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수 끝 검사된 尹은 어떻게 文 정부 검찰총장 됐나[이승환의 로키]
- 이승환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을 실제로 본 것은 5년 전쯤이었다. 2020년 2월 29일 오후, 서울의 한 호텔 카페에서였다.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 대통령이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좌천됐던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와 함께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아메리카노를 '원샷'으로 마시는 윤 대통령의 풍채가 생각보다 크다고 느꼈다.
전달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취임한 후 두 사람과 각을 세우면서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던 상황이었다. 윤 대통령을 무장 해제해 답을 끌어내려면 어떻게 질문해야 할지 순간 고민했다. 그와의 '공통 분모'를 언급하며 접근했다.
"총장님, 9수 끝에 검사가 되셨고 결국 총장이 됐습니다. 저도 총장님처럼 기자 생활을 늦게 시작했는데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윤 대통령이 얼굴의 긴장감을 무너뜨리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후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겠다"며 묵묵부답했으나 그 함박웃음은 여전히 잊히지 않는다.
최근 만난 검찰 출신의 변호사는 이런 말을 했다.
"윤 통처럼 검사 생활을 늦게 시작했는데 위로 올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검사들보다 더 과감하게 해야 합니다. 다른 검사들이 주저하는 수사를 총대 메고 공격적으로 해야 한다는 거지요."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강골 특수통의 대명사였다. 특수수사의 상징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1·2과장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 요직을 거쳤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과 강금원을 구속 수사했고 2006년 현대자동차 비자금 수사를 주도했다. 현대차 수사 당시 정몽구 회장을 구속해야 한다며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에게 사직서를 내민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는 2013년 특별수사팀장으로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을 지휘하며 박근혜 정부를 정조준했다. 그때 그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어록을 남겼다. 윤 대통령이 현재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다고 해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은 하나 있다. 그가 서른네 살의 늦은 나이에 임관해 검찰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살아있는 권력에 사정 칼날을 겨누는 결기와 담력 때문이었다.
'윤 검사가 너무 나가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든 것은 정작 문재인 정부 출범 후였다. 윤 대통령은 2017년 5월 19일 문 정부로부터 서울중앙지검장에 파격 임명돼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적폐 청산 수사를 지휘했다. 7곳 부서 검사 50여 명이 총 16개 사건에 투입되는 초대형 수사였다. 수사 대상에 올랐던 서울 고검 검사, 그와 국정원에서 함께 일한 적 있는 변호사 모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피의자가 수사받던 중 극단선택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미 죽은 권력인데 이리도 냉혹할 정도로 사정 칼날을 휘두르는 게 맞냐는 논란이었다. 적폐 수사 당시 '윤 지검장'은 더 올라가기 위해 사정 칼날을 휘둘렀을까. 아니면 적폐 청산의 취지에 공감해서였을까? 그게 아니라면 단순히 검사로서의 사명감 때문? 알 수는 없다. 다만 적폐 수사 성과는 일선 지검장이었던 그가 한 단계 건너뛰고 검찰총장으로 직행하는 데 기여했다.
조국혁신당이 지난해 8월 발의한 검찰 개혁 법안은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아예 폐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표면적인 이유는 죽은 권력에 가해지던 검찰 수사권 남용을 억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절반만 맞는 말이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검사들도 있었다. 과거 김영삼 대통령 아들과 김대중 대통령 아들은 임기 말이긴 하지만 두 대통령의 재임 중 검찰에 구속됐다.
'나올 때까지 턴다'는 별건·저인망 쌍끌이 수사로 피의자를 압박하는 수사권 남용 문제는 검찰의 원죄이자 개선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대한민국 최고 수사기관인 검찰의 수사 역량과 방법론을 모두 폐기하는 것엔 신중해야 한다. 12·3 비상계엄 사태 직후 검찰과 경찰, 공수처 사이에서 불거져 현재도 진행 중인 수사 절차 위법성 논란도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내란죄 수사권을 박탈한 데 따른 것이다.
비상계엄 사태 후 범야권이 힘을 합쳐 법안을 통과시키면 검찰은 기소와 공소 유지만 하는 '공소청'으로 전환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검찰의 중대범죄 수사력을 어떻게 전수하거나 유지할지 고민해야 한다. 중대범죄수사청(가칭)이 신설되면 유능한 검사들을 대거 배치하거나 검찰의 경찰 수사지휘권은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검찰 개혁 당위성에 매몰된 나머지 대한민국의 중대 범죄 수사력에 구멍을 내선 안 된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일 텐데, 책임은 대체 누가 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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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영문자 로키(low key)는 최근 MZ세대들 사이에서 '솔직하되 감정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을 때' 쓰인다고 합니다. 솔직하되 절제된 글을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