 한다. '대대대행 체제'인 행정부는 중립적 선거관리로 국민 불안을 달래야 한다.
다음 대통령이 좌우 모두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아 출발하지 않는다면 대선이 끝나도 탄핵 이후 빚어진 혼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있는 3부의 최고 권력집행자들이 모두 이성을 찾아야 한다. 권력자들의 폭주로 국민이 불행해지는 역사가 되풀이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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