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대국민 사과 직후 계엄 논의…"저 믿으시죠" 다음 날 계엄 선포
공소장으로 본 계엄 전후 사정… 작년 초부터 계엄 염두 정황
- 한상희 기자, 김정률 기자
(서울=뉴스1) 한상희 김정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7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취임 후 처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틀 뒤 사석에서는 측근들과 비상계엄을 논의했다. 그리고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계엄을 선포했다.
비상계엄 선포까지의 과정과 배경은 최근 공개된 검찰 공소장에서 일부 윤곽이 드러났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22대 총선을 앞둔 시점부터 비상계엄을 검토해 왔으며, 총 4차례에 걸쳐 측근들과 긴밀히 상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말~4월 초, 서울 삼청동 안전가옥(안가)에서 당시 김용현 경호처장, 신원식 국방부 장관, 조태용 국가정보원장, 여인형 국군 방첩사령관 등과 회동을 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비상대권을 통해 헤쳐나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군이 나서야 되지 않느냐, 군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공소장은 밝히고 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가능성 속에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의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주호주대사 임명 논란, 의대 증원 갈등, 대파 875원 발언 논란 등 여러 악재에 직면해 있었다. 이후 4·10 총선에서 범야권이 192석을 확보하면서 국정 운영의 어려움이 가중됐다.
총선 참패 후 윤 대통령은 비상조치 논의를 구체화한 것으로 보인다. 5~6월 윤 대통령은 안가에서 김 전 장관, 여 전 사령관과 저녁 식사를 하며 '비상대권이나 비상조치가 아니면 나라를 정상화할 방법이 없는가'라는 취지의 논의를 이어갔다.
이 시기 윤 대통령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처음으로 일대일 회담(4월 29일)을 했다. 취임 2주년 기자회견(5월 10일)에서 김 여사 문제를 처음으로 사과하고, "절대 협치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변화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공소장을 보면 같은 시기 사석에서는 측근들과 비상계엄을 논의했다.
11월 들어 비상계엄 논의가 구체화됐다. 22대 국회에서 여소야대 격차가 커졌고, 윤한(윤석열·한동훈) 갈등으로 여당 내 분열은 깊어졌다. 민주당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며 정부 추진 법안이 난항을 겪고, 야당 주도로 특검법과 탄핵소추안이 줄줄이 통과되자 비상계엄을 본격적으로 검토한 것으로 보인다.
임기 반환점(11월 10일)을 사흘 앞둔 11월 7일 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제 부덕의 소치"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국정 쇄신과 소통 강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여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특히 구체적으로 사과해달라는 요구에 윤 대통령은 "어찌 됐든 사과를 드린다"고 해 비판이 일었다. 담화 다음 날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인 17%까지 추락했다.
담화 이틀 뒤인 9일 윤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 공관에서 김 전 장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등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는 '특별한 방법이 아니고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취지로 비상계엄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공소장에 적시됐다.
윤 대통령은 11월 말 계엄 발동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24일 한남동 관저에서 그는 김 전 장관과 차를 마시며 '정말 나라가 이래서 되겠느냐',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겠다', '국회가 패악질을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때는 대통령 부부 공천 개입 의혹을 촉발한 명태균 씨 관련 폭로가 이어지고, 민주당이 대통령실 특수활동비(특활비)를 전액 삭감한 예산안을 단독 처리하는 등 윤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시점이었다.
계엄 선포를 하루 앞둔 12월 2일 윤 대통령은 충남 공주에서 열린 민생 토론회에서 "(백종원씨와 같은) 민간 상권기획자를 앞으로 1000명 육성하겠다"고 선언했다. 공주산성시장을 찾아서는 "저 믿으시죠"라며 상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다음 날 그가 내린 결단은 비상계엄 선포였다. 윤 대통령은 3일 밤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긴급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오후 11시부로 발령된 계엄사령부 포고문 1호에는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무장 계엄군이 유리창을 부수고 국회 본관에 진입하는 장면이 생중계되면서 국민 불안은 물론 국제 사회의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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