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기후 차르의 내연차, 그리고 푸른 바다…무배출 차량은 없었다
-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부산=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지난 4월 29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광장에는 약 50대가 넘는 차량이 도열해 있었다. 경차나 소형차는 한 대도 없다. 묵직해 보이는 대형 세단과 승합차가 위용을 드러냈다. 일반 차량은 진입이 제한된 공간이다. 도열한 차량만 봐도 VIP급 인사들이 모였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이 차들은 하나같이 내연기관 차량이었다.
제10차 아워 오션 콘퍼런스(Our Ocean Conference) 개막식이 열리는 장소였다. 전 세계에서 온 해양과 기후, 환경 분야 고위급 인사들이 모여 '푸른 미래'를 이야기했다. 우리 정부에선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과 박형준 부산시장 등이 참석했고, 유엔(UN) 산하 기구 관계자와 각국 장관·대사들이 자리했다. 그러나 그들이 내리고 올라탄 차량 어디에서도 전기차 특유의 파란 번호판은 눈에 띄지 않았다.
특히 눈에 들어온 건 존 케리 미국 전 국무부 장관의 모습이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파리기후협정 체결을 주도하며 '기후 차르'로 불렸고, 바이든 정부에서는 기후특사로 활동하며 중국과의 온실가스 감축 협상을 이끌었다. 그런 그가 세션과 기자회견을 마친 뒤, 검은색 내연기관 승합차를 타고 벡스코를 빠져나가는 모습은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파리협정이 체결된 지 어느덧 10년, 기후 외교를 이끌어온 인사가 여전히 내연기관차에 몸을 싣고 있다는 사실은, 선언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실감하게 했다.
물론 OOC가 '교통수단의 전환'을 의제로 삼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해양 보호와 기후위기를 논하는 국제무대에서 '탈탄소 전환'을 실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는 날린 셈이다.
각국의 비용·운영 여건 등 현실적인 제약이 있겠지만, 참석자 전용 차량이나 일부 경호·의전용 차량만이라도 전기차나 수소차로 구성했다면, 회의의 메시지와 더욱 일치했을 것이다.
최소한의 '의식적 환경 실천'이라도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보여주기식이라는 비판이 따를 수 있지만, 그런 형식조차 없는 자리에서는 메시지의 진정성은 더욱 희미해진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나 운행 제약이 현실적인 한계일 수는 있어도, 국제회의에서 상징적 실천조차 배제된 점은 아쉬움을 남겼다.
더 아쉬웠던 건 장소적 상징성이다. 부산은 해양 도시일 뿐 아니라, 글로벌 전기차 제조사들이 미래 기술을 공개하는 전시의 장이기도 하다. 특히 벡스코는 '부산모터쇼'를 통해 친환경 모빌리티 경험의 대표 장소로 꼽혔다. 그런 공간에 도열한 내연기관 차량 행렬은 이 회의가 지향한 '탄소 없는 바다'라는 상징적 메시지와 더욱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
이 행사에 참석하진 않았지만, 김완섭 환경부 장관 사례는 대조적이다. 김 장관은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으로, 환경전문가는 아니다. 그러나 관용차로 전기차를 사용하고, 주변에도 이를 권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경부는 최근 몇 년간 주요 부처 중 가장 적극적으로 관용차의 전기차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전면 전환까진 시간이 걸리겠지만, 최소한 '보여주는 실천'은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각국의 고위급 인사들이 내연기관 차량에서 내리는 장면은 수십 명의 경호 인력, 수백 명의 참가자, 수천 명의 관람객 눈에 그대로 들어온다. '지금 우리가 논의하는 일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런 장면 하나가 강력한 메시지가 되곤 한다.
이번 콘퍼런스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해양 생태계의 탄소흡수 기능, 이른바 블루카본 보호였다. 하지만 블루카본 정책의 주창자들이 푸른 연기를 내뿜는 차에서 내리는 모습은 그 논리의 무게를 흐릴 수밖에 없다.
시민이 기후위기 대응의 주체가 되길 바란다면, 먼저 정부와 고위 관계자들이 그 무게를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 보여주기식이라도 좋다. 지금은 '의식적인 기후대응 의식'이라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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