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 정신과의원 넘치는데"…자살률 1위 농촌엔 '0곳'[외딴 죽음]④
뉴스1 조사 결과 도별 자살률 1위 농촌 중 약 88% 정신과 의원 '0곳'
정신건강 이해 부족하고 기피 뚜렷…농촌 자살 위험 어떻게 예방하나
- 남해인 기자, 김민수 기자, 홍유진 기자
(서울=뉴스1) 남해인 김민수 홍유진 기자 = 자살은 예방밖에 막을 방법이 없다. 그러나 농촌에는 예방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 비수도권 도별 자살률 1위 농촌(군) 7곳 가운데 6곳(87.5%)에는 정신건강의학과의원이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뉴스1 조사 결과 드러났다.
정신과 병의원(의원+병원+종합병원)으로 기준을 넓혀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자살률 1위 농촌 7곳 가운데 절반 이상(4곳)의 정신과 병의원 수가 '0곳'이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3년도 노인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읍면(농어촌) 거주자의 자살생각률은 동(도시)의 1.6배에 이르렀다.
그러나 농촌에는 일상적으로 진료받으며 자살 충동을 예방하고 자해나 우울증 등 위험 신호를 느낄 때 곧바로 찾을 수 있는 의료기관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먼저 통계청 '2023 사망원인통계'를 보면 비수도권 7개 도별 연령표준화 자살률(단위: 명) 1위 농촌은 △충남 청양군(55.8명) △전북 임실군(50.2명) △충북 음성군(46.9명) △경북 성주군(42.3명) △강원 고성군(37.6명) △전남 고흥군(37.5명) △경남 함안군(34.2명)으로 총 7곳이다.
뉴스1 조사 결과 이 7곳 가운데 6곳의 정신과 의원 수는 '0곳'이다. 청양군·임실군·음성군·성주군·고성군·함안군이다. 고흥군에도 정신과 의원이 1곳만이 있을 뿐이다.
통상 정신과 병원(정신 의료 시설)은 수용하는 건물 규모가 크고 기피 시설로 취급돼 산 주변 등 외진 곳에 자리 잡는다. 그러나 정신과 의원은 규모가 작고 개수도 병원보다 많아 비교적 접근성이 좋은데도 농촌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 강남역 일대만 가도 '정신건강' '마음 치유' '마음 감기'라는 간판의 의료기관이 우후죽순 생겨 자리 잡은 상태다. 이 지역 내 일부 정신건강 의원 두 곳의 거리는 걸어서 2분 거리인 '200m'에 불과하다.
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병상수에 따라 의료기관은 △의원(30병상 미만) △병원(30병상 이상 100병상 미만) △종합병원(100병상 이상 300병상 이하에 7개 진료 과목을 필수 운영) △상급종합병원(진료과목 20개 이상, 전문의 수련 기관 등 의료법 제3조 4항이 규정한 요건 충족)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의원과 병원, 종합병원을 산출 기준에 모두 포함해도 농촌의 의료 상황은 눈에 띄게 나아지지 않는다. 자살률 1위 농촌 7곳 가운데 4곳(고성군·청양군·임실군·함안군)에는 정신과 병의원이 한 곳도 없었다. 나머지 3곳의 농촌에도 정신과 병의원이 1~2개 있는 수준이다. 음성군 2곳, 성주군 2곳, 고흥군 1곳이다.
농촌은 물론 비수도권 7개 도 주민의 정신과 의원 문턱도 서울보다 크게 높다. 정신과 의원 수 대비 인구(정신과 의원 한 곳당 인구)가 서울보다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뉴스1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수도권 7개 도의 정신과 의원 한 곳당 인구는 △강원 3만 7062명 △경남 3만 4374명 △경북 3만 4270명 △충북 3만 2463명 △전남 3만 1411명 △충남 3만 957명 △전북 2만 2905명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서울은 2만 5116명에 불과했다.
