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AI 디지털교과서 전면 재검토해야

이기종 국민대 명예교수 = 최근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가 마치 미래 교육의 핵심인 것처럼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교육 현장 전문가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이러한 움직임은 상당한 우려를 낳고 있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학교는 학생 개개인의 성장과 변화를 촉진해 각자의 꿈을 구현할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학교가 제공하는 모든 것에 접근할 수 있는 교육기회 균등의 원칙이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곳이 학교다. 교육부의 어설픈 정책이 실험적으로 시행되는 곳은 더구나 아니다.
그러면 AI 디지털 교과서가 학생들의 학습 효율성을 높인다는 주장부터 살펴보겠다. 인공지능 기술은 개인 맞춤형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현재 도입되고 있는 AI 디지털 교과서는 인공지능의 진정한 활용이 아닌 기존의 디지털 교과서에 간단한 대화형 기능을 추가한 것에 불과하다. 학생 개개인의 이해도와 학습 속도를 깊이 있게 분석해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할 수준의 AI 기술은 아니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앤드류 응이 개설하는 머신러닝 강좌는 학습자의 모든 움직임을 관찰한다. 학생 개개인이 어떤 문제를 푸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어떤 것을 참고하는지, 어떤 질문은 건너뛰는지, 문제해결에 시간을 얼마나 쓰는지, 이미 푼 문제에 이 문제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어떤 힌트가 가장 좋은지 등을 모두 분석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결정적인 것은 문제를 푼 답안은 즉시 자동으로 피드백되면서 학습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가능한 것은 인공지능 기술이 녹아 있기 때문인데, 지금 교육부가 도입하는 AI 디지털 교과서는 무늬조차도 인공지능이 배어 있다고 하기 어렵다.
다음으로 디지털 격차다. AI 디지털 교과서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가정마다 안정적인 인터넷 환경과 적절한 디바이스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는 이런 기본적 조건이 마련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AI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되면서 교육 격차가 더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교육기회 균등에 어긋나는 행위로 학교가 기존의 사회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하게 된다.
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의 본령은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이며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적합한 인재로 거듭나게 된다. 과도한 기술 의존은 교육의 본령이 지향하는 기본적 가치를 해칠 수 있다. 교육이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가 아니라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의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을 통해 인성, 창의성, 협동심 등을 길러내는 과정이다.
하지만 AI 디지털 교과서가 확대되면 이러한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감소하고, 학생은 화면만 바라보며 기술 중심의 수동적인 학습에 빠질 수 있다. 왜 스웨덴에서 다시 종이교과서로 회귀하는지 그 이면을 살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AI 디지털 교과서의 장기적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연구가 아직 부족하다는 점이다. 학생들이 장시간 디지털 기기에 노출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신체적, 심리적 부작용에 대한 명확한 연구 결과가 없는 상태에서 성급하게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AI 디지털 교과서를 접하는 학생은 인지발달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시기에 있다. 이런 시기의 학생이 AI 디지털 교과서에 종속되지 않음을 입증하는 증거는 아직 없다. 학생이 안전하다는 증거가 먼저 확보된 후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해도 늦지 않다.
기술 자체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육당국은 보다 신중한 접근을 통해 기술 도입의 목적과 방식을 재점검해야 한다. 디지털 전환이 과연 학생들의 성장을 돕는 방향인지, 아니면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위험이 있는지 철저히 검토한 후 도입 범위와 속도를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학생들을 위한 진정한 미래 교육은 기술이 아니라 교육의 본령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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