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재영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 우리나라는 발전 과정에서 시대적 큰 전환점마다 핵심 인프라를 구축해 왔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산업화 고속도로'인 경부고속도로를 통해 제조업 중심의 산업화를 이뤘고,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초고속 인터넷망을 구축하며 '정보화 고속도로'로 정보통신 강국의 기반을 다졌다. AI(인공지능)와 데이터 기반으로 사회가 변모하는 AI 문명 시대인 지금은 이공계 인재 양성과 관리를 위한 '휴먼 리소스 고속도로'를 구축해야 한다.

작년 12월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경력 엔지니어 대상으로 채용 면담을 시행했다. 20% 인상된 급여와 거주비 등 귀가 솔깃할 만한 지원을 약속했다고 한다. 중국 기업에 한국의 기술 인재는 중요한 공략 대상이다. CXMT 등 반도체 기업들은 무려 서너 배 이상 높은 급여를 제시하며 한국 인재를 모셔간다.

화웨이는 상하이 인근에 3만 명 이상의 연구 인력이 상주하는 글로벌 연구센터를 설립했는데, 그곳 연구자 중 상당수를 한국에서 데려갈 것이다. 2018년부터 6년 동안 중국으로 넘어간 한국 반도체 인재는 무려 1000명 내외로 추정된다.

세계는 지금 다른 나라 인재 스카우트에 사활을 건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당선의 일등 공신인 일론 머스크가 트럼프의 전통적 지지 세력과 충돌하고 있다. 이유는 전문 기술을 가진 외국 인력의 취업비자(H-1B) 문제 때문이다. 트럼프 지지 세력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는 외국인 노동자를 몰아내자고 주장하고 트럼프는 그런 추세에 편승해 왔다.

그러나 머스크는 첨단 기술 외국인 인재를 오히려 더 많이 끌어들이자고 주장한다. 외국인 인재 없이 머스크의 테슬라가 지금 위치에 올 수 있었을지 생각해 보면 답은 분명하다. 미국의 독보적 성장을 이끄는 애플, 엔비디아, 구글, MS 등 빅테크 기업 중에 외국인 인재 없이 움직이는 곳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외국인 노동자를 몰아내자고 주장하던 트럼프도 지지층을 무시하고 머스크의 손을 들어줬다.

현재 우리나라 이공계 분야에는 우수한 인재들이 몰려들지 않고 우리가 양성한 인재들을 제대로 지켜내지도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 정책의 전면적 변화가 필요하다.

우선, 정부 지원의 획기적 강화가 시급하다. 모든 이공계 전공 학생들에게 학비 전액 지원, 생활비 전면 지원, 혁신적 병역특례 등 우수 연구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또한 졸업 후 선망의 대상이 되는 고급스러운 일자리를 보장하는 정부 주도 산학 연계 및 공공기관 설립 프로젝트를 실시해 우수 인재들의 이공계 진학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해외 유출을 막아야 한다.

둘째,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이공계 교육의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세기 60년대 이래 70년 넘게 지속된 국어-영어-수학 중심의 교육 패러다임을 해체하고, 이를 21세기 문명조건에 걸맞도록 언어-수학-과학기술 중심 패러다임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이러한 기조 위에서 AI 교육과 과학 실험을 강화하고, 문제 해결형 프로젝트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

셋째, 대학 교육의 근본적 혁신을 도모해야 한다. 이공계 분야에서 강의 중심의 기존 교육에서 벗어나 수월성 함양을 목표로 소그룹 단위의 심층적 전공교육을 학부 1학년부터 실시하고, 상상력과 창의력을 체계적으로 키우며 모험과 도전 정신을 제고하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공계 분야에서 인재 육성은커녕 있는 인재도 못 지키는 나라가 되고 있다. 이공계 교수사회에서는 이래선 우리 국가에 미래가 없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오랫동안 현실의 장벽에 가로막히다 보니 의욕을 잃고 있다.

지금이라도 국가 역량을 이공계 인재 육성에 쏟아부어야 한다. 정부는 이공계 인재 육성 인프라 구축 정책을 수립하고, 국회는 특별법 등을 만들어서 이공계 인재의 밝은 미래를 제도적으로 보장하자. 그렇게 해도 의대 정원 증원 등 여러 유혹에 노출된 젊은 세대가 믿을까 말까 할 성싶지만, 우리에게는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