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심판의 얼굴들]④국무총리 한덕수…尹은 그가 오기 전 퇴정했다
"국무회의서 비상계엄 만류…대통령 설득은 못해, 송구"
한 총리 헌재 출석 전 자리 뜬 尹…"국가 위상에 안 좋아"
- 이세현 기자
(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저는 여야의 극한 대립 속에서 행정 각부를 통할하며 대통령을 잘 보좌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나가고자 했지만, 대통령이 다른 선택을 하도록 설득은 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19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자신에 대한 탄핵 심판 변론기일에 처음으로 출석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낮게 잠긴 목소리로 최후 의견 진술을 담담히 읊었다.
바로 다음 날인 20일 한 총리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에 증인 자격으로 대심판정에 들어섰다. 이틀 연속 헌재에 나온 착잡함 때문일까. 한 총리의 표정은 종일 굳어 있었다.
한 총리가 헌재에서 내놓은 발언들은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과 맞물려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특히 "대통령이 다른 선택을 하도록 설득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우리 국민이 어려운 상황을 겪는 것에 대해 일신의 영욕을 떠나 진심으로 가슴 아프고 송구스럽다"고 고개를 숙였다. 국무총리로서 12·3 비상계엄 선포를 막지 못한 무거운 심경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뤄 온 국가 핵심을 흔들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만류했다. 경제와 신인도, 국가 핵심을 흔들 수 있다는 이유였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한 총리는 지난 20일 열린 윤 대통령에 대한 10차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나와 비상계엄 선포 국무회의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했다. 그는 당시 모두가 윤 대통령을 만류했다고 기억했다.
앞서 증인으로 나왔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일부 찬성한 사람도 있었다'고 증언한 것과 관련해선 "제 기억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정면 반박했다. 한 총리는 자신도 비상계엄에 반대했다며 "지금까지 우리가 이뤄 온 국가 핵심을 흔들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만류했다"고 밝혔다.
국회 측 대리인은 "어제(19일) 피청구인(윤 대통령)을 설득하지 못해 송구하다고 했는데 설득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한 총리는 "대통령이 나라를 구하겠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우리가 설득하지 못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한 총리는 비상계엄 전 국무회의와 관련해 "형식적, 실체적 흠결이 있었다", "통상과 달랐다"며 '간담회'였다는 기존 자신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 총리는 "12월 3일에 오라는 연락을 받고 국무위원들은 순차적으로 모였고, 계엄에 대해 처음 듣고 걱정과 우려를 표명했기에 통상 국무회의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한 총리는 다만 "(적법한) 국무회의였는지 아닌지는 개인이 판단할 일이 아니고, 수사와 사법절차를 통해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한 총리는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서 계엄과 관련된 문건을 보거나 받은 기억이 없으며, 비상계엄 선포문을 소지한 경위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후 반나절 이내에 계엄이 해제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하는데, 비상계엄 국무회의 당시 국무위원들에게 '계엄을 선포하지만 반나절 만에 해제될 것'이라고 말했느냐'는 질문에 "들어본 적 없다"고 답했다.
한 총리는 또 비상계엄 당시 윤 대통령으로부터 이틀 뒤 열리는 무역협회의 '무역의 날' 행사에 대신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한 총리는 실제 계엄 선포 이틀 뒤에 열린 61회 무역의 날 행사에 대신 참석했다. 한 총리의 증언이 나오면서 윤 대통령이 적어도 계엄이 이틀 이상 이어질 것으로 예측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한 총리는 비상계엄 당시 상황에 대해선 대체로 말을 아꼈지만, 입법과 예산 등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는 긴 답변을 내놓으며 야당에 날을 세웠다.
야당의 예산 삭감과 관련해 묻는 윤 대통령 측 질문에 한 총리는 "차세대 원전 개발 관련 예산 등 앞으로 우리나라의 유망한 먹거리가 될 산업들을 지원하기 위한 것들이 여야 합의 없이 삭감됐고, 양자 연구같이 최첨단 국책 연구에 들어갈 예산이 삭감됐다. 검경 특활비나 특경비도 전액 삭감돼 마약, 금융사기 범죄 수사가 상당히 지장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재난·재해를 대상으로 하는 목적예비비가 많이 깎여서 천재지변이 생길 때는 대응에 상당히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와 관련해선 "정말 심각한 입법 시도였다"면서 "정부 예산안 자동부의제도를 변형시키려는 의도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고 봤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어떤 욕을 먹더라도 입법화되면 안 되겠다는 뜻에서 재의 요구를 했다"고 긴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윤 대통령 측이 '국회의 입법 독재가 심각하다는 데 동의하느냐'고 묻자 한 총리는 "다수의 일방적인 폭주는 민주주의의 기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권한대행으로서 야당이 반복 발의하는 6개 법안에 재의요구권을 행사한 사실이 있느냐'는 윤 대통령 측 질문에 "국회에서 다시 한번 마음을 열고 여야 간 합의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면서 "저희가 지금껏 행사한 재의 요구가 지금까지 과거 대한민국 정부가 행한 재의 요구를 합친 것보다 많지 않나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 헌법과 법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국회의 '입법 협치'가 꼭 필요하다 말씀드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관심을 모았던 헌재에서 윤 대통령과 한 총리 간 대면은 불발됐다. 한 총리가 증인으로 출석하기 전 윤 대통령이 심판정에서 퇴정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20일 오후 2시 56분쯤 헌재 심판정에 입정한 뒤 피소추인석에 앉았지만 변호인들과의 논의 후 오후 3시 4분쯤 퇴정했다. 한 총리는 윤 대통령이 퇴정하고 난 뒤인 오후 3시 8분쯤 입정했다.
윤 대통령 측은 "일국의 대통령과 총리가 같은 심판정에 앉아 계시고, 총리께서 증언하는 것을 대통령이 지켜보는 것이 좋지 않고 국가 위상에도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양해를 구하지 않고 퇴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한 총리의 증인신문이 끝난 후 대심판정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후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조지호 경찰청장에 대한 증인 신문을 직접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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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달 14일부터 시작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25일 종료된다. 당사자인 윤 대통령은 물론 16명 증인의 발언은 '계엄의 밤'을 재구성, 화제와 파장을 몰고 왔다. 헌법재판소에서 주목 받았던 인물들을 조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