전북을 제외한 6곳의 정신과 한 곳당 인구가 충분한 의료 인프라를 갖춘 서울보다 1만 명가량 많았다. 정신과 의원이 도내 '도시'에 몰려있는 점을 고려하면 농촌의 정신과 의원 접근성이 매우 떨어지는 현실이 확인된다.
정신과 의원은 심한 우울증을 앓거나 자해 이력이 있는 '자살 고위험군'에 이르기 전 환자를 꾸준히 관리하며 예방할 수 있다. 의원으로 향하는 환자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하는 이유다. 문제는 의원 자체를 찾기 어려운 농촌의 현실이다. 특히 농촌 주민들은 고립감을 느끼면서도 '낙인'이 찍힐까 봐 정신건강 진료를 기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진료 후에도 증세 악화로 자해 위험이 커지면 일주일가량 단기 입원이 가능한 소규모 의원실을 갖춘 의원이 농촌에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각 시군구 단위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자살 사망자 유족과 자해 시도자 등 고위험군 지원을 담당하지만 종일 이들만 관리할 수 없어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충북의 한 농촌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근무하는 A 씨는 "자해한 사람이 병원에서 외상 처치만 받고 퇴원하면 집으로 돌아가 또다시 자해할 가능성이 있지만 이들이 입원 치료나 사후 관리받을 수 있는 의료 인프라가 지방에는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살 시도를 한 적 있어 사례 관리자로 등록된 사람이 '자살 시도를 하겠다'며 밤중에라도 전화하면 사명감으로 응급 출동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다른 정신건강복지센터 팀장 B 씨도 "자살 고위험군으로 등록된 분이 외딴 지역에서 자살하겠다며 연락해 새벽부터 부랴부랴 나간 적 있다"며 "최소 열흘은 정신과 의원에 입원해 관리받길 원하지만 지역 사정상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뉴스1은 전국 17곳의 특별시·광역시·도에 있는 시군구별 정신과 병의원 수를 우선 조사한 뒤 '군'을 농촌으로 규정한 행정구역 지역 분류에 따라 군별 정신과 병의원 현황을 산출했다. 지난해 10월 기준 '네이버 지도'에 등록된 정신과 병의원 수를 기준으로 낸 자체 통계다. 이 기사는 이 통계를 기반으로 작성됐다.
다만 제주도의 경우 제주시와 서귀포시 등 총 두 개의 시로 구성돼 '군'을 농촌으로 보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포함하지 않았다. 대학병원과 상급종합병원도 통상 진료를 받으려면 반드시 예약해야 하는 만큼 일상적으로 다니기 어렵다고 판단해 이번 산출 과정에서 제외했다.
※'정신과 한 곳당 인구'(지역 인구/지역 내 정신과 의원 수)는 정신과 한 곳이 감당해야 하는 인원을 산출해 지역의 정신과 접근성 정도를 수치화한 것이다. 도시 면적이 상대적으로 넓어 이 수치만으로 농촌의 정신과 진료 접근성을 가늠하기 힘든 수도권·광역시·제주도는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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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아흔 살 할머니 이금자(가명) 씨는 올해 초 다리와 허리를 다쳐 석 달 동안 집 밖을 나가지 못했다. 그때 만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우울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금자 씨는 "우울? 그런 거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기자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뉴스1은 지난 두 달간 농촌에 거주하는 자살 위험군 18명과 자살 유족 7명, 주민 및 복지센터 관계자 20여 명 등 50명가량을 만나 자살 실태를 심층 취재했다. 전국 정신건강 병의원 1190곳 분포를 직접 분석한 결과 의사의 조력을 받기 쉽지 않은 농촌의 현실도 확인했다. 생명존중 탐사 기획 '외딴 죽음'을 통해 금자 씨처럼 적막감에 둘러싸인 '농촌 사람들'의 자살 예방 방안을 모색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