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尹 재판인데…'지귀연 접대 의혹' 침묵만이 답일까[이승환의 로키]
사실이든 거짓이든 큰 파장…혼란 가중하고 가짜뉴스 논란도
'지 판사가 직접 입장' 필요성…윤리감사관실 신속 결론 내야
- 이승환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프랑스어 '살롱'(salon)은 여러 의미로 쓰인다. '사교 모임', '응접실' 등을 뜻하지만 높은 수준의 예술 작품 '전람회'를 일컫기도 한다. 18세기 파리 루브르 궁전 내 전람회가 열린 공간의 이름인 '살롱 카레'(Salon Carr·네모난 방)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한국에선 영문자 '룸'과 결합해 '룸살롱'이라 불리기도 한다. 살롱에 '방'이란 의미가 포함됐으니 룸살롱은 사실 동어반복의 '콩글리시'다. 또 한국에선 룸살롱 여주인 등을 '마담'이라 불리는데, 프랑스에서 마담은 잘 모르는 여성에 대한 존칭으로 쓰인다.
마담이 운영하는 룸살롱의 전신은 요정이었다. 1970년 8월 프랑스인 여동찬 신부는 '요정 망국론'이라며 개탄했지만 당시 박정희 정권에선 '요정 정치'가 횡행하고 있었다.
일명 '북한산 3각'인 삼청각·청운각·대원각을 비롯해 접객원 수가 50명 이상인 대규모 요정에는 정재계 거물의 발길이 이어졌다. 실세 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가 '미림팀’을 가동해 요정에서 오갔던 기밀을 총괄·수집할 정도였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가 2011년 3월 18일 출간한 저서 룸살롱 공화국(인물과 사상사)에 따르면 요정에서 이어져 온 룸살롱의 특징은 술과 더불어 '놀이'가 추가됐다는 점이다. 강 교수는 책에서 "놀이의 핵심이 무엇이건 본론은 그것을 매개로 해서 이루어지는 밀실 대화와 그에 따른 유사 친분"이라고 지적한다.
주목할 것은 '유사 친분'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마시고 즐기다 종국에 성매매에 이르는 과정은 청탁금지법 혹은 뇌물죄를 적용받거나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로 단죄되는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유사 친분을 맺은 사람끼리는 다 함께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는 비밀을 공유한다. 룸살롱이라는 칸막이에서 이뤄진 불법행위에 대한 비밀 공유는 '패거리'를 형성하는 핵심 요인이 된다.
불법 행위에 대한 비밀 공유를 다른 측면에서 보면 상호 간 '약점 잡기'다. 특히 접대하는 쪽은 접대받는 쪽의 약점을 쥐고, 접대받는 사람은 접대한 사람에게 약점이 잡히는 꼴이 된다. 접대하는 사람도 상대방에 따라 뇌물 제공에 대한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약점'에 붙들린다.
그런 면에서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경찰이나 처벌 여부 및 수위(선고)를 결정하는 판사에게 향응 접대 유혹이 '요정' 때부터 이어져 왔던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흥이 고조된 상대의 부도덕한 사생활을 약점으로 쥔 다음, 사건을 청탁하는 등 원하는 바를 실현하려 했던 것이다.
서두를 룸살롱 관련 얘기로 꺼낸 이유가 있다. 최근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51·사법연수원 31기)가 룸살롱에서 향응·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지 부장판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혐의 피고인들의 사건을 전담하는 재판부의 재판장이다. 내란 혐의 재판은 사법부 역사에 길이 남을 공판이다. 그런 공판을 맡은 법관이 룸살롱이란 단어와 연결됐다는 자체만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다만 판결문에서 자주 나오듯 '접대를 받았다는 사실이 명확히 증명되지 않는 한' 접대 의혹을 믿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우세한 의견이다. 2000년대 초만 해도 그런 접대 관행이 있었고 지금도 전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 촬영이 가능한 요즘 그런 간 큰 법조인이 어디 있느냐는 반응이 다수다. 접대 의혹을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단계다.
더불어민주당은 접대 현장이 담긴 사진을 법원에 제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사실관계가 틀렸던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폭로했던 전례가 있었던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당내 의견도 적지 않다고 한다. 오는 6·3 대선 이후 사법개혁을 위한 민주당의 의도적인 '사법부 흔들기'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번에도 또 가짜뉴스라면 민주당은 원내 다수당으로서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법원 전체에 파장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지 부장판사가 입장을 내지 않고 침묵을 유지하는 바람에 추측이 무성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주에만 윤 전 대통령 공판(19일)을 비롯해 내란 혐의 관련 재판이 세 차례나 진행될 예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침묵만이 능사라 할 수 있을까.
'청담동 술자리 의혹'이 조기에 사그라진 것도 당시 의혹의 당사자이자 법무부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적극 반박하며 폭로의 허위성과 허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억울하면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한 관계자는 말했다.
"행정처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지 부장판사가 직접 입장을 내는 게 가장 좋은데 그러지 않아 좀 답답하다."
대법원 윤리감사관실은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속성'과 '정확성'이다. 윤리감사관실의 결론이 늦을수록 내란 재판에 대한 신뢰도와 공신력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만에 하나 접대 의혹이 사실이라면 있는 그대로 공개하고 재판부 교체와 같은 결단도 내려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내란 재판 결과를 믿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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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영문자 로키(low key)는 최근 MZ세대들 사이에서 '솔직하되 감정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을 때' 쓰인다고 합니다. 솔직하되 절제된 글을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